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바둑협회가 한국기원 건물을 떠나 올림픽공원 컨벤션센터로 이사를 간다. |
잘된 일이다. 20평 사무실이면 한국기원 셋방보다 형편이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그러나 내 집이 있는 것과 세를 사는 것은 다르다. 또 대바협 수장을 연임하고 있는 조건호 회장(66)은 한국기원 부이사장이기도 했는데, 그것도 그만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야 어떻든 만시지탄이 좀 있지만 그것도 잘된 일이다. 아마추어 바둑을 총괄, 대변하며 스포츠의 엘리트 체육처럼 아마추어 엘리트 바둑을 표방하는 대바협이 한국기원에 더부살이를 하고 회장이 한국기원 부이사장이라는 것은 우선 모양새부터 어색했다. 어차피 체육의 길로 갈 것이라면 한국기원은 한국기원이고 대바협은 대바협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은 대바협이 한국기원보다 큰 단체다. 따라서 일도 더 많다. 내 집을 마련해 이사 가는 날을 며칠 앞두고 임직원들은 새로운 의욕에 부풀어 있는 모습이다. 하긴 그동안 셋방살이를 하면서는 하고 싶은 일들을 충분히 못했을 것이다. 대바협의 심우상 사무국장(47)을 만나 보았다.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우선 아시안게임이다. 오는 11월에 열리는 중국 광저우대회는 그런대로 준비가 되어가고 있지만, 2014년 인천대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알다시피 현재는 바둑이 빠져 있지 않은가. 빠져 있는 것을 다시 들어가게 하는 게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중국 대회에 있는 바둑이 우리나라 대회에서 빠진다는 건 면목 없는 일 아닌가.
―단기 계획이나 목표는?
▲전국 체전이나 초-중-고 학생들이 참가하는 소년 체전에 정식 종목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지금도 전국 체전에 바둑 종목이 있긴 하지만 시범 종목이다.
―빨리 학교로 들어가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 같다.
▲그렇다. 초-중-고는 물론이고, 대학에 바둑부, 바둑팀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4월에 출범한 경기도 고양시 바둑선수단 같은 것이 롤 모델이다. 고양시가 참 좋은 일을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동호인 저변 확대는 영원한 숙제 아닌가.
▲대바협이 발족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바둑의 스포츠화를 위해 꽤 많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은 있다. 다만 방금 말했듯 아직 뚜렷한 결실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바둑이 정식으로 학교에 들어가면, 지금과 같은 방과 후 특기 적성 교육이 아니라 유소년부터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바둑 교육-보급을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바둑이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생활 속에 정착하게 되고, 결실도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지금은 가령 바둑교실이 학원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걸 바꾸는 일이다. 체육시설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자세히 설명하기는 조금 복잡하고 미묘한 사안들이 있지만, 요컨대 태권도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렇듯 바둑 보급을 위해서는 특히 유소년 보급을 위해서는 학원법보다 체육시설법이 유리하다 할까, 좋은 점이 많다. 바둑 체육화를 시작하면서 같이 추진했던 것인데, 몇 년 전에 잠시 중단되어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제일의적 일이다. 이미 몇 년 전에 바둑계의 몇몇 뜻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바둑문화 진흥법’ 제정을 추진한 일이 있었다. 심 국장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그것도 현재는 잠을 자고 있다. 바둑문화진흥법 제정 같은 것은 바둑 체육화보다 상위의 개념인데, 그런 일에 앞장서는 데에는 한국기원보다는 대바협이 당연히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원법에서 체육시설법으로 옮겨가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기왕이면 조금 더 크게 바둑문화진흥법으로 매진하는 것은 어떨까.
이쯤에서 한 가지 짚어보기를 권하는 것은 바둑교실이 체육시설법으로 갈 때 시중 기원도 함께 가는 것은 어떨까 하는 것. 유·청소년을 위한 학교 바둑과 성인을 위한 기원이 동행하는 것이다. 지금은 온라인 시대인데 철 지난 오프라인의 기원이 다 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바둑만이 아닌 성인들의 종합 휴식처로 기원만 한 것도 드물지 않은가.
스포츠화 여부를 떠나 대바협은 아마추어를 위한 단체다. 수명은 늘어나고 사회는 고령화로 가고 있다. 바둑동호인들도 점점 더 오래 살게 될 것이고, 고령화될 터이다. 기원을 사양업종이라고 치부할 것만은 아니다. 아이콘이 될 수도 있다. 대바협이 학교바둑, 바둑교실 등과 함께 기원 쪽에도 눈길을 주기 바란다. 생각과 관점을 바꾸면 된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