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신주류 주니어그룹의 인사들은 통합신당이 아닌 ‘개혁신당’ 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올 초 열린 당 쇄신을 위한 모임. 신기남 정동영 의원(왼쪽부터) 등의 모습이 보인다. | ||
“당연한 일이다. 집권에 기여한 세력이 과거 기득권 세력을 제압하고 주체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바로 창당이다. 내부적으로 개혁을 한다고 하지만,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구체제 인사들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신주류가 당권 중심에 서기 위해서도 창당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87년 대선 이후 내리 15년을 정치권에 몸담아 온 한 인사의 촌평이다.
‘개혁’과 ‘통합’을 앞세우고 있는 민주당 신당 논의가 일정 부분 집권세력 내부에서 권력투쟁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은 정치권 전체에 대한 개혁과 통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실제 민주당 신주류가 신당 논의에 불을 지피며 개혁을 앞세우고 있지만 속내는 ‘인적청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게 정가의 시각이다.
특히 인적청산의 화살은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권력 핵심으로 자리잡아왔던 ‘동교동 구파’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탈당했다 복당한 ‘후단협’ 인사들을 겨냥하고 있는 양상이다. 즉 민주당 신주류가 인적청산을 통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전면에 포진시키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한화갑 전 대표를 퇴진시킨 뒤 노무현 대통령 선대위원장을 지낸 정대철 위원장이 대표를 승계하고, 노 대통령의 측근 이강철 정무특보를 대구시지부장에 내정한 것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러나 이 같은 부분적인 인적청산과 빈자리 채우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절차를 통한 인적구성 교체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 정권은 취임한 지 1년 만에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한가로이 세력교체를 할 만한 시간이 부족한 형편. 민주당 신주류 인사들이 개혁안을 마련했지만 또다시 신당 창당 카드를 들고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개혁안에 기초한 절차적 세력교체를 포기하는 대신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을 통한 전격적 인적교체와 세력교체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 신주류 중심의 신당 논의는 전국정당화를 명분으로 한 ‘탈DJ 탈호남’으로 요약된다. 최근 신당 논의 과정에 정균환 총무, 박상천 최고위원 등 DJ정권 핵심인사들에 대한 배제 움직임은 탈DJ와 무관치 않다. 또한 신당 논의와 발맞춰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 신주류 중심으로 정치개혁연대를 발족시키는 것은 향후 신당 창당 과정에 탈호남을 위한 예비작업인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민주당 신주류의 신당 논의는 딜레마에 빠졌다.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후보’로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이 탈DJ 탈호남을 위한 신당 창당에 돌입하면서 집권기반에 심각한 균열이 초래될지도 모를 상황이기 때문.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단행된 청와대, 내각 인선 후 불어닥친 ‘호남소외론’이 그것이다.
▲ 지난 7일 청와대에서 만난 정대철 민주당 대표 (왼쪽)와 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노무현 대통령 등 청와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칫 민주당이 양분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현실’이 민주당 신당 논의 과정에 ‘6인 중진회의’가 자연스레 개입하게 된 배경이다.
6인 중진회의를 처음 제안한 이는 김근태 의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서는 청와대 개입설도 흘러 나온다. 민주당 신당 추진이 분열로 흐르는 것을 막고, 청와대의 의중이 일정 수준 반영될 수 있도록 안전판을 마련키 위해 6인 중진회의에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신당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민주당 신주류 인사들과 노무현 대통령의 관계는 어떠할까. 일단 신주류 인사들의 신당 추진은 노 대통령의 의중에 따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반응은 이와 조금 다르다.
노 대통령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지난 4월 국회에서 행한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며 “노 대통령이 주문한 것은 국회 차원에서 정치개혁을 위한 제도개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이 같은 대통령의 주문에 대해 민주당 신주류 어느 누구도 추진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노 대통령은 민주당 신주류 인사들의 최근 신당 논의에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 한 인사도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의 임무 수행에 당에서 얼마나 서포트를 하는지 회의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북송금 특검을 공포한 뒤 호남소외론이 제기됐을 때 신주류 인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나서 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하려 하지 않았다”며 “이제 와서 신당 추진에 앞장서는 것은 자칫 당권투쟁으로 비칠 소지가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마냥 지켜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일단 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일부 인사들은 공식·비공식적인 면담을 통해 민주당 신주류 인사들과 꾸준히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취임 초기 신기남, 천정배 의원 등이 주로 노 대통령과 면담했다면 최근에는 이해찬 의원 등이 자주 청와대를 찾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대철 대표를 비롯, 이상수 의원 등도 단골 면담 손님이다. 최근 민주당 신당 논의가 개혁신당에서 통합신당으로 입장이 선회한 것은 청와대측의 의중과 무관치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신당 논의는 이제 대세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민주당 신주류 주도의 신당 논의에 구주류 인사들도 가세하면서 신당 논의는 그 색깔이 다소 애매해진 상태다.
특히 한화갑 전 대표의 거취에 따라서 신당 논의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 영향력을 확대재생산해야 하는 신주류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한 전 대표를 끌어안아야 하지만 이 경우 적지 않은 몫을 배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한 전 대표를 배제할 경우 호남 민심이 더욱 흐트러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손쉬운 ‘뺄셈정치’를 하자니, 권력기반의 붕괴가 우려되고, ‘덧셈정치’를 하자니 들이는 시간과 노력과 정성에 비해 얻게 되는 ‘파이’가 별로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인 것이다.
민주 ‘신당호’는 이처럼 세력간 이해득실과 속사정이 엇갈리면서 좀처럼 돛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