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창혁 9단이 운영하는 ‘바둑 도장’. 유소년들의 연구생 입문을 위한 학원이다. |
한국기원 연구생은 흔히 프로기사 ‘임관’을 위한 사관학교로 불린다. 프로가 되려면 일단 연구생으로 들어가야 한다. 프로 입단대회는 연구생만이 출전할 수 있다. 일반인이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만 출전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생과 연구생 출신, 일반인이 다 출전할 수 있는 것이어서 어차피 일반인에게 돌아갈 입단 티켓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요즘 연구생이나 연구생 출신 젊은이들을 이길 일반인은 없으니까.
그런데 사관생도들 사이에서는 입단대회도 그렇지만, 그 전에 연구생 리그에서 성적을 내고, 연구생에서 살아남는 것이 더 어려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또 연구생 지망생들 주변에서는 연구생으로 들어간 다음은 모르겠는데, 아무튼 연구생 리그보다는 ‘연구생 선발대회’가 더 힘들다고들 말한다.
연구생은 1조부터 12조, 한 조에 10명씩, 120명 정원이다. 1조부터 12조까지면 꽤 길어 1조와 12조는 실력 차이도 클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2점은 말도 안 되고, 정선으로도 빡빡하다는 것이다. 정선은 흑이 덤 6집반을 내지 않는 치수. 그렇다면 120명의 실력이 6집반 사이에 분포되어 있다는 뜻이니, 실제로는 가까운 이웃 조끼리는 한두 집을 다투는 차이일 뿐인 것.
프로도 어렵거늘, 프로보다 연구생이 어렵고, 연구생보다 연구생 준비생이 더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 바둑의 자부심, 저변의 무서움이 이것이다.
바둑도장은 프로기사가 운영하고 가르치는 학원이다. 바둑 학원이 처음부터 바둑교실과 바둑도장으로 구분된 것은 아니었다. 바둑교실이 먼저 생겼고, 1980년대 후반에 이창호 붐을 타고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는데, 바둑교실이 호황을 누리자 프로기사들이 학원 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바둑도장’이라는 이름으로 전문화-차별화를 시도하며 프로기사 양성을 내건 것.
반포의 권갑룡 8단, 노원구의 허장회 9단, 인천의 김원 7단 등이 도장의 선행주자였고, 마포구청 근처의 장수영 9단, 선릉역 부근에 있다가 잠실로 옮긴 양재호 9단, 분당 미금-오리역 인근의 유창혁 9단-최규병 9단 등이 뒤를 이어 등장하면서, 누가 더 프로기사를 많이 배출하느냐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었다. 아마추어 원장으로는 유명 프로기사 도장들과 인재 배출에서 거의 호선으로 버티고 있는 목동의 ‘양천대일’이 현재로선 제일 크고 유명하다. 양천대일도 지도사범은 물론 프로다.
연구생은 우리 프로바둑계 초창기에 이미 있었던 제도다. 일본기원의 ‘원생’을 참고한 것이었다. 조훈현 9단을 비롯해 50대 이상으로 1970~80년대 성적을 올렸거나 지금도 잘 버티고 있는 유명 프로기사 대부분이 그 시절의 연구생 출신이다. 그게 한동안 없어졌다가 1980년대 중반 다시 생겼는데, 재출발한 연구생 출신 프로기사 1호가 이창호 9단과 김원 7단이었다. 이후 연구생은 한국 프로기사의 요람이었다.
연구생 제도를 다시 만든 것은 일반인 입단을 좀 제지하자는 뜻이었다. 나이 먹어 입단하는 것은 당사자의 성취감은 만족시킬지 모르지만, 그것뿐이고 현실적으로는 본인에게나 바둑계로서나 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성적을 내지 못할 것이니 생활에 도움이 안 될 것이고, 프로바둑계의 수준 향상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니까. 연구생 제도가 정착되고, 앞서 말했듯 청소년들의 실력이 무서운 오늘이니 이제는 개방해도 하향평준화 현상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연구생 제도가 없어지면 완전프로로 가는 험난한 관문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나이 제한’으로 인해 꽃다운 나이에 길을 잃게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이 연구생 제도의 치명적 결함이었는데, 그게 사라진다는 것이 가장 반갑다.
다만, 연구생 제도를 없애는 대신에 이런 규정 하나는 새로 만들자는 의견이 있다. 문호는 개방하되 청소년이 입단대회에 출전하려면 최소한의 ‘학교 생활’을 조건으로 달자는 것이다. 수업일수를 전부 채우라는 것은 아니고, 수업일수의 몇 분의 일 정도는 다니고, 학업 성적도, 우수하지는 않더라도 몇 분의 일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게 어렵다면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의 경우라면 입단 후에라도 최소한의 ‘학교 생활’에 준하는 내용의 커리큘럼으로 일정 기간은 교육을 받게 하자는 의견도 있다. 바둑만 알고, 다른 것은 일체 모른다는 것, 바둑만 잘 두고, 다른 건 일체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연구생은 공적 기관이 조장했던, 꼭 바람직스럽지만은 않은 사교육의 의미가 있었다. 바둑으로 1등하는 건 좋지만 맹목적, 단선적 사교육을 통해 1등하는 건 그다지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