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2시 제주시 우당도서관에서 박성호 작가의 북 콘서트가 열렸다.
소강당에는 진지한 눈빛의 소년과 소녀, 질문을 던지는 중년 남자, 아이를 안고 강당을 찾은 여성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날 박성호 작가는 여행 도중 직접 찍은 사진들을 소개하면서 호주 브리스번, 세링게티 사바나와 아마존 정글, 페루의 안데스 산맥 등을 여행한 경험과 한국에 돌아와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줬다.
그는 카이스트에 입학한 뒤 연이어 친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고 달려온 삶에 회의를 느끼고 어떤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인생인지 의문이 들었던 과거를 회고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박성호 작가는 “나는 항상 다른 학부모들이 부러워하는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며 “당연히 인생의 끝은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저는 어린 시절 다섯 개씩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던 ‘대치동 키즈’ 였다”며 “최종 목표 카이스트에 합격했으나 꿈을 이뤘는데 더 이상 성취할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막상 카이스트에 왔더니 1등들이 전국에서 모였지만 행복해 보이는 아이는 없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좋은 대학교에 가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카이스트에 합격하는 순간 ‘나는 이제 성공할 일만 남았구나’하고 스스로 기뻐했지만 이런 생각들이 1년만에 무너지는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베르테르 효과(자신이 담고자 하는 이상형이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대상을 모방해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를 설명하며 몇 년 전에 카이스트 학생들이 매월 한명씩 스스로 목숨을 끓은 사건을 얘기했다
박 작가는 “지난 2011년 카이스트에선 연쇄 자살사건이 일어났다. 겨울부터 봄까지 넉 달 남짓 되는 기간동안 한 달에 한 명씩 학교 친구들이 목숨을 끓는 일이 벌어졌다”고 회고했다.
박 작가는 이어 “하나의 죽음이 또 하나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계에서 자신에게도 조금씩 균열이 생겨났다”며 “19살의 나이에 주변의 죽음을 겪고나니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슬퍼서라기 보다는 공허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순간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공부만 열심히 해서, 어떤 한 가지만 열심히 해서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그러다 군대에 입대하게 됐고 남들은 그렇게 힘들다는 군대생활이 오히려 학교에 다니며 공부할 때보다 행복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치열한 경쟁속에 있다가 군대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고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며 “반복되는 삶속에서의 작은 세상에서는 조금의 문제가 있어도 큰 문제라 여겨졌지만 그것에서 살짝 벗어나 다른 세계를 보고나니 이전에 갖고 있던 문제들이 작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선택한 것은 호주 여행이었다. 벌레가 우글거리는 컨테이너 한쪽 벽에 세계지도를 붙여두고 돈이 생길 때마다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바나나 농장에서 1,000만원을 모아 6대륙 20개국 90여개 도시를 여행하는 일년 동안의 여정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하면 사실 외롭고 힘든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면 그게 아름다웠다고 느껴졌다. 힘든 기억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삶이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순간 몇 개면 결국 삶 전체가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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