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알면 알수록 놀라운 레스너의 괴력 때문이다. 일단 미국에서도 주류 언론이 크게 보도했을 정도로 화제가 된 경기력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1라운드에서 헤비급잠정챔피언인 셰인 카윈에게 턱을 강타당해 다운되고, 이어 드러누운 채 일방적으로 얻어맞았지만 이를 버텨냈다. 한국이나 일본 같았으면 진작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을 정도로 레스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맞기만 한 것이다. 더군다나 카윈은 보통 선수가 아니다. 이때까지 12전 전승, 그것도 모두 1라운드에 KO승을 거둬 ‘2라운드를 모르는 사나이’로 불리는 강자였다. 그의 주먹 한 방에 프랭크 미어 등 헤비급의 강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는데 레스너는 ‘드러누운 샌드백’이 되고도 버텨낸 것이다.
얼굴이 엉망이 될 정도로 얻어맞은 레스너는 하지만 2라운드 들어 확 달라졌다. 레슬러 출신답게 테이크다운으로 카윈을 넘어뜨려 상위 포지션을 잡았고, 이내 삼각조르기로 카윈의 항복을 받아냈다.
레스너는 이날 경기가 357일 만의 복귀전이었다. 지난해 11월 대장 게실염 수술을 받았는데 은퇴를 고려할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빴고, 공백 기간도 길었다. 심지어 진료과정에서 레스너가 소화기관 문제로 1년 이상 자신의 신체기능 중 60%밖에 쓸 수 없었던 사실이 나타나 격투기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레스너는 60%의 신체능력으로 히스 헤링, 랜디 커투어, 프랭크 미어 등 헤비급 최강자를 잇달아 격파한 것이기 때문이다. 레스너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카윈의 펀치를 맞고 있는데, 참을 만했다. 조금 더 버티면 오히려 카윈의 체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레스너가 더욱 무서운 것은 그가 이제 고작 6경기(5승1패)를 치른 종합격투기 초보파이터라는 사실이다. 미국 대학레슬링에서 4번이나 챔피언에 올랐고, 프로레슬링(WWE)에서 스타플레이어로 활약했지만, 아직 격투기의 타격이나 그래플링 기술은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카윈과의 1라운드에서는 한 방 맞고 크게 당황하는 초보 파이터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기도 했다. 레스너는 경험과 기술 부족을 압도적인 체격과 파워로 만회하고 있는 것이다. 즉, 향후 UFC 커리어가 쌓이면서 경기운영 능력과 기술이 보완된다면 레스너는 사상 최강의 파이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흥미로운 것은 욕설 비난 등 ‘오버’로 가득 찬 WWE의 분위기를 그대로 답습해 팬들로부터 눈총을 산 레스너가 이번 UFC 116부터는 매너도 아주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상대선수는 물론이고, 그 스폰서까지도 싸잡아 깎아내렸는데 이번에는 경기 후 가장 먼저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은) 심판에게 감사한다”고 밝히고, 카윈을 좋은 선수라고 평가하는 등 성숙한 매너를 보였다. 아예 스스로를 “겸손한 챔피언(a humble champion)”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 끝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안 되는 전투력(경기력)에, 매너까지 좋아졌으니 팬들이 ‘괴물’ 레스너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