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 ‘메이드 인 대구 II’ 참여작가.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곽훈, 권정호, 김영진, 박두영, 최병소, 송광익, 서옥순, 박철호 작가.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일요신문] 대구미술관이 지난 2011년 개관전 ‘메이드 인 대구’의 실험정신을 다시 한 번 조명할 ‘메이드 인 대구 Ⅱ’를 이달 29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연다.
지난 개관전의 의미와 80년대 이후 대구미술의 다양한 실험정신과 발자취를 보여주게 될 이번 ‘메이드 인 대구 Ⅱ’에는 곽훈(79), 권정호(76), 김영진(74), 박두영(62), 박철호(55), 서옥순(55), 송광익(70), 최병소(77) 작가가 대규모 신작 100여 점을 출품했다.
앞서 2011년 개관전은 대구를 넘어 동시대 의미있게 거론되는 작가들을 조명한 전시로 구성수, 권오봉, 남춘모, 박종규, 배종헌, 이교준, 이기칠, 이명미, 정용국 작가가 함께 했다.
어게인 ‘메이드 인 대구’가 될 이번 전시회에 참여하는 작가는 대구 추상미술 대표화가 정점식의 에세이에서 언급한 젊은 세대들로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거나 출향한 작가들로 한국에서 현대미술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화두가 됐던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일관된 자세로 작품 활동을 해 오고 있다.
곽 훈(b.1941, 대구)은 실험주의 미술 운동을 전개하다가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표현주의적 회화와 실험적인 설치작품을 선보여 미국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작가는 1995년 김인겸, 전수천, 윤형근과 함께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작가로 참가한 바 있다.
곽훈 作. 대구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는 회화작품 ‘할라잇(Halaayt, 2020)’과 함께 2017년부터 올해까지 제작한 드로잉 300여 점이 대형 벽면을 가득 채워 그림 속 에너지와 함께 요동치는 주술적 힘을 느낄 수 있다.
권정호(b.1944, 대구)는 두개골 형태의 조각과 회화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실존적 인간의 삶과 죽음, 사회적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작가는 회화, 입체, 설치, 영상 등 매체에 한계를 두지 않고 작품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권정호 作. 대구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3.5.8 무제(2020)’를 선보인다. 높이 3m 폭 5m 길이 8m의 대형의 작품으로 흰색, 붉은색, 노란색 등으로 구성된 3080개의 두개골 조각을 공간에 설치해 관객이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작품의 일부가 돼 관람할 수 있다.
김영진(b.1946, 대구)은 대구 현대미술계에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던 대표적인 개념미술가이자 설치미술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불현 듯 닥친 코로나 19를 주제로 한 작품 ‘world-19(2020)’를 통해 사회재난과 마주한 인간의 무력함, 삶과 죽음에 대한 경의를 보여준다.
김영진 作. 대구미술관 제공
작가는 국가와 인종을 넘어 그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재를 올릴 수 있는 재단을 설치해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한다.
박두영(b.1958, 대구)은 대구 현대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가로 강렬한 보색을 사용한 미니멀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지금의 회화작품이 나오기까지 작가는 설치, 퍼포먼스, 사진, 영상, 드로잉 등 개념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과 시도들을 이어왔다.
박두영 作. 대구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세로 40cm, 가로 240cm의 ‘무제(02RG40240, 1994)’, ‘무제(02BY40240, 1994)’을 만날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몇 년 전 작업실 화재로 손실된 1994년 작품을 2020년 다시 재현한 작품이다.
판화작품으로 익숙한 박철호(b.1965, 경북 의성) 작가는 판화, 회화, 설치를 넘나드는 작가다. 구름의 흐름, 새의 몸짓, 물결의 파문, 빛살의 파장, 숲의 떨림 등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모티브로 생성과 소멸, 순간과 영원, 절망과 희망을 표현한다.
박철호 作. 대구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1990년대에 제작했던 대표적인 판화와 함께 실험적인 재료 파라핀을 이용해 절기의 의미를 담은 작품 ‘무제(2020)’ 24점을 선보인다.
서옥순(b.1965, 대구)은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고찰, 인간의 존재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주로 실과 재봉틀, 천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캔버스에 실을 꿰어 메고 늘어뜨리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재료의 물성, 표현방법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페미니스트로 단정 짓기를 부정한다.
서옥순 作. 대구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 출품한 설치작품 ‘...시간이 멈춘 존재의 상상 속을 걷는다.(2020)’는 2020년 봄, 코로나 19로 사람이 없어지고 자동차가 사라진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충격적인 감정을 이야기한다.
송광익(b.1950, 대구)은 초기에 현실반영의 회화작품을 제작했으나 최근에는 한지를 이용한 반입체적 작품을 주로 제작한다.
송광익 作. 대구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대형 신작 ‘무위지예(無爲紙藝, 2020)’를 소개한다. 이 작품은 한지의 물성을 활용한 작품으로 한지를 붙인 합판과 플라스틱 의자에 고무밧줄을 동여 맨 조형물을 함께 벽에 설치해 변화 용이하고 따뜻한 물성을 지닌 종이의 특성을 보여준다.
최병소(b.1943, 대구)는 작품 속에 내재 된 개념을 중요시하며 예술적 진정성에 중점을 둔 작가다. 1970년대 군부독재시절 언론보도에 대한 분노로 시작한 신문 작업은 신문이라는 상징적 재료를 이용, 연필, 볼펜으로 지우고 비워나가는 행위 자체를 주목해야하는 작품이다.
최병소 作. 대구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영국 신문과 한국 신문을 사용한 작품들과 변형된 큰 사이즈의 작품 ‘무제(2020)’ 7점을 전시장 바닥에 설치 형태로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8명의 참여 작가들이 대구미술관 전시를 위해 소개된 적 없는 대규모 설치 신작들을 출품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현장에서 직접 설치하는 작품으로 총 출품작수는 곽 훈 작가의 ‘할라잇’과 ‘주술’ 드로잉 317점, 권정호 작가의 ‘3.5.8 무제’ 3080점, 최병소 작가의 ‘무제’ 설치와 회화작품 28점을 포함, 개수로는 무려 3500점이 넘는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작가 인터뷰 영상이다. 80년대 전후 시대상황과 작가별 특성을 담은 인터뷰 영상은 작가들이 겪은 시대적 상황과 정신을 공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에 출품한 신작에 대해 상세히 담고 있어 대구현대미술과 작가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유명진 학예연구사는 “대구 현대미술의 힘은 집요한 작가로서의 태도와 작품의 다양성에 있다”며 “70년대를 거친 대구 출신 참여 작가들은 과거에 쏟아냈던 예술에 대한 열정을 회상하며 신작을 다량 출품했다. 이번 전시는 대구가 현대미술의 중심이라는 자각과 그 저력에 힘을 보태 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이번 전시회의 개막식은 없었으며, 작가와의 대화와 강연 등 전시연계 프로그램은 오는 12월경 열릴 예정이다.
관람 예약은 매주 화~일 오전 10시~오후 6시 회차별(2시간) 50명으로 제한해 1일 4회, 총 200명까지 받는다.
김성영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