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표는 한 사석에서 측근들에게 이런 물음을 던졌다고 한다.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대통령을 모두 총탄에 잃은 그는 보통 사람이 답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닌, 실제로 그런 끔찍하고 불행한 일을 당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때의 고통은 살가죽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박 전 대표는 “그런 절망적인 고통 속에서 가장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이 바로 ‘배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이성헌 의원). 경위야 어떻게 됐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핵심 측근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쓰러졌고, 그 뒤 가족 같았던 부하들이 냉정하게 박근혜 전 대표를 모른 체하며 돌아설 때 그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신의와 신뢰’였던 것이다. 목숨 같은 신의가 풍비박산 난 것을 목도했던 박 전 대표로서는 배신하지 않고 신의를 지키는 것을 ‘박근혜 정치의 철학이자 원칙’으로 삼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박 전 대표를 6년여 동안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모셨던’ 김무성 의원이 최대 정적인 친이 직계의 ‘추대’로 원내대표직에 올랐다. 국민들은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김무성 의원의 유연한 소신과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가장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배신”이라는 박 전 대표의 절대적 원칙 속에서 가치충돌을 경험하고 있다. ‘민자당이라는 호랑이굴에 들어가 권력을 쟁취해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그대로 전수받은 김 의원으로서는 친박에서 친이로의 유턴이 ‘정권 재창출’이라는 명분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03년 일면식도 없던 김무성 의원에게 ‘오랫동안 지켜봤어요’라며 사무총장직을 전격 제안, 친박의 좌장으로까지 만들어준 박 전 대표가 그에게서 느끼는 것은 ‘배신감’ 이상의 것일 수 있다.
정치권의 시각도 두 사람의 이런 기류를 반영하고 있다. 먼저 김 의원의 ‘배신’을 계파 갈등을 넘어서기 위한 정치적 결단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치에 영원한 적은 없다. 김 의원이 비록 박 전 대표와 결별했지만, 친이 진영으로 들어가(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자당 진영으로 들어간 것처럼) 자신의 조직과 자금력을 동원해 ‘적군’을 ‘아군’으로 만들어 다시 박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금의환향’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의원 추대 과정에서 친이계 일각에서는 그가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다며 반대를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친박 강경파들은 그의 행보를 전형적인 배신행위로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이 파놓은 덫에 드디어 걸려들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친박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래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그가 왜 이 대통령이 던져준 ‘찬밥’을 덥석 물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