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구에 위치한 한국철도공사 가야철도사업소 입구 모습.
국가는 국토의 원활한 관리를 목적에 두고 모든 토지는 사용 용도에 맞게 지목을 변경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길 시에 형사 처벌을 받도록 마련해놓은 법적 장치가 바로 공간관리법이다.
하지만 정부와 관련 기관 등이 해당 법률을 무시하고 안일하게 여기는 게 현실이다. 법을 만들어 놓고도 사실상 유명무실한 법률로 치부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해당 법률의 위반이 일반 국민보다는 정부가 운영하는 공기업 등에서 주로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공기업이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 치외법권적인 권한을 가진 곳으로 군림한다는 얘기인데, 코레일 부산지역본부 가야철도사업소가 바로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공간관리법 위반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기업이 소유한 토지에 따라 납부하는 지방세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지자체는 이를 근거로 기대할 수 있는 세수가 사라지게 된다.
한국철도공사 가야차량사업소는 부산 서면 한 가운데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업소 일부 구간에 대한 취재 결과 공간관리법 위반이 의심되는 필지가 총 43개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목은 농경지, 묘지, 도로, 하천, 산 등으로 다양했다.
해당 필지들은 가야차량사업소 관할 내에 있지만 여전히 정부 소유로 되어 있다.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중요한 이유는 국가 소유의 토지는 지방세 납부 대상이 아닌 까닭이다. 코레일이 자신들의 소유로 토지를 불하받지 않고, 지금처럼 국가 소유로 그대로 방치할 경우 상당한 액수의 재산세를 부산진구청에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재산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공간관리법 위반이 의심되는 토지 면적 약 3만 1402㎡ 가운데 5815㎡에 달하는 14필지는 공시지가가 현재 0원인 상태다. 사실상 재산세를 부과할 근거 자체가 ‘제로’인 셈이다. 현재 인근 토지 공시지가는 82만 원가량이다. 불과 이 14필지에서만 47억여 원을 기준으로 부과되는 재산세를 납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코레일은 공기업 가운데에서도 확실한 수익사업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재산세를 납부하기 위해 토지소유자인 국가로부터 토지를 속히 불하받아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금처럼 일부만 소유권 이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공간관리법 제81조 지목변경 신청에 의거해 2005년 관계관청에 지목변경 신청과 지적공주 발급을 요청했으나, 당시 부산진구청으로부터 토지의 이용현황을 육안으로 판단하기 힘들다는 사유로 지목변경이 불가하다고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부산진구청 토지지적과에 지목변경 가능 여부를 재차 문의했고, 당감동 일대를 대상으로 토지합병을 통한 지적정리를 계획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다”며 “이에 앞서 토지 등 시설에 관련한 문제는 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 처리해야 했다”고 말했다.
코레일 측의 해명에서 먼저 주목되는 대목은 지목변경 요구에도 부산진구청이 이를 미뤘다는 점이다. 코레일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부산진구청은 세금을 납부하겠다는 납세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를 징수하지 않은 이른바 ‘직무유기’를 한 꼴이 된다.
코레일 측이 함께 언급한 “시설에 관한 문제는 철도시설관리공단에 있다”는 해명에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철도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우리 공단은 신설 철도 건설에만 관여할 뿐, 이후 철도 운영에 대한 권한은 없다”고 밝혔다.
정민규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