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방송 전에는 불륜 미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오세연’은 불륜이 가져오는 비극을 현실적으로 그리며 오히려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3년의 공백을 딛고 돌아온 박하선, 그 사이 결혼 후 엄마가 된 그는 한층 무르익은 연기로 여주인공 손지은 역을 나무랄 데 없이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오랜만에 후유증이 큰 작품을 한 것 같아요. 아직도 집에서 ‘멍 때리고’ 있으면 쓰라려요. 벗어나려고 염색도 하고, 여러 책이나 작품도 찾아보고 있어요. 불륜을 하면 이렇게 망가지고 죽을 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려주는 드라마였죠. ‘설레면 안 돼요, 안 돼요’라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그래서 마지막 별장신(scene)에서의 키스신까지 빼버렸죠.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불편하면 안 되니까요.”
사진 제공 = 키이스트
‘오세연’에는 여러가지 별명이 붙었다. ‘아이 나오면 끄는 드라마’, ‘남편 몰래 보는 드라마’ 등이다. 남편에게 외면 받은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사랑을 받으며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니, 이런 수식어가 붙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하선의 남편인 배우 류수영은 먼저 대본을 챙겨보고 박하선에게 이 드라마의 출연을 적극 권하기도 했다. 과연 드라마가 끝난 후 남편의 반응은 어땠을까.
“남편이요? 음… ‘오세연’을 몰래 다 본 것 같기는 해요. 이 드라마에 출연하고 유독 더 잘해줘요. 느끼는 게 많지 않았을까요? ‘생각보다 네(박하선)가 예쁘고 젊구나’라고요. 정말 상상력이 대단한 대본이었어요. 저 역시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미친 대본을 쓰셨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감정(불륜)이 너무 힘들어서 ‘난 첫 번째 남편이랑 생을 마감할래’라고 마음먹었죠(웃음).”
박하선은 ‘오세연’ 전까지는 발랄하고 때로는 푼수 같은 캐릭터로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었다.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여파다. 결혼 전 히트작인 ‘혼술남녀’에서도 특유의 밝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그렇기 때문일까? ‘오세연’을 택한 박하선을 향한 불편한 시선도 있었다. ‘결혼하지 않았어도 이 작품을 택했을까?’라는 의구심이다. ‘오세연’의 작품성으로, 자신의 연기력으로 이런 시선을 단박에 날려 보낸 박하선은 당당히 말한다.
“이런 일련의 경험(결혼, 출산)이 없었으면 ‘오세연’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했을 거예요. 노력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박하선이 아니었다면 안 됐을 것’, ‘당신이 그런 경험을 해서 너무 좋았다’는 반응과 평가가 더 고마웠어요. 사실 대한민국 여배우를 향한 슬픈 편견이 있어요. 그게 제가 공백이 길어진 이유이기도 해요. 개인 박하선으로서는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느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오세연’에 임했어요.“
사진 제공 = 키이스트
“‘동이’에 출연할 때는 ‘그런 것만 할 줄 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하이킥’ 이후 이미지를 너무 틀었는지, ‘정극을 못 한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그래서 ‘오세연’은 박하선에 대한 편견을 또 한 번 깨준 고마운 작품이에요. (웃으며) 저는 도도하고 섹시한 역할도 할 수 있는데 안 시켜주시네요. 생각보다 못된 것도 잘할 수 있어요, 하하.”
3년 만에 다시 카메라 앞에 선 박하선. ‘오세연’ 제작발표회 당시 만났던 박하선은 다소 상기돼 있었다. 어렵게 선택한 차기작을 과연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 컸을 법하다. 하지만 ‘오세연’을 마친 후 다시 만난 박하선의 얼굴에는 웃음과 생기가 돌았다. 그는 편안한 말투로 “연기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20대 때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몰라요. 저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고마운 것인지도 모르고 일했어요. 촬영장에 나갈 때도 소가 도축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죠. 요즘은 집에서 나오면서 접하는 새벽 공기도 좋아요. 30대가 되면서 일하는 게 편하고 재미있어진 것 같아요. ‘힘들어요’라며 먼저 다가오는 후배들을 대하는 것도 즐거워요. 나름 30대가 되면서 주변에서 어른 대접을 해주니 책임감도 생기고, 주변도 돌아보게 돼요.”
반년에 걸친 작업이 끝났지만, 박하선은 내일 당장 다시 촬영장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이 넘쳐 보였다. 그런 그에게 차기작 계획을 물으니 “뭐든 안 가린다”는 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지난 3년여의 공백기에 대해 “군대 다녀온 것 같다”고 건네는 그의 농담에는 아주 굵직한 뼈가 들어있는 듯했다.
“차기작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데 드라마도 가리지 않아요. 일이 재미있을 때 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예능 출연도 열려 있어요. 여행도 좋아하고, 요리도 좋아해요. 저 클라이밍, 가죽공예, 플라잉요가 다 할 줄 알아요. 20대 때는 다 소진시키고 텅 빈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뭔가 채워졌구나’라고 느껴요. 아직 보여드릴 게 너무 많아요. 전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