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서 지원받은 비용으로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학생과 그것을 받는 교사, 그리고 공개적으로 카네이션이 건네지는 과정을 보는 학생들에게 ‘스승의 날’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 시교육청에서는 나름 자구책으로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사제동행 어울림행사’와 ‘문화·예술공연 관람’ 등을 지원하며 스승의 공경과 제자사랑 풍토 조성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나 이것 역시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대구청구고등학교에서 스승의 날을 맞아 교사들이 자체적으로 장학금을 조성,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도움을 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13일 대구청구고등학교에서 ‘장학금 전달식’이 진행된 가운데 학생들과 교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랑의 실천’ 1995년부터 이어와
지난 13일 오전 대구청구고등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을 맞아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학교 세미나실에서 열린 이번 전달식에는 특별한 식순 없이 교사들이 직접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건네며 격려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장학금은 1학년 2명, 2학년 3명, 3학년 3명 총 8명에게 각각 50만 원씩 전달됐으며,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로 학업에 임해 담임 교사로부터 추천을 받은 학생들에게 건네졌다.
청구고교 교사들의 자발적인 장학금 조성은 1995년 5월부터 시작됐다. 그 당시는 국가적으로 학비와 급식비 지원이 이뤄지지 못했다. 교육 분위기도 교사가 학생들에게 매를 들고 직접 지시하며 통제하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당시 청구고교에 재직했던 박영식 교사를 비롯해 4~5명의 교사들은 적은 금액이라도 학생들에게 보태주자고 의견을 모아 장학금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사실 금액은 미미했다. 그러나 교사 개인으로선 적지 않은 돈이었다. 이들은 1995년부터 2009년까지 장학금을 모아 매년 학생 5명을 직접 선정해 30만 원씩 전달했다. 2010년부터는 금액을 늘려 40만 원씩 학생 5명에게 건넸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의 실천’이 줄기차게 이어오면서 학교 전체로 확산됐다.
대구청구고등학교 전경.
현재 청구고교에는 ‘교사장학회’와 ‘교사신우장학회’로 구분돼 장학회 2곳이 자체 운영되고 있으며 총 35명의 교사들이 기금 조성에 동참하고 있다. ‘교사장학회’는 현재까지 4500만 원의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기독교 신자로 구성된 ‘교사신우장학회’는 매달 2만 원씩 모아 현재까지 30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덕분에 총 195명의 학생들이 교사들의 월급을 쪼개 조성한 사랑의 장학금으로 학업을 정진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양 장학회에 적립된 장학금만 1억 2000만 원이 넘어섰다. 앞으로도 많은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예정이다.
교사들의 자발적인 장학기금 조성은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은 물론 인성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교사들 역시 어려운 가운데 모은 기금이 학생들에게 직접 돌아가는 것을 보며 자긍심을 느낀다고 한다. 덕분에 청구고교에서는 퇴직 교사가 100만~200만 원씩 장학회에 찬조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적지만 결코 적지 않은 사랑의 장학금. 어떤 학생들에게 줄지도 고민이다. 사실상 경제가 아주 어려운 학생들의 경우는 차상위 또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으로 분류돼 학교를 다니는 부분에서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그중에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학생들이 존재한다. 기초수급·차상위 대상에 속하지 않지만 학교 납부금이 밀리거나 부모가 없는 결손가정 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 등이다.
# 성적 아닌 ‘어렵고 격려 필요한 학생’이 대상
청구고교의 교사장학금 선정기준은 성적이 아닌 ‘어렵고 격려가 필요한 학생’이다. 각 학년별로 담임교사의 추천을 통해 어려운 학생들을 선발한다. 취지가 ‘격려’이기에 선발은 더욱 심혈을 기울이며 또한 투명하게 한다. 덕분에 교사들은 더욱 학생들의 주변 환경에 귀를 기울인다. 학생들이 이러한 교사들의 관심에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대구청구고등학교에 마련된 ‘학습강화물품’. 교사들은 학생들의 격려차원에서 인기있는 펜과 노트를 건네주며 수업의 질을 높이고 있다.
장학금뿐만 아니라 ‘학습강화물품’에도 청구고교만의 특이점이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교사 개인이 사탕 등을 건네는 것은 나름의 노하우이다. 그러나 청구고교는 다르다. 학생들이 좋아하고 인기있는 필기구와 연습장 등 600만~700만 원어치를 구매해 보관함에 쌓아뒀다. 교사들은 이 보관함에 있는 ‘학습강화물품’을 가져다가 수업에 충실하거나 격려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전달한다. 아예 연습장은 시중보다 싸게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이것 역시 격려와 장려의 접근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박영식 교감(58)은 “청구고등학교의 교훈은 ‘사랑의 실천’이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지식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사랑을 선보이고자 이같은 기금이 마련됐다. 이러한 취지가 학생들에게 희망과 격려가 되는 활동으로 계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자신의 힘든 부분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고 이후 사회에서 후배와 이웃들에게도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되면 더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 동구 신천동에 위치한 청구고등학교(靑丘高等學校)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교훈으로 ‘근면, 성실, 봉사’를 기조로 한다. 도덕인, 창조인, 자주인, 건강인 양성이라는 교육목표 아래 사랑을 실천하는 청구인상을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자랑스러운 청구인 8대 덕목인 정직, 근면, 봉사, 사랑, 인내, 노력, 꿈, 이상을 목표로 인재양성에 주력하는 청구고교는 권영진 대구시장, 강신명 전 경찰청장, 박주영 국가대표 등 걸출한 인재를 배출한 바 있다.
남경원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