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성그룹 김호준 전 회장의 자금관리인인 최아무개씨의 검찰 진술서. | ||
사건의 핵심은 부실종금사인 나라종금이 퇴출저지를 위해 로비를 했고, 이 과정에 노 대통령의 일부 측근과 정·관계 유력 인사들이 관여됐다는 의혹이다. 때문에 나라종금 문제는 수사결과에 따라 사정정국과 정계개편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2002년 6월18일 서울지방검찰청서부지청 검사실.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의 K검사는 나라종금 대주주인 보성그룹 김호준 전 회장의 자금관리인인 최아무개씨(47)를 조사했다. K검사가 압수한 (보성그룹 김호준 전 회장의) 비자금 사용내역서를 보여주며 확인을 요구하자 최씨는 “맞다”고 대답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최씨의 진술서에는 김호준 전 회장이 나라종금 계열사가 조성한 비자금 30억원이 입금된 J은행 차명계좌에서 10억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H은행 지점을 통해 10만원 수표로 바꾼 다음 로비용으로 사용한 사실이 나타나 있다.
당시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보성그룹은 계열사인 나라종금의 퇴출을 막기 위해 전방위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의 폭로로 로비대상이 된 정ㆍ재계 인사들 중 몇몇은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다. 여권 고위직을 지낸 H씨(15억원), 중견 정치인 A씨(10억원), 민주당 P의원(2억원)과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A씨(2억원), Y씨(5천만원) 등이 그들(그러나 이들은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 진술서에는 검사가 제시한 비자금사용내역서를 최씨가 확인해 주는 부분이 나온다. | ||
비자금관리인 최씨의 진술과 당시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김호준 전 회장의 비자금 규모는 모두 23개 계좌에 2백3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로비자금은 대략 30억원. 나머지 2백억여원의 비자금 행방은 아직 묘연한 상태다. 이와 관련, 나라종금이 처한 당시 상황과 로비가 집중된 시점(2000년초)을 감안할 때 가장 의혹이 쏠리는 대상은 당시 청와대와 정치권(여권)이다.
김 전 회장은 H씨를 통해 청와대를 두드렸고, 정치인 A·K·Y씨, P의원 등을 활용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 전 회장은 특정학교 출신들을 로비창구로 활용했고, 특정 시기에 로비가 집중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고위직을 지낸 H씨, 중견정치인 A씨, 서울시 고위직을 지낸 K씨 등은 모두 김 전 회장과 학교 선후배 사이다. 민주당 P의원도 나라종금 고위직 A씨와 동문이다.
최씨의 진술서에도 나타나듯 나라종금이 집중적으로 로비를 한 시기는 99년 말과 2000년 초다. 당시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여권의 자금 수요가 높았던 시기였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김 전 회장이 로비 창구로 활용하려 했던 정치인 A씨와 Y씨, 서울시 출신의 K씨 등이 모두 권력실세 K씨·K의원 등과 가까운 관계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김 전 회장의 비자금 2백여억원의 행방이 이들 당시 여권 실세들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나라종금’ 문제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당시 권력의 중심을 이루었던 동교동계가 큰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