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를 꼽으라면 황선홍을 빼놓을 수 없다.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는 몇 번의 실수, 그리고 부상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그는 2002 월드컵 무대에서 그동안의 울분과 한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폴란드전에서 그가 선보인 통쾌한 선제골은 온 국민의 뇌리 속에 지워지지 않을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스타 플레이어는 명감독이 되지 못한다’는 속설을 깨며 부산 아이파크의 사령탑으로 변신한 황선홍 감독에게 2010 남아공 월드컵 무대에서 첫 골의 주인공이 될 선수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는 주저없이 ‘박주영’을 꼽았다. 이유를 묻자 “주영이가 베스트 11로 뽑힐 확률이 가장 크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황 감독은 “스트라이커 위치에 서게 되면 주위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몸이 굳어버릴 수 있다”면서 “공간을 충분히 만들어 찬스가 왔을 때 골을 넣을 수 있는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기가 2~3일 앞으로 다가올 때가 가장 힘든 시점이다”면서 “연습할 때 좋은 슈팅이 나오면 ‘실제 경기에서도 이렇게만 돼라’ 혹은 ‘이런 찬스가 왔을 때 골을 넣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럴수록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대표팀은 6월 17일 리오넬 메시(FC바로셀로나), 곤살로 이과인(레알 마드리드), 카를로스 테베스(맨체스터 시티) 등 유럽 톱 스트라이커들이 버티고 있는 강팀 아르헨티나와 결전을 벌인다.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아르헨티나의 골문을 열 선수는 누가 될까. ‘아시아의 호랑이’ 최순호 감독(강원FC)에게 물었다. 최 감독은 1981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이탈리아 U-20 대표팀의 골망을 두 번 흔들고, 1986년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벼락 중거리포로 동점골을 넣는 등 유난히 강팀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위 중거리 슛은 월드컵 역대 최고의 골 26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골을 넣었다는 최고의 기분을 더욱 만끽하고 싶어서 다른 선수들이 달려들 때 피해 다녔다”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최 감독은 “지금은 예전과 달리 많은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세계무대에서 골을 넣어 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모두 잘할 것 같아 한 명을 꼽기 너무 어렵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강팀을 상대로 밋밋한 자신감만으론 부족하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도전정신’이 필요하다”며 “그리스와의 첫 경기가 중요하긴 하지만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선 세 경기 모두 잘 치러야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마지막 경기에서 실수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 것을 주문했다.
1990년대 후반 그라운드를 누비며 팬들을 매료시켰던 ‘왼발의 달인’ 하석주 코치(전남 드래곤즈)는 자신의 후계자로 어떤 선수를 점찍어두고 있을까. 날카롭고 정교한 왼발을 주무기로 사용했던 그는 역시 ‘왼발 스페셜리스트’ 염기훈을 꼽았다.
“염기훈은 월드컵 무대에서 나의 ‘왼발’을 이어나갈 재목이다.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영표 역시 왼쪽에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온 선수다. 선배로서 월드컵 무대에 처음 선 후배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잘 전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한 하 코치는 중남미의 강호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천당과 지옥을 한꺼번에 경험한 바 있다. 왼발 프리킥으로 멕시코의 골문을 연 지 단 2분 만에 백태클로 퇴장을 당했던 것. 그는 “월드컵 경기엔 항상 변수가 존재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면서 “나이지리아나 아르헨티나엔 다혈질 선수가 많다는 점을 역이용해 퇴장을 유도하는 영리한 플레이를 하라”고 주문했다.
무명의 설움을 털어내며 2002년 한 해 최고의 순간을 보낸 이을용(강원FC)은 월드컵이 낳은 또 한 명의 스타다. 그는 2002년 월드컵 3ㆍ4위 결정전에서 명품 프리킥으로 터키의 골문을 열며 ‘왼발 프리킥의 강자’로 군림해왔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에 못지않은 멋진 프리킥으로 국민들을 매료시킬 선수는 누굴까. 이을용은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성용’을 언급했다. “예전보다 프리킥이 상당히 날카로워졌다. 패스만 살아난다면 성용이가 프리킥으로 충분히 골을 넣을 수 있다고 본다”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골에 발 한 번 못 대고 끝나버릴 수 있는 게 바로 월드컵 경기”라면서 “경기에 집중하다보면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멋진 경기 펼치고 돌아오길 응원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대표팀 골키퍼=이운재’라는 등식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면서 주전 골키퍼 자리를 두고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고 있다. 한 번의 실수가 실점으로 바로 연결되는 만큼 대표팀의 수문장으로서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표팀 수문장 논란이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골키퍼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병지가 이들에게 응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는 “골키퍼는 팀에 신뢰를 주는 듬직한 존재가 돼야 한다”면서 “반대로 10명의 선수 역시 골키퍼에게 믿음을 주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공격하는 수비수가 필요했던 시대는 지났다. 이젠 수비를 잘하는 공격수가 필요하다. 한 명 한 명이 공간 확보에 노력하고 상대 선수 마크 등 각자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11명 모두가 훌륭한 리베로가 될 것”이라며 16강 진출을 기원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