▲ 유시민 전 장관(왼쪽)과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단일화 여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 ||
에둘러 표현하긴 했지만 “출마한다, 안 한다 결정한 바 없다”는 종전 입장에 비춰보면 상당한 심경 변화다. 이에 따라 앞서 ‘친노무현 신당’인 국민참여당의 서울시장 후보 중 하나로 추대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야권후보 단일화 논의도 정가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게 됐다.
이날 모임 참석자들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지난해 검찰수사 등에 따른 소회를 밝히며 시종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그동안 사회원로 등 주위의 출마권유가 많았지만, (한 전 총리가) 재판과 당 내부 문제 등이 얽혀 있어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며 “하지만 이제는 주변의 권유를 더 이상 마다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류 변화는 한 전 총리 측 변호인단이 재판부에 빠른 재판 진행을 위해 집중심리를 신청키로 했을 때부터 감지됐다. 재판 일정이 지연될 경우, 선거 채비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결정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또 새해 들어 각 언론매체에 보도된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검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경쟁력을 확인한 점도 한 전 총리에게 자신감을 안겼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민주당 안팎에서는 한 전 총리가 언급한 ‘요청’이라는 게 ‘경선 없는 추대’, 즉 전략공천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 김태년 시민주권 사무총장은 지난 1월 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전 총리는 단순히 민주당 후보라는 차원이 아니라 야권단일후보의 범주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 전 총리가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 데) 가장 근접한 분이기 때문에 민주당도 그런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해 이 같은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마침 같은 날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당헌·당규에서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필요하면 전략공천을 할 수 있게 문이 열려 있다”고 말해 구구한 억측을 낳았다.
이미 출사표를 던진 기존 후보들은 “여야 공히 국민경선제로 가는 추세에서 한 사람을 위해 전략공천을 하는 것은 민주적 정당이기를 포기한 것”(김성순 의원), “당이 충분한 리더십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전략공천을 하는 것은 필패의 길”(이계안 전 의원)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 전 총리가 민주당 후보가 되더라도 야권의 대표후보로 서기까지는 커다란 산 하나가 더 남아 있다. ‘유시민’이라는 산이다. 유 전 장관이 속한 참여당은 지난해 12월 15일 유 전 장관과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을 서울시장 후보로 공식화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치권에선 공직선거법이 정한 거주지 이전 시한(선거일 전 60일)까지 유 전 장관이 서울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할 것이란 소문이 많아 “결국 시장 출마로 가닥을 잡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유 전 장관은 그러나 사석에서도 ‘반드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것’이란 확언은 삼가고 있다는 후문이다. 대신 “누가 후보가 되든 한나라당 후보와 범야권 후보의 ‘1 대 1’ 구도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이런 점 때문에 유 전 장관의 시장 출마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마음은 대선에 가 있음에도 신생 정당인 참여당의 흥행과 대민주당 협상력 강화를 위해 ‘성동격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과 서울시장 후보직을 놓고 끝까지 치열한 협상을 벌이다 후보직을 양보하면서 대신 다른 광역단체장 후보를 따오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유 전 장관은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총리와 달리 유 전 장관은 유력 대선후보로도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선후보 유시민’으로서의 경쟁력이 더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 역시 지난해 11월 22일 참여당 서울시당 창당대회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대통령을 다시 만들자. 내가 할 수 있으면 하고 내가 못하면 할 수 있는 사람과 힘을 합쳐 함께 하겠다”고 말하며 대선을 향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참여당은 여전히 “유 전 장관의 시장 카드는 유효한 것”이라며 협상용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참여당 핵심관계자는 “(독자출마로) 야권이 함께 패하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무작정 양보를 할 생각이었다면 애초 당을 만들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단일화 여부 및 방법론이다. 먼저 한 전 총리와 유 전 장관의 후보단일화는 가능할까. 양측 모두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분열은 곧 패배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29일 <중앙선데이>가 서울지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권단일화 실패시 오세훈 시장은 40.5%를 얻어 각각 17.5%, 14.8%에 그친 한 전 총리와 유 전 장관을 여유 있게 따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당 관계자는 “한 전 총리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양보해야 할 경우가 생기더라도) 당원을 설득하기가 훨씬 쉽다”며 “(단일화 시) 둘 중 누구나 이기는 경우에도, 유 전 장관은 흔쾌히 양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 출마는 필패’라는 점을 십분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 간 우열이 드러날 때다. 양측 모두 “우리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 총리 측 핵심 관계자는 “두 분이 평소에도 긴밀하게 교감하는 만큼 필승 해법을 알고 계실 것”이라며 자연스러운 ‘교통정리’를 낙관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해찬 전 총리의 역할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1월 5일 시민주권 신년 오찬회에서 “지방선거에서 단결이 필요하다. 후보단일화를 이루어 낸다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옆자리에 한 전 총리가 앉아 있었다. 이 전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로 한 전 총리를 밀고 있다는 세간의 관측을 뒷받침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참여당 측은 “현재 페이스만 보면 한 전 총리가 조금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우위를 자신했다. 드러내놓고 얘기하진 못하지만 아무래도 한 전 총리의 재판 일정 등이 선거전을 끌고 가는 데 부담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류다. 민주당 내에서 “집중심리를 한다고 해도 1심 판결이 5월 후보등록 이전까지 나올 것이란 보장이 없다”, “‘일부 유죄’ 판결이라도 받으면 선거는 해보나마나”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한 전 총리와 유 전 장관의 단일화 해법은 범야권 내부의 복잡한 역학관계만큼이나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