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7일 제3차 기술위원회(위원장 이회택)를 열고 차기 대표팀 사령탑 선임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뉴시스 |
허정무 감독이 유임을 포기한 뒤 수많은 신문, 방송 매체들은 여러 명의 차기 감독 후보군을 예측하며 각자의 정보력을 바탕으로 취재에 나섰다.
대표팀 사령탑 선임과 관련한 첫 번째 기술위가 열린 지난 7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5층 대회의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회의를 주관한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외부에서 기다리던 많은 취재진 앞에서 짧은 브리핑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한 기자가 “후보들이 누구냐”고 묻자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지 않느냐”며 “12~13명 정도 인원을 놓고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보도가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사실임이 확인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따로 있었다. 감독 선정에 있어 기술위원들의 영향력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미치느냐 하는 점이었다. 현재 기술위는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회택 협회 부회장과 조영증 협회 기술국장을 포함, 총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첫 회의에 참석했던 A 기술위원에게 누군가 “후보 선정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비교적 명쾌한 대답이 나왔다.
“우리가 좋은 지도자를 몇 명 추천하고, 협회에서도 따로 몇몇 인물들을 준비한다. 이를 모두 취합해 후보군을 추려 회의를 해서 (대표팀 감독을) 결정한다.”
하지만 기술위는 실권을 행사하는 집행자라기보다는 들러리와 같다는 지적이 있다. 현직에 있는 기술위원들은 현실적으로 ‘노코멘트’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사유 때문에 예전에 대표팀 감독을 선임한 경험이 있는 전직 기술위원 B를 통해 얘기를 들어야 했다.
물론 바랐던 긍정적인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일단 후보들을 추천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의 의사가 모두 반영되지 않았다. 대개 윗선에서 결정을 내리고, 내부 회의를 거친다는 표현이 좀 더 옳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대답을 했다.
결국 기술위원회는 선택권이 많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후보로 언급됐던 몇몇 유력 인사의 경우, 평소 친분을 쌓아온 일부 기술위원들의 추천을 약속받기로 했다고 알려지지만 실제로는 기술위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축구계에는 딱히 명확한 구분은 없지만 ‘주류’와 ‘비주류’로 언급되는 인물들이 꽤 있다. 물론, ‘주류’로 분류되는 쪽은 협회 고위 관계자들과 비교적 무난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인사들이다. 물론 협회 고위 관계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 세상에 그런 구분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협회 고위 관계자는 “대표팀 감독을 뽑을 때 지도력과 리더십, 안목, 축구 철학 등 다양한 부분을 점검하는 게 맞지만 협회 쪽과 의견이 맞지 않는 인물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뜻을 전달했단다.
하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 기술위원의 생각이었다. 그는 국내 프로축구를 협회보다 한 단계 낮은 조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이미 현직에 있고, 여전히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K리그의 사령탑들이 대거 후보군 물망에 올라있는 상황은 빅 리그가 즐비한 유럽 축구계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C 기술위원의 말이 걸작이다. “K리그 사령탑을 데려오려면 팬들이나 구단들이 반발할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대표팀이 부르면 당연히 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K리그 감독들을 쉽게 빼올 수 있는 인물들로 여겼던 셈이다. 더 황당하고 놀라운 사실은 기술위원 대부분이 전·현직 K리그 구단 스카우터라는 점이다.
물론 코앞에 2011 카타르 아시안 컵이 닥쳐왔고, 8월부터 10월까지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가 줄을 잇는 터라 대승적 차원에서 구단으로부터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계약’이란 파기하라고 있는 게 아닌, 지키라고 있는 일종의 약속이란 점을 감안할 때 C 위원의 생각은 여론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이번에 K리그 구단을 이끌고 있는 사령탑들이 언론 보도에 의해 후보군으로 분류됐다고 외부에 공개됐을 때 협회 공식 사이트는 물론, 각종 축구 관련 게시판에 협회를 성토하는 글들이 쏟아진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반면, 전북 최강희 감독을 비롯한 몇몇 K리그 사령탑들은 “대표팀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다”라며 “매우 영광스럽고, 영예스러운 위치라는 걸 잘 알지만 시기도 아닐뿐더러 엄연히 나를 믿어주는 구단과 선수들 때문이라도 떠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투명한 행정도 꼭 요구되는 부분이다. 대표팀 사령탑과 같은 큰 직책의 경우에는 훨씬 더 명확하고 정확한 인사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다보니 없는 낭설까지 나돌았다. 축구계에는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심지어 ‘누군가를 어느 구단으로 보내고, 그 팀 감독을 빼내서 대표팀 지휘봉을 맡긴다’ 등등 자세한 실체를 알 수 없는 풍문들이 곳곳에서 터졌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미 축구계 내부적으로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협회가 “새로 뽑힌 사령탑은 2014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한다”고 거듭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시로 대표팀을 이끌 ‘땜빵용’이란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하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기술위의 현주소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