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를 경우 병역 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그리스전에서 2 대 0 승리 후 기뻐하는 모습. 연합뉴스 |
사실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선 대표팀이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오르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병역 혜택을 약속했고, 이것이 법제화됐다. 이를 통해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천수 등이 4주간의 군사 훈련만으로 병역 의무를 마쳤다. 이로 인해 박지성이 네덜란드를 거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이 가능했고 오늘의 세계 톱클래스 선수로 성장한 배경이 됐다. 이영표도 마찬가지다.
WBC 준우승도 유야무야
하지만 현재의 법 규정상 축구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이 아니라 ‘우승’을 한다고 해도 병역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지난 2007년 12월 병역 특례 시행령이 개정돼 체육 영역 병역 혜택이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축구는 물론이고 야구 역시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4강부터 주어지던 병역혜택을 받을 수 없다. 스포츠에서는 단일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하더라도 병역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고, 전 종목을 걸쳐 공히 아시안게임 우승, 올림픽 동메달 이상 수상자에 대해서만 혜택을 준다.
이렇게 법 개정이 이뤄지게 된 배경은 비인기 아마추어 종목 선수들의 반발과 형평성 문제 때문이었다. 축구 야구 등이 국민적 응원을 등에 업고 ‘예외’로 병역혜택을 받자 다른 종목 선수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하면서 결국 모든 예외 규정을 폐지해버렸다. 이에 축구계에서는 “‘축구의 대륙’ 유럽을 기준으로 할 때 월드컵 16강은 올림픽 금메달과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성적”이라며 “종목별 다양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축구 한 종목 때문에 엄격하게 지켜져야 할 법 규정에 구멍이 생길 경우 다른 종목 선수들이 갖게 될 상대적인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9년 3월 한국 야구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준우승에 올라 일부에서 병역혜택을 주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유야무야된 적이 있다. 그리고 현재의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상무’에서 계속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월드컵 16강 멤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선수라면 상무에서 충분히 기량의 퇴보 없이, 오히려 강화된 정신력을 갖춰 다시 프로무대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무’에 팀이 없어 메달이 아니고는 꼼짝없이 일반 현역병으로 군대에 가야 하는 종목의 선수들에 비한다면 엄청난 혜택인 셈이다.
“김칫국 마시나” 비판도
그 뒤 8개월이 흐른 지금도 현실은 비슷하다. 병무청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 개정이 있은 뒤부터 단일종목에 대한 병역혜택은 없어진 상황이다. 월드컵에서 우승을 해도 면제 등의 혜택은 법 규정에 없기 때문에 힘들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병역혜택과 관련한 법 개정의 키를 쥐고 있는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원유철 의원도 조심스런 입장이다. 그는 “상임위 교체가 된 지 얼마 안 돼 아직 업무파악 중이라 뭐라 말하기 힘들다. 그리고 아직 월드컵 결과도 나온 게 아니지 않느냐. 좀 더 지켜보자”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한국이 16강에 진출해 국민적 자긍심을 일깨워주고 코리아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원정 16강 진출은 한국 축구가 아시아 그룹에서 세계 톱클래스로 뛰어오르는 기념비적 사건이다. 이렇게 국가적 헌신을 해준 태극전사에 대한 보답 또한 정부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 때문에 16강 진출시 병역혜택을 주자는 목소리에도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이미 2002년의 전례가 있는 만큼, 월드컵 성적도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만약 월드컵 16강 진출로 병역혜택을 받을 경우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많은 수혜자들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태극전사 23인 중 군 미필자는 모두 13명이다. 이를 포지션별로 살펴보면 공격수는 박주영(25·모나코) 이승렬(21·서울) 염기훈(27·수원) 3명, 미드필더는 김보경(21·오이타) 김재성(27·포항) 기성용(21·셀틱)으로 역시 3명이다. 또한 골키퍼를 맡은 김영광(27·울산)과 정성룡(25·성남)도 미필이다. 군 미필자가 가장 많은 포지션은 수비수로 오범석(26·울산) 김형일(26·포항) 조용형(27·제주) 김동진(28·울산) 강민수(24·수원) 5명이다. 다만 조용형은 월드컵 지역예선 이란전 부상으로 무릎연골 제거수술을 받아 군 면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심사 결과 면제 대상에서 빠졌다는 얘기도 있어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
이청용 중학교 중퇴 ‘면제’
군 면제자는 모두 7명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에 성공해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선수는 박지성(29·맨체스터) 김남일(33·톰톰스크) 안정환(34·다롄) 이영표(33·알힐랄) 차두리(30·프라이부르크) 5명이다. 그 외에 이정수(30·가시마)는 무릎십자인대 파열로, 이청용(22·볼턴)은 중학교를 중퇴해 군 면제를 받았다. 이운재(37·수원)와 이동국(31·전북)은 병역을 마친 예비역 병장이며, 김정우(28·광주)는 현역 일병으로 군복무 중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