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일간지 기자는 김연아 주식회사 설립과 관련해 ‘돈 때문이다’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냈다가 난데없는 고초를 겪었다. 국내외에서 엄청난 양의 항의메일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친 김연아 기자’로 분류되는 타사 기자들로부터 “김연아 쪽에서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을 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전해 듣기도 했다. 이 기자는 “정말이지 김연아 파워를 실감했다. 지금은 사실이든, 거짓이든 김연아를 건드리면 안 되는 때인 것 같다”고 푸념했다.
세계의 피겨여왕, 국민적 스포츠 영웅은 돈을 추구하면 안 되는 일인가? 김연아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지안은 26일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 씨가 대표이사 겸 주식 70%를 가진 대주주, 그리고 김연아가 주식 30%를 가진 주주로 참여한 주식회사 올댓스포츠(All That Sports)를 설립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IB스포츠가) 김연아의 니즈(NEEDS)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김연아 선수를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향후 아이스쇼 개최, 스포츠 꿈나무 육성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대한다고도 했지만 그건 IB스포츠에서도 지금까지 해왔고, 또 충분히 가능한 일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런 사유는 귀에 익숙하다. 바로 김연아가 2007년 전 소속사인 IMG코리아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IB스포츠를 새 매니지먼트사로 삼을 때 했던 말과 아주 유사했다. 당시 계약해지의 이유는 ‘IMG코리아가 김 선수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었다. 니즈를 반영하지 못한 것과 관리 소홀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 IMG코리아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IB스포츠에 패소했다. 소송을 불사하고 김연아를 IB스포츠로 데려온 사람이 바로 구동회 전 IB스포츠 부사장이었다.
기본적으로 ‘김연아 주식회사’를 바라볼 때 당사자이건 팬이건 김연아가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더 꼬이고 헷갈릴 뿐이다.
참고로 지난 2007년 IMG코리아 VS IB스포츠의 소송 때 IMG는 “계약 관행과 상식을 깨고 돈에 팔려갔다”고 공격했고, IB스포츠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다. 한국에서 어렵게 나온 세계적인 선수인데 돈 때문에 고생해서 되겠는가. IMG는 인력이나 시스템에서 한계가 있었다. 우리는 6명 이상 팀 차원에서 선수 관리를 하겠다”고 반박했다. IMG코리아는 1년간 김연아에게 5억 원을 만들어줬지만 IB스포츠는 지난 3년간 김연아에게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벌어줬다.
▲ 지난달 18일 열린 ‘KCC 스위첸 페스타 온 아이스 2010’에서 김연아가 아이스쇼를 선보이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ee@ilyo.co.kr |
다만 김연아 및 어머니 박미희 씨와는 단순한 선수와 매니저 관계가 아닌, 서로 신뢰가 두터운 가족과도 같은 사이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은 4월 초, 4월 30일자로 사표를 냈는데 지난 4월 20일 IB스포츠가 파면조치를 내렸다는 사실도 확인해줬다. 즉 의원면직이 아니라 해고됐다는 것이다.
현재 IB스포츠 측은 김연아가 떠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아주 ‘쿨’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29일 보도자료에서 IB스포츠는 “그동안 김연아의 노력과 결실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새롭게 출범하는 김연아 매니지먼트사와 향후 김연아의 진로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구동회 전 부사장에 대해서는 다른 부사장이 생방송을 통해 배임 혐의로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히는 등 초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쉽게 말해 구 부사장이 IB에 근무하면서 김연아를 빼돌리는 더티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IB스포츠는 임원의 경우 ‘퇴직할 경우, 2년간 동종업계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맺고 있다. 또 김연아와도 2007년 계약 당시 18개월 이내에는 IB스포츠의 직원이 외부회사에서 김연아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해 놨다.
이런 이전 계약조건들 때문에 구동회 전 부사장은 향후 올댓스포츠에서 자문역을 맡을 계획이다.
IB스포츠는 구동회 전 부사장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기 위해 각종 증거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잘못하면 누워서 침뱉기 같은 보기 흉한 모양새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IB스포츠 내부에 정통한 A 씨가 그동안 IB스포츠 내의 김연아 매니지먼트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나섰다. A 씨에 따르면 구동회 전 부사장은 이미 지난해 밴쿠버 올림픽 전에 김연아의 홀로서기를 준비했다고 한다. IB스포츠 내부적으로도 이런 움직임이 감지됐고, 투서 등 여러 방식을 통해 최고결정권자인 이희진 IB스포츠 대표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하지만 구 부사장과 10년이 넘도록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해온 이 대표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모두 묵살했다고 한다.
▲ 이희진 IB스포츠 사장(왼쪽)과 구동회 전 부사장. 사진제공=시사저널 |
이희진 대표는 최근 김연아 측과 접촉한 자리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수익배분을 9 대 1로 낮추고 각종 파격적인 제안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김연아와 재계약을 하려고 했는데 김연아 측과 구동회 전 부사장은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왔고, 대표이사 앞에서 IB스포츠를 깎아내리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이에 이희진 대표가 발끈했고, 초강경 대응 방침을 정한 것이다.
IB스포츠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김연아는 떠나면 그만이지만 회사 내부적으로 대표가 큰 충격을 받았고, 또 리더십도 많이 흔들리게 됐다”고 말했다.
어찌됐던 IB스포츠는 돈으로 김연아를 데려왔고, 또 돈 때문에 김연아를 잃게 된 셈이다. 김연아 입장에서는 독자회사를 설립할 경우, 에이전트 수수료인 25%(종전 계약 상, 이나마도 계약기간 중 30%에서 25%로 하향조정됐다)를 줄이고, 상당한 절세 효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전에는 30%나 25%가 그다지 큰 액수가 아니었겠지만 연간 100억 원 이상으로 평가되는 김연아의 상품성을 이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IB스포츠는 지난해 매출이 400억 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수치상 김연아의 매출은 15~20%이다. 하지만 인지도 등 무형의 효과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회사 전체의 절반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있다. 김연아 주식회사 설립이 알려지면서 IB스포츠의 주가는 급락하기도 했다.
현재 올댓스포츠는 등기부등본 상 ‘all that sports co.ltd.’라는 상호로 등록돼 있고, 임원에 관한 사항은 감사 1명이 4월 20일 등재됐다가 22일 사임한 상태에서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 씨가 유일하게 이사로 올라 있다. 법적으로 김연아는 4월 30일 IB스포츠와의 계약이 종료되고, 5월 1일부터 올댓스포츠 소속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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