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호 9단과 올 10월에 결혼하는 예비 신부 이도윤 씨. |
이도윤 씨는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이다. 1조에 있었다. 여자라도 연구생 1조면 바둑 실력이 무섭다. 요즘 연구생 출신 젊은 여성들과 40대 이상의 남자 전국구 아마 강자들이 연승전으로 겨루고 있는 ‘지지옥션배’를 봐도 알 수 있다. 일진일퇴 팽팽한 접전 아닌가.
이도윤 씨도 계속 매진했으면 프로가 되었을지 모르는데, 프로가 보이는 지점에서 방향을 틀었다. 명지대 바둑학과에 진학했고, 졸업해서는 인터넷 바둑 사이트 ‘사이버오로’의 기자로 취직했다. 사이버오로는 한국기원의 자회사다. 바둑을 취재하면서 이창호 9단을 만났다. 인연의 고리가 바둑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5월경이었다. 이 9단은 바둑세계의 지존이었고, 이도윤 씨는 새내기 기자였다. 이 9단은 예나 지금이나 싫다 좋다 말이 없고, 웃어도 소리가 나지 않게, 잠깐 보일 듯 말 듯 웃는 내성적 돌부처. 이도윤 씨는 170 가까운 늘씬한 키에 이목구비가 서구형으로 큼직큼직 시원시원하고 성격도 학창시절부터 활달 털털하기로 소문난 적극파이니 모르긴 몰라도, 열한 살 나이 차이와는 상관없이 먼저 시동을 건 것은 이도윤 씨였을 것이다.
처음엔 ‘사범님’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저렇게 취재에 인터뷰에 그런 게 반복되다보니 이 9단도 어린 여기자를 만나는 일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자는 사람을 재미있게 해 주는 재주가 있었다. 이 9단은 여기자를 만날 때는 가끔은 내성적 돌부처답지 않게 아주 큰 소리로 웃는 일도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 이도윤 |
그해 겨울. 한국기원의 기관지 <월간바둑>과 모 스포츠신문이 두 사람의 만남을 공개했다. 해를 넘겨 2009년 여름, 결혼 얘기가 나왔고 이 9단은 부인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10개월쯤 후에 구체적인 것을 말씀 드리겠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거의 정확히 10개월이 흐른 지난 6월 15일 마침내 결혼을 발표한 것. 결혼 예정일은 10월 28일, 목요일이다. 이창호 9단의 팬들이 웃는다.
“2년 동안이나 사귀다가 이제 결혼한다는 거니 정말 신중한 거네. 과연 이창호는 장고파야. 신부도 인내심이 대단하네.”
“프로기사는 참 좋은 직업이야. 앞으로는 프로기사도 판사 변호사 의사 박사처럼 ‘사’자 직업군에 들어갈 걸.”
“성적만 낸다면 기막힌 직업이지. 돈 잘 벌고 시간 자유롭고, 대접 받고 … 괜찮지. 성적을 못 내면 좀 피곤하지만.”
“그건 다 마찬가지지. 성적 못 내도 괜찮은 직업은 없어.”
“결혼 발표도 딱 스케줄 짜서 하네. 계가하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가.”
“결혼 예정일은 또 뭐야…^^ 그때 가서 바뀔 수도 있다는 건가. 이건 뒷맛을 남겨놓은 거네. 하하하.”
“목요일은 또 뭐야. 주말은 바빠서 안 되는 모양이지…^^ 아무튼 독특하네. 독특한 기풍이야.”
“어쨌거나 잘 만났어. 잘 살 거야. 부부는 성격이 반대여야 하거든. 신부가 잘할 거야.”
이도윤 기자는 지난 2월에 사이버오로를 그만두었다. 신부수업도 이유의 하나일 테고, 주변의 시선도 이제는 많이 의식이 되었던 모양이다. 결혼 발표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 기자가 “바둑의 지존을 부군으로 맞았으니 못다 이룬 프로기사의 꿈에 다시 불을 댕길 수도 있겠다”고 하자 신부는 “저는 성격이 승부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럴 생각은 없다”고 대답했다. 대신 위대한 바둑 두뇌의 아버지와 바둑을 잘 아는 미모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날 2세에게 한번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그나저나 바둑 동네의 노총각들은 또 싱숭생숭하게 생겼다. 바둑 동네엔 노총각이 많다. 바둑 두는 사람들이 유달리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둑이 여자 만나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재미가 있어, 바둑 잘 두는 사람들을 보면 한창 여자 만나고 연애하고 할 꽃 같은 나이에 청춘을 바둑에 바치기 때문이다. 연애할 시간이 없다. 남들 연애하는 시간에 바둑쟁이들은 포석에 스스로 심취하고 맥점과 급소를 찾아 환호하며 사활의 묘기에 때로 좌절하거나 전율하기 때문이다.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면, 그 안에 연애는 당연히 있는 것 아닌가.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