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은 아내가 그냥 잠이 들기를 바랐지만 아내는 잠이 오지 않는지 계속 부시럭거렸다.
‘제기랄, 어쩔 수 없이 곗돈을 불입해 주어야 하겠군.’
아내가 하체로 손을 뻗어 오자 김영택은 속으로 입맛을 다시면서 아내를 향해 돌아누웠다. 아내의 둔부를 끌어당겨 안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음을 토하면서 커다란 가슴을 밀착시켜 왔다. 김영택은 아내의 가슴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위로 올라갔다. 아내가 기꺼워하면서 그를 받아 안았다.
“당신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매력이 있어.”
김영택은 아내의 귓전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수많은 여자를 달아오르게 한 김영택이었다. 기왕에 봉사를 할 바에는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정말?”
아내의 목소리에 교태가 묻어났다. 이내 두 사람은 뱀처럼 뒤엉켰다. 김영택은 아내를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상대가 원하는 것 이상을 주는 것이 그의 생활신조였다. 언젠가 오성그룹 이정행 회장의 부친이 골프를 치고 뇌물을 줄 때 1000만 원도 많이 주는 것인데 1억 원을 주었다고 하여 사람들이 역시 한국 최고의 그룹을 만든 사람은 통이 크구나 하고 감탄했다는 소문이 전설처럼 떠돈 적이 있었다. 김영택은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달았다. 백만 원을 뇌물로 주어야 할 때 천만 원을 주고, 천만 원을 주어야 할 때 1억 원을 준다면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아내가 흡족하여 나가떨어진 것은 한참후의 일이었다. 김영택은 비로소 혼곤하게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샤워를 마치고 식탁에 앉자 아내가 정성스럽게 상을 차렸다.
‘흐흐… 늙으나 젊으나 아랫도리 관리를 잘해야 한다니까.’
김영택은 아내와 함께 다정하게 식사를 했다. 지난밤 남편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은 아내의 얼굴이 뽀얗게 피어 있었다.
사무실에 출근하자 은행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퇴출은행을 강제로 인수한 탓에 곳곳에서 마찰이 일어나고 있었다. 퇴출당한 은행원들이 본점이나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가하면 전산실 직원들은 아직도 행방불명이었다. 그러나 김영택은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공권력을 등에 업고 시작한 일이기에 끝내는 그가 승리할 것이었다.
“야, 여직원 하나 본점으로 발령을 내야 하는데 자리 하나 만들어.”
오전 11쯤 되었을 때 김영택은 인사부장 박진우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 박진우는 김영택이 인사부장으로 발탁한 고등학교 후배였기 때문에 죽는 시늉도 할 수 있는 자였다. 한국은 학연, 지연이 이끄는 사회였다.
“선배님, 신입입니까?”
박진우가 공손한 목소리로 물었다. 입속의 혀처럼 움직이는 부하를 거느리는 것은 출세의 비결이다.
“아니야. 퇴출은행 7년차야.”
“그럼 검사부에 배치할까요?”
“인사부에는 자리 없어?”
“만들면 되지만 좀 그렇지 않습니까?”
정희숙을 인사부에 배치하면 현재 있는 직원을 지점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박진우가 난처해하는 것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김영택에게 보고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레 짐작이었다. 박진우 같은 인간을 일일이 감시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검사부에 배치해. 이름은 정희숙이고 전화번호를 알려줄 테니까 이력서 받아서 처리해.”
김영택은 잘라서 지시했다. 박진우는 김영택이 차기 은행장 자리를 노리고 뛰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김영택은 조만간 금융권의 실세가 될 것이다.
“전무님, 너무 고마워요.”
오후 3시가 되자 정희숙이 전화를 걸어왔다. 박진우가 인사 조치를 한 모양이었다.
“발령받았어?”
김영택은 정희숙의 전화가 반가웠다. 룸살롱의 호스티스들은 노류장화였다. 수많은 남자들을 상대하는 그런 여자들은 1회용일 뿐이다.
“네. 내일부터 검사부로 출근하래요.”
“희숙이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검사부가 그래도 파워가 있는 부서거든.”
은행의 검사부는 지점의 비리를 조사하는 부서다. 일부러 친밀감이 들도록 이름을 불렀다.
“저는 너무 고마워요. 죽어도 전무님 신세를 잊지 않을 거예요.”
그야 당연한 말씀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본점에 발령을 내주었는데 내 신세를 잊어? 신세졌다고 생각하면 몸으로 갚아라. 김영택은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오후에 은행장 주관으로 퇴출은행의 반발에 대한 임원대책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져 있었다. 정책을 잘못 시행한 비난은 정부 당국이 받을 것이다.
“주말에 시간 있어?”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최민준이 전화를 걸어왔다.
“예. 선배님.”
최민준은 재정경제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부총리께서 필드에 나가고 싶어 하시는데 같이 나갈래?”
“그럼요. 어느 골프장으로 가고 싶어 하십니까?”
필드 예약은 김영택이 해야 한다. 부총리는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있으므로 은행장 임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부총리님 일정이 있으니까 가까운 곳으로 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이건 비밀에 붙여야 할 사항인데 대화 상대를 해드릴 여자가 있을까?”
최민준이 상당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부총리도 여자의 살이 그리운 모양이다. 정력적으로 일을 하는 자들은 여자 문제도 능동적이다.
“설마 필드에서만 대화 상대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람 참. 뭘 그렇게 노골적으로 물어봐?”
“확실한 것이 좋지 않습니까?”
“필드에서만 대화하는 걸로 해. 나머지는 부총리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옛날에 유부녀 킬러라는 말을 듣던 양반이야.”
“핫핫핫! 어련하시겠습니까?”
“30대 초반이 좋을 거야. 세련되고 밝은 표정의 미인….”
“알겠습니다.”
김영택은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상희 같은 여자는 행적이 잘 알려져 있어 여왕벌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약간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주애란 교수라면 부총리의 상대로 적합할 것이다. 그녀의 남편 조한우가 한창 잘나가고 있어도 주애란이 바람을 피우는 것은 모른다.
‘오래간만에 주애란이나 만날까?’
김영택은 주애란을 생각하자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주애란은 은행의 대출건으로 처음 만나서 간간이 조건 없이 섹스를 하는 사이다. 주애란의 남편 조한우가 워낙 잘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담보가 부족해도 대출을 해주었다. 주애란은 복부인으로 재테크를 했지만 남편 조한우가 경제학 박사이기 때문에 돈을 어떻게 굴리는지 훤했다. 처음에는 이지적인 대학교수라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으나 막상 옷을 벗기자 어떤 여자보다도 적극적이었다. 머릿속에 든 것이 많은 여자가 더욱 남자를 밝힌다. 주애란은 천성적으로 도도하다. 그래서인지 겉으로 보기에는 고결해 보여도 일단 옷을 벗고 나면 짐승처럼 격렬해진다. 조한우는 마침 외국 출장 중이었다.
“김영택입니다. 하하.”
휴대폰에서 주애란의 목소리가 들리자 김영택은 껄껄대고 웃기부터 했다.
“어머, 웬일이야?”
주애란이 반색을 하는 시늉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을 만나고 싶은데 시간이 어떠신가요?”
“후후. 약속도 없이 들이대기부터 할 거야?”
주애란은 반말이다. 기분이 좋다는 신호다.
“교수님을 그리워하고 있는 놈이 있어서 말입니다.”
김영택은 느물거리고 웃었다.
“어떤 놈인데?”
“30cm밖에 안 되는 작은 놈입니다.”
“그놈이 어떻게 30cm나 된다고 그래?”
“흐흐… 믿지 못 하시겠으면 자로 재어 보시던지요.”
“호호. 징그럽게 왜 이래? 자로 재어볼 것도 없어.”
“그럼 확인행정 하셔야지요.”
“좋아, 서강에서 6시에 만나.”
주애란이 웃으면서 말한 뒤에 전화를 끊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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