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영수(삼성 라이온즈), 박명환 (LG 트윈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ㆍLG 트윈스 |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입니다.”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배영수(29)는 “속구 구속이 얼마나 나오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도인처럼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게 당시 배영수의 속구 구속은 시속 140km를 넘지 못했다.
한때 시속 156km를 뿌리며 국내 최고의 강속구 투수로 꼽혔던 배영수가 자신의 공을 ‘하늘에 둥둥 떠다닌다’고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문제는 배영수의 잃어버린 구속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2004년 다승왕(17승)에 오르며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까지 석권한 배영수는 2005년과 2006년 삼성의 2년 연속 정상 등극을 이끌었다. 하지만 팀의 영광 뒤에 배영수 자신은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원래 팔꿈치가 좋지 않았던 데다 무리한 투구 탓에 팔꿈치 인대가 찢긴 상태였다. 여기다 과도한 진통제 투여로 뼈까지 녹아내려 수술을 받아도 재기가 불투명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2007년 오른쪽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배영수는 고된 재활을 마치고 1년 만에 복귀했다. 주변에선 그의 이른 복귀를 두고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은 기적이 아니라 성급한 모험이었다. 2008년 9승8패 평균자책 4.55를 기록했지만 내용은 좋지 않았다. 구속은 예전 같지 않았고 제구도 실망스러웠다. 무엇보다 몸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였는지라 이번에는 아킬레스건이 아팠다. 당연한 이유로 2009시즌은 최악이었다. 1승12패 평균자책 7.26을 기록했다. 그즈음 배영수는 야구장에 올 때면 고개를 푹 숙였다. 누가 자길 알아볼까 싶어서였다.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 배영수의 진심이다.
그러나 배영수는 포기 대신 다시 신발 끈을 묶었다. 결국 피나는 노력 끝에 자신만의 생존법을 터득했다. 강속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구속이 떨어져도 낮게 던지는 예리한 제구에 집중했다.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에서 이길 요량으로 타자마다 타석마다 투구 박자도 달리했다. 전매특허였던 포크볼을 과감히 버리고 서클체인지업을 구사했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찾는 데 주력했다. 선동열 삼성 감독은 “(배)영수가 ‘칠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과감하게 몸 쪽 승부를 한다”며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면 그렇게 던지기 어렵다”는 말로 돌아온 에이스를 칭찬했다.
배영수는 4월 17일 현재 세 경기에 등판해 2승무패 평균자책 0.47을 기록 중이다.
#투수조 리더로 거듭난 박명환
2000년대 초반 한국프로야구 시장에서 가장 확실한 평가를 받았던 이가 박명환(33)이다. 2006년 12월 두산의 에이스였던 박명환은 4년간 최대 40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LG 유니폼을 입었다. FA(자유계약선수) 투수 가운데 역대 최고액이었다.
이적 첫해 박명환은 10승6패 평균자책 3.19를 기록하며 ‘성공한 FA’로 꼽혔다. 그러나 다음 해부터 팔꿈치와 어깨 통증으로 지난 2년간 아홉 경기에서 승리 없이 4패만 남겼다. 2008년 시즌 도중 어깨 수술을 받은 게 치명적이었다. 당시 많은 야구전문가가 박명환의 부활을 부정적으로 봤다. 팔꿈치라면 모를까 어깨수술은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 김선우 (두산 베어스), 서재응 (KIA 타이거즈).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연합뉴스 |
올 시즌 개막 전까지도 박명환의 재기는 불확실했다. 속구 구속이 140km에도 못 미쳤고 슬라이더의 각도도 무뎠다. 여기다 바뀐 투구폼에 적응하지 못하며 제구까지 들쑥날쑥했다.
4월 8일 사직 롯데전에 선발등판한 박명환을 보며 어느 야구해설가는 “몇 회에 강판당할지가 관심사”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명환의 속구 구속은 평균 130km 후반에 불과했다. 그러나 신은 박명환에게 구속은 빼앗았어도 제구는 빼앗아가지 않았다. 6회 2사까지 박명환은 날카로운 제구와 뛰어난 완급조절로 롯데 타선을 5피안타 2실점으로 막았다. 경기가 끝났을 때 기자들은 박명환을 에워싸며 ‘972일 만의 승리’에 대한 각별한 소감을 물었다. 그때 그가 한 말은 이랬다.
“‘왕년의 박명환’을 버리고 ‘새로운 박명환’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특히나 전광판에 나오는 구속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마음속의 구속에 집중했다. 시속 140km 이하라도 포수미트에 바로 공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강속구란 사실을 깨달았다.”
박종훈 LG 감독은 박명환을 계속 선발진에 둘 방침이다. 구장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그야말로 가장 에이스다운 선수이기 때문이다.
#해외파 김선우와 서재응
배영수 박명환 못지않게 돌아온 에이스로 환대받는 이 중에는 김선우(33)와 서재응(33)도 있다. 해외파 출신인 두 선수는 2008년 국내로 복귀하고서 각자 소속팀의 에이스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부상과 국내무대 부적응으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올 시즌은 다르다.
김선우는 4월 17일 현재 2승1패 평균자책 3.04를 기록 중이다. 준수한 성적이다. 그런데 투구 내용은 성적 그 이상이다. 김선우는 팔 스윙과 스플리터를 예리하게 교정한 이후 다른 투수가 됐다. 예년처럼 힘으로 윽박지르던 그는 온데간데없다. 4월 11일 잠실 LG전에서 5⅔이닝 10안타 6실점으로 시즌 첫 패전투수가 되기 전까지 김선우는 두 경기에 나와 12이닝 동안 8안타만 맞으며 0.75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김)선우의 투구가 계속 좋아지고 있다”며 “올 시즌 큰일을 낼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서재응은 세 경기에 등판해 1승 평균자책 3.71의 수준급 성적(4월 17일 현재)을 올리고 있다. 4월 13일 광주 두산전에서 6이닝 동안 홈런을 2개 맞고 3점을 내주긴 했지만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특히 3경기 모두 투구수 90개 이상씩을 기록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했음을 알렸다.
KIA 조범현 감독은 “스프링캠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땀을 흘린 만큼 선발진의 큰 기둥이 될 것으로 믿는다”며 “서재응의 1승은 다른 투수가 거둔 2승 이상의 가치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서재응의 호투가 후배 투수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