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오후 파주NFC에서 코치진이 축구 대표팀 선수들에게 경기력을 측정하는 무선 시스템을 착용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
오성호텔 같은 안락함 제공
2001년 완공된 파주NFC는 천연잔디구장 6면과 인조구장 1면이 있고 4층짜리 건물 내에 강당, 체력단련실 등 훈련을 위한 시설을 갖췄을 뿐 아니라 의무실과 휴게실, 사우나 등을 따로 둬 편의까지 고려했다.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 역시 이곳에서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당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전 감독도 “프랑스의 클레르 퐁텐보다 여기가 훨씬 낫다”고 엄지를 치켜세웠었다. 지도자 교육을 위해 강사 자격으로 방한했던 프랑스의 명장 에메 자케(98프랑스월드컵 당시 사령탑) 역시 이곳을 둘러보곤 “한국은 역시 아시아 최고로 군림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전담 영양사와 조리장이 제공하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뷔페식 식단과 더불어 안락한 숙박(?) 시설까지 있으니 이쯤 되면 어지간한 특급 호텔 부럽지 않다. 가격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이번 대표팀에 매끼 제공되는 식사는 재료만 1인당 최대 3만 원대에 육박한다. 맵거나 짠 자극적인 식단은 피하되, 영양가 높은 고단백 음식 위주로 메뉴가 짜인다.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육류. 그러나 철저한 프로 의식이 몸에 배여 있어 과식해서 탈이 나는 일은 전혀 없다고 한다.
또한 센터 주변에 일부 형성된 모텔 촌을 제외하면 유흥시설이 없어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 선수는 우스갯소리로 “생존 경쟁도 경쟁이지만 가장 큰 이점은 딱히 놀 거리가 없다는 점”이라며 “우리가 모텔에 갈 일도 없고 하다보니 아침 일찍 일어나 볼을 찰 수밖에 없다”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허정무호 선수들에게는 개인별로 방이 주어졌다. 여자 대표팀, 청소년대표팀 등 각급 선수단이 소집될 때면 2인 1실을 썼으나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인 만큼 최적의 환경을 조성했다고 한다. 따라서 선수 2명이 한 방에서 동숙하다보면 자연스레 형성되는 일종의 ‘라인’이나 ‘방장-방졸’과 같은 재미있는 인맥도는 찾아볼 수 없다.
▲ 남아공 현지의 고지대 적응을 위해 설치된 저산소방(위), 빠른 부상 회복을 위해 마련된 산소텐트(아래). 뉴시스 |
뿐만 아니라 허정무호 선수들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각자 방에서 TV를 보거나 노트북을 활용한 컴퓨터 게임 따위를 하며 시간을 보낸단다. 물론 컨디션에 따라 센터 내를 산보하거나 지하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닝을 하고, 의무실에서 마사지를 받을 때도 있는데 대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한다.
협회의 한 지원 스태프는 “월드컵이란 대사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평가전 따위를 준비하던 예전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고 귀띔했고, 한 고참 선수 역시 “‘경직’이란 표현은 지나치겠지만 나를 비롯한 모두가 예민해져 있고, 평소보다 긴장한 것은 맞다”고 했다.
그러나 ‘소통’을 이번 훈련의 키워드로 삼은 허정무호였다. 함께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는 식사 때는 물론,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장난을 치다 숙소가 떠나갈 정도로 종종 메아리치는 큰 웃음소리는 밤늦은 시각, 기사 송고를 마치고 집으로 퇴근하는 기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곤 한다. 대다수 스태프와 협회 관계자들이 뽑은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는 놀랍게도 조용하고 차분할 것만 같던 ‘캡틴’ 박지성과 기자들 사이에서 소극적인 인터뷰이로 정평이 난 박주영(AS모나코)이라고 하니 사람은 겪어봐야 한다는 옛 말이 괜한 게 아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경우, 여전히 그를 ‘신(神)’처럼 여기는 후배들이 많은 탓에 일부러 가까워지려는 행동이란 의혹(?) 어린 시선이 대부분이다.
요즘 파주NFC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여러 가지 최첨단 장비들이다. 훈련장 주변에 12개의 이동식 무선 송수신 장치가 설치돼 선수들의 각자 심박수, 속도, 위치, 이동 루트를 측정해 메인 컴퓨터로 전송할 수 있도록 했다. 예전에는 셔틀런(20m 왕복 달리기) 따위로 심박수를 측정했으나 이젠 기초 체력은 물론이고 전술적 이해능력까지 실시간 데이터 축적이 가능케 됐다.
수억 원대 의료시설 즐비
남아공의 고지대 적응을 위한 저산소실도 새로이 등장했다. 선수들의 방이 있는 4층 중앙 휴게실에 설치된 저산소실은 원격 조정 장치를 통해 고도 설정을 하고, 산소량을 조절해 고지대와 같은 상황을 조성한다. 선수들은 국내 소집 훈련 기간 동안 매일 한 시간씩 저산소실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대표팀 주치의 송준섭 박사는 “선수들이 2주가량 저산소실을 이용하다보면 몸이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선수들은 호흡이 금세 가빠지고, 머리가 띵해지며 온몸이 후끈거리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괴롭기 짝이 없다. 선수들에게 “어떠냐”고 우문을 던지면 “궁금하면 직접 들어가 체험해보라”는 영양가(?) 없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다. 오범석은 “들어가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그냥 멍 때려요”라고 말해 기자의 배꼽을 빠지게 했다.
레이저 치료기와 산소텐트 등 전체를 합치면 수억 원에 이르는 고가 장비가 즐비한 의료 시설도 만만치 않다. 예전에는 훈련 중 다치기라도 하면 곧바로 병원으로 보냈지만 요즘은 어지간한 치료는 센터 내에서 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자랑거리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