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희 대구시교육감과 권영진 대구시장, 배지숙 대구시의회의장, 류한국 대구시 구청장·군수협의회장(왼쪽부터)이 10월 31일 대구시청 2층 회의실에서 내년 고3 학생부터 2022년까지 단계적 고교 무상급식을 실시키로 서명한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권영진 시장과 강은희 교육감, 배지숙 시의회의장, 류한국 지역 구청장·군수협의회장은 이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내년부터 대구지역 고3학생 2만 2000여 명을 시작으로 오는 2022년까지 고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이에 띠라 당장 내년부터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168억 원의 비용에 대해서는 대구시 40%, 대구시교육청 50%, 구·군이 10% 비율로 각각 분담키로 했다. 다만, 구·군의 어려운 재정 여건을 감안, 내년에 한해서만 대구시가 45%, 대구시교육청이 55%을 분담, 구·군의 부담을 줄여 주기로 했다.
대구시는 2017년 초등학교 4~6학년 무상급식을 시작으로 지난해 초교 전체 무상급식에 이어 올해 중학교 전체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내년 고3학생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전면 무상급식에 들어가면, 2022년도 무상급식 예산은 초·중·고 포함 모두 약 1343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급선회 방침에 앞서 그간 학교 무상급식 꼴찌탈출을 위한 대구시와 학부모, 시민·사회단체 간에는 눈물겨운 공방이 이어져 왔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올해 겨우 막차로 중학교 전면 무상급식까지 실시한 대구시가 최근 예산 때문에 고교 무상급식의 내년 시행이 어렵다는 뜻을 밝히면서 학부모와 시민·사회단체가 발끈하고 나섰다. 무상급식 꼴찌 지자체로 앞뒤를 다투던 경북도도 이보다 앞서 도교육청과 내년부터 2022년까지 단계적 고교 무상급식 시행을 확정하면서 분노는 커져왔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은 성명에서 “대구시가 매번 예산 핑계만 대면서 27년째 1인당 지역내총생산 전국 꼴찌란 불명예와 함께 이젠 10년 넘게 무상급식 전국 꼴찌란 오명도 더하게 됐다”고 맹비난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도 “대구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고교 무상급식에서 차별 받는 것은 복지형평성에도 어긋나는 것이며, 시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비난이 거센 가운데 권영진 시장의 발언도 화를 돋웠다. 권 시장이 10월 24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내년도 시 사업방향을 밝히면서 고교 무상급식을 이른바 ‘군살사업’으로 분류하면서다. 권 시장은 이 날 회의에서 세수부족과 정부 복지사업 확대 기조로 인한 예산편성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가운데 내년 시 사업에 대한 ‘다이어트’를 주문했다. 여기에 내년 고교 무상급식을 언급하면서 분노가 더 커졌다.
권 시장은 회의에서 “지금은 대구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과 미뤄도 되는 사업을 구별해 지혜롭게 대응해야 할 때”라면서 “올해 중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면서 적잖은 예산이 들어갔기 때문에 내년 고교 무상급식은 시간 조율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도 시 사업에 대한 이른바 ‘군살빼기’에 고교 무상급식이 들어가자 다방면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민주당 대구시당은 “교육복지는 미뤄도 되는 사업이 아니라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해야 할 사업”이라며 대구시의 교육복지에 대한 인식을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도 “전국이 무상인데 대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대구 고교생만 돈 내고 급식먹는 차별을 받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대구시와 대구시교육청은 올해 초·중학생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고교생은 중위소득 104% 이하(월소득 480만 원), 대구 전체 고교생의 34% 가구에만 급식비를 지원하고 있다. 앞서 대구시와 시교육청, 구·군은 올해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에 예산 1175억 원이 들어가고, 고교 전면 무상급식을 하려면 약 365억 원이 더 필요한 것으로 내다봤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이 올해 대구지역 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한 첫 날인 지난 3월 4일 서대구중학교에서 점심 배식봉사와 식사 배식을 함께 받고 있다. 대구시는 올해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막차로 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지자체에 이름을 올렸다. 사진=대구시 제공
하지만 학부모,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은 달랐다. 이들은 “전국 모든 자치단체와 교육청이 똑같이 예산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고교 무상급식, 무상교복 등 무상교육 정책으로 나아가고 있고, 재정자립도가 대구와 비슷한 대전과 부산, 심지어는 더 낮은 전북도 고교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고 반박하며, 예산편성 기조를 ‘미래 청년’과 ‘사람’에게 투자할 것을 요구해 왔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은 “아직 대구시가 예산안을 시의회에 보내지 않아 정확하게 내년 예산을 알 수 없다”면서도 “시가 지방세수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그간 추세로 볼 때 대구시 세입부분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재정 여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복지연합이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대구시 재정을 토대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대구시 예산은 2.9~11.5%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지방세도 2.4~12.1%까지 늘었다. 은재식 복지연합 사무처장은 “권영진 시장이 대구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과 미뤄도 되는 사업을 구별해 대응해야 한다면서 내년 고교 무상급식을 뺐는데 청년정책을 강조해 왔던 권 시장이 미래 청년들에게 깊은 상처와 오명을 줬다”면서 “도대체 왜 이 사업은 미뤄도 되는지 분명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전국 고교 무상급식 상황을 보면 지난해부터 세종시, 강원도, 전북도, 울산시, 전남도, 제주시, 인천시 등 7곳이 시작했다. 이어 충북도, 충남도, 경남도, 경기도, 광주시 등 5곳은 올해 고교 전면 무상급식을 도입했다. 서울시, 부산시, 대전시는 올해부터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고교 전면 무상급식을 하기로 했다.
여기에 상생 파트너인 경북도까지 내년부터 2022년까지 단계적 고교 전면 무상급식을 하기로 하면서 대구만 또 고교 전면 무상급식 불모지로 남게 되면서 원성이 커진 것이다. 경북도의 경우 내년 고3학생부터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데 약 152억 원이 들것으로 보고 도교육청이 55%, 지자체가 45%를 나눠 부담키로 했다. 대구시의 경우 올해 중학교 6만 3197명 학생에 대한 전면 무상급식에 필요한 비용 416억 원을 대구시 40%, 대구시교육청 50%, 8개 구·군이 10%씩 각각 분담하고 있다.
내년 고교 무상급식이 어렵다던 대구시가 불과 일주일 만에 시행으로 급선회한 배경를 묻는 질문에 권영진 시장은 “교육청과 시의회, 구·군은 예산이 어렵더라도 내년부터 시행하는게 좋다는 생각이었지만, 대구시는 2021년부터 시작해 2022년까지 2년에 걸쳐 완성하자는 의견을 갖고 시간 조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지난 확대간부회의에서 밝혔다”면서 “이것이 마치 대구시가 무상급식을 안하는 것으로 와전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2021년 세계가스총회, 공원일몰제 문제 해결, 미래산업 인재양성 프로젝트인 휴스타프로젝트 등 굵직한 문제가 해소되면 재정사정이 나아져 2021년부터 하려고 했다”면서 “하지만 최근 학부모와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을 통해 대구만 무상급식을 안한다는 부정적 여론이 커지면서 어차피 할 바에는 한 해 늦추지 말고 2년에 걸쳐 완성하는 걸 3년에 걸쳐 완성하면 되지 않느냐 해서 협의 끝에 전 날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부정적 여론을 수용해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도 내년부터 고교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게 됐지만 당장 세수가 안나오면 예비비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는 바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은 “이번 합의로 17개 광역시·도 중 홀로 고교 무상급식을 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며, 10년 가까이 전국 꼴찌라는 불명예를 벗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늦었지만 환영한다”면서도 “여전히 선별급식을 해야 하는 내년 고 1·2학년 학생들에 대한 무상급식도 조기시행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성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