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8일 새벽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 캄플 구장에서 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그림 같은 풍경 아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엔트리 선정 ‘쉽지 않아!’
대부분이 이동국(전북)이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태자’로 불리던 이근호(이와타)는 당연히 승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때문에 허정무 감독의 입에서 “탈락자는 이근호, 신형민(포항), 구자철(제주)”라는 말이 나왔을 때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의 입이 딱 벌어 졌다. 예상이 상당히 빗나갔기 때문이다.
이근호와 신형민은 지난달 30일 열렸던 벨라루스전이 화근이었다. 경기 내내 정해성 수석코치는 벤치 밖 테크니컬 에어리어 모서리까지 나와서 이근호와 신형민에게 유독 많은 지시를 내렸고, 번번이 고개를 저었다. 코칭스태프 중 한 명은 “(이)근호는 왜 자기에게 이렇게 많은 대표팀 출전 기회가 주어지는지 몰랐을 것”이라며 “우린 근호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하는 게 아쉬워 계속 기회를 줬는데, 결국 놓치고 말았다”고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신형민 또한 마찬가지. 예비 엔트리 26명을 오스트리아 훈련 캠프로 데려갔을 때 유력한 최종엔트리+3명 중 ‘+3’에 해당된다고 봤던 구자철이야 그렇다손 쳐도 신형민은 허리진이 두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승선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신형민은 국내 마지막 평가전인 에콰도르전에서 2차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탈락의 아픔을 겪은 황재원(포항)처럼 실수를 연발했고, 결국 탈락자 명단에 포함되고 말았다. 신형민과 구자철은 허 감독이 귀국 전날(6월 1일) 조용히 불러 미팅을 가졌을 때 이미 탈락을 예감한 듯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항상 허 감독의 사랑을 받았던 이근호는 충격이 큰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한다. 포항에서 신형민과 한솥밥을 먹고, 구자철과 친하게 지냈던 김형일은 탈락하게 된 2명과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달래줬다는 후문이다.
탈락자를 보내던 날, 김형일과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등 8명은 동료들이 짐을 꾸려 대표팀 숙소인 야크트호프 호텔을 떠나는 걸 배웅했다.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나야 했던 묘한 상황. 제 살을 도리는 듯한 아픔 때문일까. 허 감독도 탈락한 선수들과의 미팅에서 눈물을 보였고, 김현태 골키퍼 코치와 정해성 수석코치는 제주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제자인 구자철을 불러놓고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박태하 코치 역시 친정팀 포항이란 인연의 끈이 있는 신형민을 불러 위로했다.
음식 걱정은 ‘노’
허정무호는 남아공에서도 그렇지만 오스트리아 전훈 캠프에 있을 때도 늘 한식을 먹었다. 적어도 먹거리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다는 얘기. 외국에 있을 때면 늘 그리워지는 김치와 고추장, 된장 등도 빠짐이 없었다.
2006독일월드컵 때부터 파주NFC에 합류해 각급 대표팀 선수들의 식단을 책임졌던 김형채 조리장은 오스트리아로 떠나기 전에 미리 밥솥, 냄비 등 주방 용품들을 미리 부쳤고 갖가지 식재료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직접 공수해왔다. 이 과정에서 역시 교민들의 도움이 컸다. 응원단도 따로 구성해줄 뿐 아니라 한인들은 특유의 ‘정’을 앞세워 김치와 쌀 등을 풍성히 조달해줬다.
꼬리곰탕, 갈비탕 등 고단백 음식들과 각종 전골류는 항상 등장한다. 김치찌개와 국수전골 등은 인기만점. 쇠고기 잡채와 그 비싸다는 전복 버터조림도 자주 나와 입맛이 뚝 떨어진 선수들의 체력 보충을 도왔다.
외부에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대표팀은 휴식이 주어지면 산책을 자주 나갔다.
노이슈티프트 슈투바이는 알프스 산줄기에 위치한 아름다운 장소로 3000m 봉우리들 3개가 한 곳으로 몰리는 만년설 지역이다. 여름 스키 관광객들이 몰릴 정도니 대단하다는 느낌까지 받게 한다. 그래서일까. 부상 위험이 큰 스키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자전거 산책이 유행했다. 하루 빌리는 데 10유로(1만 5000원 정도)밖에 안하니 어렵지 않게 대여할 수 있다. ‘독일 통’인 차두리도 완벽하고 유창한 독어 실력을 자랑하며 동료들의 생활 전반을 도왔다.
철통경계 철통보안
하지만 항상 풀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호텔 주변은 비교적 완벽하게 외지인을 차단했다. 숙소를 공식적으로 취재진에 공개한 것은 딱 한 차례. 탈락자들이 숙소를 떠날 때 취재진의 접근을 막은 것도 사실이었다. 항상 으슬으슬하고 서늘한 날씨를 보이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는 남반구에 위치, 겨울철인 남아공의 기후에 대비해 월드컵 출전국들이 선호했던 전훈지였는데 선수단이 묵는 대부분 호텔들이 낯선 이방인들을 경계했고, 모든 정보들을 알아서 차단해줬다.
평가전도 보안의 일종이었다. 정보 누출을 차단하기 위해 선수들의 등번호를 교체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영문 이름과 이니셜을 부착하라는 규정 또한 없어 선수들은 유니폼을 서로 바꿔 입는 정도로 그쳤다. 평가전용 유니폼도 따로 제작해 가져왔다는 후문이다.
허 감독은 “선수 등번호를 막는 것도 일종의 보안 유지를 위한 행동”이라며 “어차피 서구인들은 아주 유명한 인물이 아니라면 아시아 사람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정보 접근은 차단할 수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