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최근 붉은색 고기의 과다 섭취가 대장암과 관련이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해외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암역학·유전학 연구실의 아만다 크로스 박사는 남녀 30만 명을 대상으로 평소 붉은색 고기(적색육)와 가공육을 얼마나 먹고 어떤 방식으로 조리해 먹는지를 묻고 7년 동안 관찰했다. 그 결과 가장 많이 먹는 상위 20% 그룹이 가장 적게 먹는 하위 20% 그룹에 비해 대장암 발병률이 붉은색 고기는 평균 24%, 가공육은 16%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붉은색 고기를 어느 정도의 온도에서 가열해 조리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 헴철, 질산염, 아질산염, 헤테로사이클릭 아민 같은 돌연변이원 즉, DNA 변이를 일으키는 요인들이 문제가 됐다.
붉은색 고기와 기름이 많은 지방질 식품을 많이 먹는 대장암 환자들이 이 같은 식품을 잘 먹지 않는 사람에 비해 대장암 재발과 이로 인한 사망 위험이 3배 이상 높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도 있다.
그동안 붉은색 고기가 유방암이나 대장암, 노인성 황반변성 등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또한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지난해에는 적색육을 많이 먹으면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미국인 백인 남녀(50~71세) 54만 5653명을 지난 10년간 추적한 결과, 붉은색 고기를 하루에 약 113g(작은 햄버그 크기) 먹는 사람은 심장질환과 암 등으로 숨질 확률이 30% 이상 높다는 것이다. 이 조사는 육류 섭취와 전반적인 사망 위험 간의 관계에 대해 실시된 첫 대규모 조사다.
연구진은 1995년 식생활 습관에 대한 조사를 벌인 뒤 10년 후 삶을 추적하는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10년이 지난 후 조사 대상 중 4만 7976명의 남성과 2만 3276명의 여성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의 사망 원인을 조사한 결과 붉은색 고기를 섭취하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반면 생선이나 닭, 칠면조 등 가금류 섭취는 사망 확률을 조금 줄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붉은색 고기의 섭취량을 줄이면 대장암 등 암과 치매 예방에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계속 급증하고 있는 대장암의 위험을 줄이고 싶은 사람은 붉은색 고기와 함께 술, 담배도 줄여야 한다. 호주 조지국제보건연구소의 레이첼 헉슬리 박사 팀은 대장암 위험 요소에 관한 논문 100편 이상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르면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붉은색 고기나 소시지 같은 가공육을 많이 먹어도 대장암 위험이 1.2배로 높아졌다. 흡연과 비만, 당뇨병도 역시 대장암의 위험을 1.2배로 높였다.
컬럼비아대학 알츠하이머 연구센터는 알츠하이머, 치매 등 노인성 뇌질환을 예방하려면 붉은색 육류와 내장, 고지방 유제품은 삼가고 생선이나 닭고기, 올리브 오일, 땅콩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낫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A 평소 쇠고기나 돼지고기, 양고기 등 붉은색 고기를 자주 먹는다면 섭취량을 줄이는 것이 좋다. 또한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 생선 섭취를 늘린다. 지방을 떼어내고 조리하거나 채소를 충분히 곁들이는 등의 습관도 중요하다.
△붉은색 고기 섭취량을 줄인다=세계 암연구기금(WCRF)은 조리된 붉은색 고기 섭취를 주당 500g 이하(날고기로는 주당 700g 이하)로 줄이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와 함께 햄이나 소시지 등 화학첨가물이 많이 들어가는 육가공 식품도 되도록 적게 섭취하도록 권하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붉은색 고기를 하루 50~80g 이내로 먹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콜레스테롤 교육 프로그램(NCEP) 지침에서는 육류를 하루 142g 이하로 섭취하고, 포화지방이 적은 살코기로 섭취하라고 밝힌 바 있다.
한 가지, 붉은색 고기에는 철분이 풍부하다. 이 철분은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미네랄이지만 암환자에겐 해로울 수 있다고 한다. 철분이 유해산소의 생성을 도와 암을 유발하거나 암세포의 증식을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불에 직접 굽지 않는다=붉은색 고기는 닭, 생선 등보다 불에 직접 굽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문제. 불에 직접 굽고 튀기는 것보다는 푹 삶거나 찌는 방법이 지방을 제거하는 데 좋다. 삼겹살구이, 바비큐보다는 보쌈, 수육 백숙, 스튜 등으로 먹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다.
조리 과정에서 버터나 크림, 치즈, 식용유를 사용하는 것도 삼간다. 대신 마늘, 양파를 넣고 올리브 오일을 조금만 이용하는 것이 좋다.
한 가지, 숯불구이나 연탄구이 등으로 불에 직접 고기를 구워 먹는 경우 불에 떨어진 고기 기름이 타면서 나는 연기에도 유해 성분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채소와 함께 먹는다=고기를 먹을 때는 줄곧 고기만 먹지 말고 샐러드 등 채소를 반드시 함께 먹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한 가지 채소보다는 여러 가지 채소를 곁들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채소에 든 여러 가지 항산화 성분이 육류 조리 과정에서 생기는 발암물질을 중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채소에 풍부한 비타민, 미네랄 같은 미량 영양소는 단백질 대사 과정에 꼭 필요한 성분이다.
또한 고기와 채소를 함께 섭취하면 과산화지질, 벤조피렌 등의 유해물질이 적게 만들어진다. 채소에 많은 엽록소는 대장암의 원인이 되는 붉은색 육류의 동물성 지방, 헤모글로빈과 경쟁해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시킨다. 또한 굽거나 튀긴 고기를 먹은 후에 후식으로 배를 먹으면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지방을 떼어내고 조리한다=붉은색 고기는 대부분 고지방·고열량이다. 음식의 종류에 관계없이 하루 섭취 열량이 많을수록 대장암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돼 있다. 대장암의 위험을 줄이는 데는 지방을 적게 섭취하는 것이 좋다. 지방은 담즙산의 분비를 증가시켜 대장 점막을 자극하고, 장내 세균에 의해 발암물질로 바뀔 수 있다.
특히 마가린이나 쇼트닝, 튀김에 많은 트랜스 지방은 적게 먹을수록 좋다. 트랜스 지방이 많이 든 음식을 즐겨 먹으면 대장암 등의 위험이 증가한다.
때문에 붉은색 고기 등 육류에 있는 나쁜 지방보다는 생선, 견과류, 씨앗류 등을 통해 좋은 지방을 섭취한다. 이런 좋은 지방들은 오히려 암과 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리셋클리닉 박용우 원장은 “고기보다는 고등어나 꽁치·정어리 등 등 푸른 생선과 아마씨유·콩기름·들기름 등 일부 식물성 식용유로 지방을 섭취하면 좋다. 이런 지방에는 ALA·DHA·EPA 등 오메가-3 지방이 풍부하다”고 조언했다.
물론 유익한 지방이라고 해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어떤 종류의 지방도 많이 먹으면 하루 총 섭취 열량이 늘어나 비만, 당뇨병 등의 발생을 부추긴다.
△육류 가공식품을 줄인다=햄이나 소시지 등 간편하지만 열량이 높은 육류 가공식품 섭취량도 줄인다. 겉면의 표시사항을 보면 발색제나 산화방지제, 산도조절제 등 여러 가지 화학첨가물도 많이 들어 있다. 아질산염, 솔빈산, 솔빈산염 등이 그것이다. 아질산염의 경우 자체가 발암물질은 아니지만 단백질의 주요 성분인 아민과 결합해 발암물질인 니트로스아민을 만든다.
그래도 육류 가공식품을 먹을 때는 조리 전에 햄이나 소시지를 끓는 물에 한번 데치는 게 좋다. 해로운 성분이 어느 정도 빠지기 때문이다. 유기농 매장 등에서 화학첨가물을 적게 넣거나 넣지 않은 제품을 고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
Q 아예 고기 끊고 채식을 해야 하나
A 채식을 하면 동물성 지방을 과다하게 섭취했을 때 오는 성인병 예방 효과가 있다. 섬유질이 장을 자극해 변비, 대장암 예방에 도움이 되고, 혈중 콜레스테롤의 농도를 떨어뜨려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혈당치의 과도한 상승을 막아주므로 당뇨병을 예방, 치료하는 데도 좋다고 한다.
따라서 이미 성인병으로 고생하거나 질병은 없어도 배가 나온 중년이라면 완전채식은 어렵더라도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복부비만은 각종 성인병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잦은 회식으로 육류와 술을 과다 섭취하는 직장인이나 운동부족으로 살이 찐 주부, 혈액검사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온 사람도 채식 위주의 식사가 바람직하다.
흔히 암에 걸리면 채식을 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아는데, 과연 그럴까? 평소 고기를 많이 먹은 환자라면 육류를 줄이고 채식 위주로 바꾸는 것이 증상을 완화시키고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암환자라고 무조건 고기를 안 먹는 것보다는 영양섭취가 필요한 경우에는 조리법에 신경 써서 적당량 먹는 것이 좋다.
완전채식을 하면 아연이나 철분, 칼슘, 비타민 B12 같은 영양소가 결핍되기 쉽다는 것이 단점이다. 아연은 면역력과 관계가 있는데, 식물성 식품에 들어 있는 아연은 흡수율이 낮다. 비타민 B12의 경우 전통 발효식품에 많으므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할 때는 청국장,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 등 발효식품을 많이 먹는 것이 좋다. 하지만 콩에는 비타민 B12가 없고 발효 과정에서 새로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배추에는 비타민 B12가 없지만 김치에는 B12가 조금 들어 있다.
서울대의대 노화고령 사회연구소 박상철 소장은 지난해 말 “서구의 100세 이상 장수노인들은 30%가 비타민 B12 부족이지만 우리나라 100세 이상 노인은 2%에 불과하다”며 “이것은 청국장이나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 등 발효식품에 B12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실험결과를 밝힌 바 있다.
그동안 비타민 B12 하면 동물성 식품에만 들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B12는 나이가 들수록 흡수가 잘 안 되는 영양소로 부족해지면 심혈관질환이나 위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인지능력, 시력, 청력이 떨어지므로 잘 섭취하는 것이 좋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리셋클리닉 박용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