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회장 | ||
▲崔泰源 (Chey Tae Won)
▲1960년 12월3일생
▲1979년 서울 신일고 졸업
▲1983년 고려대 물리학과 졸업
▲1989년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과정 수료
▲1989년 METRA사 근무(Business Development Manager)
▲1991년 SK상사 부장
▲1993년 SK 아메리카 이사대우
▲1994년 SK상사 이사대우(경영기획실 사업개발팀)
▲1995년 SK상사 이사(경영기획실 사업개발팀장)
▲1996년 SK상사 상무, SK(주) 상무
▲1997년 SK(주) 대표이사 부사장
▲1998년 9월~현재 (주)SK 대표이사 회장
신상명세
▲혈액형: B형
▲신장: 179Cm
▲체중: 85Kg
▲종교: 없음
▲존경하는 인물: Dr. Gayle Johnson(고 최종현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시카고대 스승)
▲좌우명: ‘승부에는 최선을 결과에는 승복을’
▲인재관: Multi Functional
▲주량: 소주 1병
▲담배: 비흡연
▲스스로 평가하는 성격: 합리와 효율 중시
▲승용차: 체어맨
▲기호식: 일식
▲특기: 스포츠(테니스)
▲취미: 만능 스포츠맨
▲별명: 없음
▲IMF 시대 경영자에게 필요한 자세: 지식경영
1998년 8월26일 오전 7시40분. 아차산 끝자락에 위치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 옆 최종현 SK그룹 회장 자택은 깊은 슬픔에 휩싸였다. 최 회장이 숙환으로 작고한 것이었다. 이날 새벽 최 회장은 지병인 폐암 증세가 악화돼 서울대병원을 찾았으나, 병세를 호전시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결국 가족들은 최 회장의 뜻에 따라 이날 새벽 자택으로 돌아왔고, 몇시간 뒤 최 회장은 68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최 회장은 오랫동안 폐암으로 고생해오다가 1998년 초부터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그해 6월 미국으로 건너가 대수술까지 받았다. 그러나 말기 판정을 받은 병세를 돌리지는 못했다.
최 회장의 사망은 한국 경제계에 큰 슬픔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한 외유내강의 성격인 그는 1993년 전경련회장 재임 당시 정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뜻을 굽힐 줄 모르는 선비형 기업인이었다.
최 회장이 작고한 뒤 지인들은 부인 박계희 여사가 최 회장의 병간호를 하다 일년 앞서 작고한 것과, 최 회장보다 25년 앞서 폐암에 시달리다가 48세(1973년)에 작고한 친형 최종건 회장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최 회장의 죽음은 한국 경제계에 큰 손실이기도 했다. 그는 수원의 한 작은 직물공장에서 출발한 SK그룹(모기업은 선경직물)을 국내 4대재벌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신경영시스템과 소유-경영의 분리를 실천한 선구적 경영인이었다.
최종현 회장은 1973년 그룹 창업자이자 맏형인 최종건 회장의 뒤를 이어 44세의 나이에 회사 경영을 이어받았다. 이후 그는 1980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면서 SK그룹을 재계의 강자로 부상시켰다. 당시 삼성그룹과 맞붙은 대한석유공사 인수전에서 재계는 막강한 자금력과 로비력을 가진 삼성그룹이 우세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SK그룹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인수전이 끝난 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석유공사를 인수하지 못한 데 대해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이 일 때문인지 지금도 삼성그룹과 SK그룹의 사이는 그리 친하지 않다. 2002년 5월에 있은 KT 지분 매각에서도 SK그룹은 강력한 라이벌이던 삼성그룹을 따돌리고 대주주로 올라서 또다시 삼성그룹을 울리기도 했다.
최종현 회장은 재벌의 총수이기 이전에 학자였다. 생전에 최 회장은 항상 연구하는 경영인의 자세를 견지해 SK그룹의 참신한 기업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가 설립한 SK장학회는 많은 인재들을 길러낸 ‘지식의 보고(寶庫)’ 역할을 했다.
그룹총수에 오른 뒤 SKMS(SK-Management System:선경경영관리시스템)라는 독특한 경영시스템을 만들어 그룹의 경영기반을 다졌다. 또 치열한 경쟁서 살아남기 위해 사업분야별 최고를 지향하는 ‘수펙스(Supex: Super Exellent)운동’을 전개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시대정신을 담은 SKMS와 수펙스운동은 황제경영에 길들여진 한국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시스템은 한국 기업들이 지향해야 할 소유와 경영의 조화라는 목표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지금도 기업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최종현 회장이 작고한 지 엿새 후인 1998년 9월1일, 한국 재계는 ‘최태원’이라는 30대 후반의 한 재벌 2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SK그룹의 새로운 오너로 등장한 그는, 최종현 회장의 장남이었다.
최태원 (주)SK 회장이 SK그룹의 경영 승계자로 확정된 것은 고 최종현 회장의 오일장 절차가 끝났던 1998년 8월30일 밤 열린 가족회의에서였다. 이날 가족회의는 최종현 회장의 빈소가 마련돼 있던 서울 광장동 워커힐빌라 에머랄드홀에서 있었다.
이날 회의에는 SK그룹 창업주인 최종건 전 회장의 직계인 최윤원 SK케미컬 부회장과 최신원, 최창원씨, 그리고 최종현 회장의 직계인 최태원(당시 (주)SK 부사장)과 재원씨 등 다섯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SK그룹 계열사의 대주주들이자 SK가문의 차세대 5인방으로 꼽혀온 사촌 형제들이었다.
이날 열린 가족회의에서 다섯명의 사촌들은 최태원 당시 (주)SK 부사장을 그룹의 경영권 승계자로 정하는 데 합의했다. 사촌형제들 중 맏형인 최윤원 부회장이 “최태원 부사장에게 대주주들의 대표권을 위임하기로 결정하자”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은 가족회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룹회장에 오르진 않았다. SK그룹은 이틀 후인 1998년 9월1일 오전에 열린 계열사 사장단회의 격인 수펙스(SUPEX)회의에서 손길승 회장을 ‘그룹회장’으로 선임하고, 최 회장은 (주)SK의 회장을 맡았다.
그런 결과는 재계의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재계는 당연히 최태원 회장이 그룹회장으로 경영권을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대주주들이 그에게 대표권을 이양했고, 사실상의 오너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선택에 대해 재계에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오갔다. 그 중 지배적인 해석은 “재벌 2세의 경영 대물림에 대해 비판적인 사회여론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손 회장 체제는 과도기에 그칠 것이라고 해석했다.
어쨌든 이 결정은 한국 재벌사에서 처음으로 오너경영인과 전문경영인의 ‘동거시대’를 열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의 시발점’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오너 경영체제에 길들여진 재벌들의 시각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 체제에 대해 SK그룹 내부에서는 한동안 혼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신사업 투자나 임원인사 등 중요한 경영사안을 두고 누구로부터 최종 결재를 받아야 하는지 우왕좌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이같은 혼란은 정리가 됐다. 그룹 구조조정본부 고위관계자는 “신규투자 등 주요 사안은 최고경영자 회의를 통해 이뤄지고, 인사 문제 등은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회장이 협의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매주 월요일 열리는 스티어링(STEERING)회의는 최고 경영인들과 대주주들이 모여 경영 현안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이다. 예컨대 2002년 5월에 있은 KT 지분 인수문제 등도 이 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 회의 의장은 손길승 회장이 맡고 있다.
그렇다면 SK그룹의 이같은 경영체제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딱 부러지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향후 10년 이내에 황제식 경영은 사라진다”며 기존 경영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이는 현재의 경영체제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손길승 회장은 “최 회장이 충분한 경영실습 과정을 거친 뒤 그룹총수에 오를 것이다”는 입장을 수차례 공개했다. 현재의 경영체제가 한시적이며, 자신은 언제든 물러날 수 있다는 뜻이다.
분명한 것은 이같은 동거체제가 출범 5년을 맞으면서 경영의 무게 중심이 조금씩 최태원 회장에게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3월에 단행된 SK그룹 정기 임원인사는 이같은 징후를 엿보게 했다.
2002년도 그룹 정기인사가 단행되기 직전이던 2002년 2월25일 SK그룹 내부에서 벌어진 (주)SK 유승렬 사장의 갑작스런 사표제출도 그 중 하나였다. 유 사장은 40대 후반에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았고, 이어 주력사인 (주)SK 사장에 발탁될 만큼 고속승진 가도를 질주하던 전문경영인이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사표를 던지자 재계에는 최태원 회장과의 불화설이 제기됐다. 불화설의 배경이야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중요한 것은 유 사장이 퇴임하는 것을 기점으로 SK그룹 경영진에 새 얼굴들이 대거 부상했다는 점이었다.
(주)SK 사장으로 최태원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52)이 겸직 발령났고, 박주철 SK글로벌 사장, 홍지호 SK케미컬 부사장 등 50대 초의 신진 세력이 주요 계열사의 최고 경영자로 등장했던 것이다.특히 (주)SK 유정준 전무(40)의 발탁은 최태원 회장이 사실상 SK그룹의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주)SK의 등기이사 명부에까지 오른 유 전무는 그동안 최태원 회장이 가장 신뢰하는 경영인 중 한 명이었다.
SK그룹은 신진 경영인의 등장에 대해 ‘신구의 조화’라고 스스로 평했다. 하지만 2002년 말 현재 60세 이상의 원로급 경영인은 손길승 회장, 황두열 (주)SK 부회장,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 김승정 SK글로벌 부회장 등 네명에 불과한 것은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최고 경영진에 합류한 직후인 1999년과 2000년 정기 인사에서 친인척을 주력사의 핵심 포스트에 대거 포진시킨 부분도 눈여겨 볼 만한 사항이다. 표문수 SK텔레콤 사장(고종사촌),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친동생), 박장석 SKC 부사장(고종사촌), 최창원 SK글로벌 부사장(사촌) 등이 줄줄이 경영의 핵심 포스트에 입성했다.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손길승-최태원의 동거체제는 향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손길승 회장이 오프라인에서 캐쉬카우(Cash-Cow)역할을 맡고, 최태원 회장은 신규사업, e-비즈니스를 진두지휘하는 사업구조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도 한시적일 것이란 게 SK그룹 안팎의 지배적인 견해다. 손길승 회장도 “최 회장이 경영능력을 갖추면 그룹회장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SK그룹 고위 관계자들도 최태원 회장 체제로의 전환은 시간문제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