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수입랭킹 1~3위를 기록한 최철한 9단,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왼쪽부터). |
이세돌 9단은 그러나 복귀 후, 올 상반기에는 그야말로 천둥 번개를 몰고 다니며 질풍의 24연승을 포함, 32승3패로 승률 94.1로 승률과 연승 부문에서 선두를 달렸고 상금도 3억 2000만여 원으로 1위에 올라 있다. 지금 기세라면 올 시즌 이세돌 9단은 수입은 물론 이른바 ‘공격 전 부문’에서 수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상금은 벌써 작년의 80%를 돌파했다.
한국기원 집계를 보면 2009년 시즌 243명 프로기사 중 연수입 1억 원 이상은 위의 세 사람을 포함해 모두 8명인데, 중국리그에서 올린 수입이나 ‘바투’ 대회에서 받은 상금 등은 뺀 것이라고 하니 실제 액수는 조금 늘어날 수 있다.
한편 2008년도 프로기사들의 연간 평균 수입은 24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7월 7일 연합뉴스가 국세청 발표를 인용해 보도한 것. 국세청 발표 자료 중 “기사(棋士)라는 직업으로 소득 신고한 사람은 347명”이라는 것은 교정을 봐야 할 부분이다.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는 오늘 현재 246명이다. 2년 전에는 조금 더 적었다. 한국기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은퇴한 프로기사 중에 여전히 바둑활동으로 소득을 올리는 경우나 아마추어 대회에서 상금을 받은 아마 기사 등을 다 포함한 숫자로 보인다”는 것.
2400만 원이면 월 평균 200만 원. 많은 액수가 아니다. 2008년부터는 경기도 안 좋으니 작년이나 올해나 별로 나아진 것도 없을 것이다.
바둑이든 연예든 스포츠든 유명 프로라고 하면 연봉이 무조건 억 소리는 날 것이라고 짐작들을 하고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연예인이나 프로 스포츠 선수는 매니저나 구단 같은 것이 있어 재무관리도 해 줄 것이니 실제 수입이 신고한 것보다는 많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기사는 가욋돈이 생길 데가 별로 없다. 생긴다고 해도 액수 자체가 대단한 게 못 된다.
그러나 대신 프로기사는 시간이 자유롭다. 시간은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이상의 가치다. 그 점에서 프로 중에는 바둑 프로가 제일이다. 성적을 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르긴 하지만, 성적을 꼭 못 내도 프로기사는 아마추어에게는 사범 대우를 깍듯이 받는다.
프로기사 연봉 1억 돌파 1호는 조훈현 9단, 1980년대 후반이었다. 그때는 프로기사가 프로 스포츠 선수에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연봉 꼭대기 쪽은 프로기사가 앞섰다. 그때 스포츠에서는 선동열 선수가 1등이었는데, 조 9단이 연봉에서 앞섰다는 얘기가 많았다. 게다가 조 9단은 1989년 제1회 잉창치배 우승으로 40만 달러를 거머쥐었다. 그때 환율로 3억 원이 넘었다.
그나저나 20년 전 1억이, 20년이 지나 지금 6억 원이다. 2~3년 전에 10억 돌파 기록도 있었는데, 다시 뒤돌아가고 있다. 총 예산은 크게 늘지 않는 상태에서 성적 상위 랭커들이 많아져 상금이나 대국료가 쪼개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되는 것은 다시 시장이다. 바둑으로 돈을 만들고 싶다면 미국 시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단 미국 시장에서 자리만 잡으면 그 순간, 일단 볼륨이 지금의 100배는 커지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미국 시장에 들어가는 첩경은 세계대회 우승이 아니다. 미국은 정치적인 좋고 나쁨을 떠나 ‘기여’나 ‘기부’를 높이 평가하는 사회이니, 바둑이 그들에게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일이다. 실제로 기여할 것이니까.
또 하나는 매니지먼트다. 연예나 스포츠의 스타들이 돈방석에 앉는 것은 몸값도 몸값이지만, 광고가 크다.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도 박지성 선수나 김연아 선수만큼 되어야 한다. 바둑 세계대회를 주최하는 삼성이나 LG, 농심 등이 이창호 이세돌을 모델로 광고를 만들면 안 될까. 각고의 시간과 밀도, 우리에게 선사하는 감동의 내용에서 이창호 이세돌이 박지성 김연아보다 못할 게 없다.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가 바둑 팬들이 지갑을 열도록 도와야 하고, 프로기사들도 마음을 더 열어 대중에게 자신을 노출시켜야 한다.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과 사범 대접을 받는 것이 모순은 아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축구 팬이고 피겨 팬이며 영화-드라마 주인공의 팬이고 가수의 팬인데, 바둑 팬은 일부라는 것. 바둑은 내가 직접 할 줄을 모르면 팬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둑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바둑계는 이걸 연구해야 한다. 일본은 바둑이 침체했다고 하는데도 기성전 우승 상금이 5억 원이 넘는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