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모여있는 서울 서초구 도로를 점거한 집회자들 모습
[일요신문]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삼성중공업) 퇴출협력사 대표 여덟 명이 지난 18일부터 서울 서초구 삼성그룹 본사에서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라고 무기한 집회를 시작했다. 국내 최대 그룹집단인 삼성을 향한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이 모인다.
삼성그룹 본사가 모여있는 곳 일대의 도로는 현재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라는 집회자의 확성기 소리와 현수막 등으로 얼룩져 있다. 정부와 시민, 그리고 지역언론조차 철저히 외면한 이들이 힘겨운 싸움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상경 투쟁에 나선 일차적인 이유는 그동안 이어진 조선업계의 불황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불황을 모르며 ‘고공 성장의 땅 거제’, ‘개도 1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는 기회의 땅’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던 거제는 조선업 경기 하락으로 지역경제가 곤두박질쳤다. 자살과 가정파탄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속출했다.
한때 조선산업의 역군들이었던 삼성중공업 퇴출협력사 관계자들이 망치 대신 투쟁의 깃발을 들어야 했던 보다 구체적인 까닭은 원청이었던 삼성중공업 측의 태도에 있다.
이들은 조선경기 활황으로 많은 인력을 투입했으나, 터무니없는 집세 등으로 인해 직원들이 잘 곳이 마땅하지 않자 안정적인 인력수급 차원에서 2013년 삼성중공업과 함께 기숙사 건립을 추진했다.
그렇게 마련된 삼성중공업협력회사복지기숙사는 2015년 준공돼 협력사 근로자에게 무상으로 제공됐다. 하지만 이 기숙사는 현재 조선경기 하락으로 용도 폐기 수준으로 전락했다.
당시 협력사가 기숙사를 분양받게 된 것은 삼성중공업에서 지속적으로 공사 수주를 받는 상황을 전제로 했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협력사를 위해 기업은행 대출까지 알선했다. 대출은 삼성중공업이 이자를 책임지고 원리금은 협력사에 매월 지급하는 기성금에서 공제한다는 특약으로 이뤄졌다. 사실상 기성금을 담보로 대출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중공업 퇴출협력사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기숙사를 분양받은 배경으로 삼성중공업 관계자로부터 계약 종료 시 ‘책임지고 분양받은 기숙사를 타 협력사가 인수하거나 삼성중공업이 인수하겠다’는 구두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퇴출협력사 주장에 따르면 바로 이 대목에서 삼성중공업 측에서 태도를 바꿨기 때문에 갈등은 불거졌다. 조선경기가 얼어붙자 2017년부터 삼성중공업과 계약이 해지되거나 퇴출되는 협력사가 늘어났다. 이들 퇴출협력사는 부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기숙사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했다. 결국 퇴출협력사들은 매월 수백만 원이라는 기숙사 관리비가 지불되는 관계로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기숙사를 소유한 퇴출협력사들은 삼성중공업이 기숙사 건립 당시 약속한 것만 지켜주면 된다는 입장이다. 기숙사는 타 용도로 변경이 불가능한 건축물이다. 주거지와는 동떨어진 야산에 건립돼 임대사업으로 전환이 불가능하며 오로지 기숙사로만 사용해야 한다.
삼성중공업 퇴출협력사 8인 대표는 “기숙사 운영은 수익을 내는 사업이 아니다. 운영하면 할수록 금전적 손실이 발생한다. 먹고 살기 위해 삼성중공업 말만 믿고 따른 죄밖에 없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이라도 이 자리에서 싸울 것이다. 삼성중공업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고발 조치하는 등 강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측의 입장은 퇴출협력사와는 달랐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협력사의 입장은 사실무근이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구두약속을 한 사실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민규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