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박인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내의 말대로 자신이 변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그런데 아내의 부드러운 몸속을 휘젓던 여운이 채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소갈머리 없는 여편네 같으니. 이게 어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짓인지 알아? 박인철은 아내가 들어간 안방을 쏘아보면서 눈을 부릅떴다. 아내가 선뜻 승낙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 거세게 반대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아내와 격렬한 섹스가 끝난 뒤의 일이었다. 거실 소파에서의 섹스가 불편하기는 했지만 색다른 맛이 있었다. 아내는 그에게 매달려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다.
“오늘 당신 최고야.”
아내는 섹스가 끝나자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그를 끌어안고 속삭이기까지 했다.
“좋았어?”
박인철은 아내의 가슴을 만지면서 물었다. 아내의 가슴에 키스도 하고 입에 넣고 애무도 해주었다.
“응. 좋아서 죽는 줄 알았어.”
아내가 그의 등을 와락 끌어안고 몸부림을 쳤다. 박인철은 아내의 기분이 좋다는 것을 눈치 채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야, 투자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무슨 투자?”
아내는 증권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주식시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IT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켜 차익을 챙기는 거야.”
박인철은 아내에게서 떨어져 담배를 물었다.
“회사 직원들은 못하게 되어 있잖아?”
아내가 속옷을 입으면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니까 다른 투자자 이름으로 공동투자를 해야지.”
“돈이 어디 있어?”
아내의 눈꼬리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아파트를 담보로 3억을 마련하려고 그래.”
“꿈도 꾸지 마. 아파트 하나 남은 것까지 날리려고 그래? 거리에 나앉을 거야?”
아내가 삿대질이라도 하듯이 표독하게 내뱉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의 뒷모습에서 찬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박인철은 아내가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투자비는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증권회사에 근무한다고 해서 주식투자로 모든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증권회사 직원들 중에는 주식투자를 해서 돈을 번 사람들보다 손실을 본 사람들이 더 많았다. 박인철도 아파트 한 채를 날렸기 때문에 아내로부터 오랫동안 구박을 받아야했다. 아내는 이제 주식투자라면 진저리를 냈다.
‘제기랄, 우라질 놈의 여편네가 말도 못 붙이게 하니….’
박인철은 한숨을 내쉬고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때 아내가 잠옷 차림으로 나오더니 박인철을 쏘아보았다.
“아파트는 내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까 내가 죽을 때까지 손댈 생각하지 마. 아파트 건드렸다가는 당장 이혼이야.”
아내가 잡아먹을 듯이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다가 쌀쌀맞게 내뱉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가버렸다. 박인철은 할 수 없이 거실의 소파에 벌렁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나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그에게 안겨서 좋아죽겠다고 신음소리를 내뱉던 아내가 표독해져 신경이 쓰였다. 어떻게 하든지 아내를 설득해야 했으나 마땅하게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박인철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내는 아침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박인철은 그 바람에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출근을 해야했다.
‘망할 놈의 여편네.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생각이 있어.’
박인철은 퇴근을 하자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여관으로 갔다. 아내에게 복수라도 하듯이 여자까지 불렀다. 20만 원을 주고 부른 여자는 몸이 가냘팠으나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치렁치렁했다.
“서울에 출장 오셨어요?”
아가씨가 생글거리고 웃으면서 물었다. 기껏해야 스물대여섯 살밖에 안 되었을 것 같은 젊은 아가씨였다. 캔맥주 몇 개와 오징어 한 마리를 슈퍼에 사오자 푸짐한 기분이었다.
박인철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럼 쫓겨나온 거예요?”
아가씨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자 짧은 미니스커트 안의 노란 속옷이 보였다. 박인철은 하체가 팽팽하게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내가 쫓겨 나와서 좋으냐?”
박인철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이영훈의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키려면 막대한 돈을 벌 것이 확실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을 해야했다. 아내와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투자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3억을 투자해서 20억~30억을 벌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의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에게 남은 것은 이제 아파트 한 채뿐이었다. 여차하면 아파트를 날릴까봐 조심하는 것은 여자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요. 그래서 우리도 먹고 살잖아요.”
“완전히 악취미를 갖고 있군.”
박인철은 아가씨의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호호호. 오빠는 홧김에 오입하는 거네요.”
아가씨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담배를 물었다. 박인철은 일회용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너는 이디오피아에서 왔냐?”
“왜요?”
“살은 없고 뼈다귀만 있잖아. 젖통도 쬐그맣고….”
“이래 봬도 속살은 푸짐해요.”
“벗어 봐. 볼품도 없으면서.”
“이 오빠 여자 옷 벗기는 것도 별나네. 그냥 벗으라고 그러지 왜 돌려서 말을 해요?”
아가씨의 말에 박인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가씨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둘이 옷을 벗고 앉아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내는 지금쯤 전화통만 내려다보면서 눈에 독이 올라 있을 것이었다.
“진짜 말랐다.”
박인철은 아가씨의 젓가락 같은 몸을 만지면서 말했다.
“오빠는 뚱뚱한 여자가 좋아요?”
“흐흐…, 난 이 세상 여자가 다 좋아. 치마 입은 여자, 바지 입은 여자, 살찐 여자, 마른 여자, 작은 여자, 큰 여자…. 그런데 정말 속살이 푸짐하니?”
“호호호. 오빠는 바람둥인가 봐. 만져 보세요.”
아가씨가 웃음을 깨물며 박인철의 옆에 바짝 다가와 앉았다. 옷을 벗었다고는 하지만 브래지어와 속옷차림이었다. 허벅지 사이가 도톰해 보이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박인철은 여자를 안아서 무릎에 앉혔다. 아가씨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가씨는 정말 가냘프네.”
박인철은 술을 마시자 아가씨를 안아서 침대에 눕혔다.
“올라와 봐요. 가냘픈가.”
아가씨가 손짓을 하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박인철은 아가씨 위로 올라가서 등 밑에 손을 넣어 안았다. 아가씨도 박인철의 등에 뱀처럼 팔다리를 휘어 감았다. 가냘픈 아가씨였으나 그녀는 깊고 뜨거웠다. 아가씨는 직업여성답지 않게 활발했다. 몸이 가냘팠으나 착착 휘어 감기는 묘한 맛이 있었다.
이튿날 아침, 박인철은 아가씨와 해장국을 먹고 헤어진 뒤에 출근했다.
“어젯밤에 어디서 잤어?”
퇴근 무렵이 되자 아내가 전화를 걸어서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어디서 잤는지 알아서 뭘해?”
박인철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젠 외박까지 할 거야?”
“마누라가 문까지 걸어 잠갔는데 어떻게 해? 왜 전화했어?”
“나 옷이나 한 벌 사줘.”
“무슨 옷?”
“백화점에서 쇼핑할 거야.”
아내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어 박인철은 가슴이 저렸다.
“지금 회사 근처야. 퇴근하는 대로 나와.”
아내는 명령을 내리듯이 말을 했으나 아파트를 저당잡혀 줄 것이라는 사실을 박인철은 막연히 느낄 수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