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 | ||
그러나 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다. 정부가 롯데 측에 지나친 특혜를 주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맥주시장 진출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법령 개정에 나설 예정이다. 중소업체 신규진입을 늘린다는 것이 취지지만 그동안 맥주시장 진출을 호시탐탐 노려오던 롯데도 그 혜택을 입을 전망이다. 정부와 롯데가 세종시와 관련해 모종의 거래를 했을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 있게 흘러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권과 재계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롯데와 정부의 ‘빅딜설’, 그 실체를 따라가 봤다.
롯데그룹은 현 정권의 ‘우등생’으로 불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최고 수혜기업으로도 꼽힌다. 신격호 회장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제2 롯데월드 건립 허용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2008년 11월엔 서울시 용도변경 완화정책에 따라 서초동에 위치한 롯데칠성음료 소유 대지 7만㎡(2만 1175평)의 땅도 상업지역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주최하는 주요 행사가 그룹 계열사인 롯데호텔에서 자주 열리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과 장경작 호텔롯데 고문과의 친분(고려대학교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을 주목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현대가와 롯데가의 오랜 인연 때문이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현대에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모셨던 이 대통령 역시 신 회장과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는 정부와 ‘코드’를 맞추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동안 롯데는 신 회장의 보수적이고 신중한 경영 방침 탓에 투자엔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현 정권 들어 롯데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특히 그룹의 자타공인 후계자 신동빈 부회장이 그 변화에 앞장섰다. 신 부회장은 ‘수성’과 ‘내수’를 중시했던 아버지와 달리 ‘투자’와 ‘해외진출’을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신 부회장은 지난 1월 15일 이명박 대통령과 가진 ‘투자 및 고용 확대를 위한 30대 그룹 간담회’에서도 “중국 등 해외에서 사업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신 부회장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감하게 사업을 확장했을 것이란 말이 있지만 이는 정확히 본 것이 아니다. 여전히 신 회장 영향력은 막강하다. 신 회장 묵인하에 신 부회장이 M&A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신 부회장 행보는 제2 롯데월드를 허가해 준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최근 2년 동안 이뤄진 M&A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 2008년 2월 대한화재 인수를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두산주류(현 롯데주류)를 매입했고, 얼마 전엔 GS마트와 GS백화점을 사들였다. 롯데는 매각가격이 최대 2조 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에도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그러나 이처럼 거칠 것 없이 기세를 올리고 있는 롯데에게도 뼈아픈 기억이 있다. 바로 지난해 4월 신 부회장이 진두지휘했던 오비맥주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것이다.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두산주류에 이어 맥주까지 인수해 ‘소·맥’을 모두 갖춘 종합주류업체로 거듭나고자 했던 신 부회장의 야심찬 계획은 좌절됐다.
그 이후 신 부회장은 기존 회사 인수가 아닌 새로운 브랜드로 맥주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TF팀을 만들고 준비하긴 했지만 그룹 안팎에서 부정적인 보고들이 많았다고 한다. 주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맥주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아 초기 자본이 엄청나게 들어 아무리 롯데라 하더라도 부담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의 맥주공장 건설은 면허문제 부지확보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지지부진했다는 게 롯데 측 관계자들의 일치된 얘기다.
그런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이를 대폭 완화해주기로 의견을 모으면서 롯데의 맥주시장 진출은 한결 수월해졌다. 위원회는 이러한 결정으로 소규모 제조업자의 신규 진입이 촉진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에 대해서 재계와 주류업계는 의문부호를 단다. 일각에서는 이미 주류업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유통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롯데를 위한 ‘맞춤형 정책’이란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했던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장벽을 낮춰 중소업체들을 발전시키고 있다”면서도 “논의 과정에서 롯데가 신경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도 오해가 생길 것을 우려했다”고 털어놨다.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조석래)의 한 관계자도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롯데가 추진하는 사업에 장벽이 있으면 정부가 잇달아 풀어주고 있지 않느냐. 롯데도 정부 정책에 그 어떤 기업보다 적극적으로 응한다. 이 때문인지 롯데를 시샘하는 기업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로부터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롯데는 세종시 수정안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입주 의사를 밝히며 그에 대한 ‘보답’을 했다. 대기업들 중에선 ‘1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만 하더라도 재계에서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망설이는 기류가 강했다. 특히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세종시 원안에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유치를 핵심으로 하는 수정안에 사활을 걸고 있던 정부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던 상황. 그런데 재계서열 5위의 롯데가 선뜻 세종시에 들어가겠다고 해주니 정부 입장에서는 고맙지 않을 수 없었을 듯하다. 국무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일단 물꼬를 터준 것 아니냐.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점에서 정운찬 총리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주거니 받거니 ‘찰떡궁합’을 과시하던 롯데와 정부는 지난해 말 의견 충돌을 겪기도 했다. 롯데가 세종시에 맥주공장을 짓는 방안을 추진하자 정부가 이를 만류하고 나선 것. 정부 측은 ‘명색이 첨단녹색산업용지인데 맥주공장이 세워져서야 되겠느냐’는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맥주시장을 원하는 롯데에게 규제를 완화해준 마당에 싼 값으로 부지까지 공급해줄 경우 ‘특혜’ 논란이 증폭될 것을 염두에 뒀을 것이란 말도 들린다. 롯데에서도 정부의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여 한때 바이오나 화학 부문 입주를 유력하게 고려했다.
그러나 롯데 내부에서 반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세종시가 맥주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장소로 안성맞춤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또한 충청지역이 전통적으로 수질이 우수하다는 점도 거론됐다. 신 부회장을 비롯한 롯데 고위 임원들은 수차례 회의 끝에 지난 2월 초 다시 한 번 ‘세종시 맥주공장’을 추진하기로 결론을 내렸고, 청와대 측에 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투자액 1000억 원을 어디에 써야 가장 효율이 높을지를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다. 예전 같으면 그 돈 가지고 어림도 없었겠지만 앞으로 규제가 풀리고 또 우리가 싼 값에 부지를 사들이게 되면 맥주공장 하나는 지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 관계자는 “청와대 측에 이러한 우리 뜻을 전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롯데의 이러한 제안에 처음엔 ‘난감하다’며 부정적인 의사를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실무진급에서는 “맥주시장 규제 완화를 더 늦추거나 대상을 중소업체에 한정하자”는 등의 강경 발언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현 정부와 ‘환상의 콤비’로 불리는 롯데의 저력(?)은 역시 대단했다. 얼마 전 청와대가 세종시 맥주공장 건설을 허용해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따지고 보면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닌데 옥신각신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니냐. 지금 수정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괜히 잡음을 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또 롯데는 세종시 입주 대기업 중 처음으로 투자 의사를 밝힌 곳인데 그만 한 대가를 줘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수정안이 통과되면 또 한 번의 ‘특혜’ 논란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