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광래 감독. |
#국내파 사령탑
솔직히 출발 전부터 삐걱거렸다. ‘포스트 허정무’를 놓고 방향은 일찌감치 국내파 사령탑의 선임으로 굳혔지만 모양새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쳤든, 어떤 사연을 지녔든, 조광래 전 경남FC 감독이 태극호 새 선장이 됐다. 여기에 담겨진 의미는 꽤 깊다. 2000년대 들어 국내 감독들이 연이어 선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2002한일월드컵 4강을 이끈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기점으로 대개의 틀은 ‘국내→해외’로 이어졌다. 98년 10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지휘봉을 잡았던 허정무 감독 이후 잠시나마 부름을 받았던 한국 감독은 김호곤(2002년 11월), 박성화(2004년 4~6월) 등 두 명이 전부였다. 박항서 감독(전남)도 한때 대표팀을 이끌었으나 정식 성인군이 아닌, 대부분이 23세 이하로 구성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멤버들이었다.
아무래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터. 허 감독의 후임자에 대해 축구인들 사이에서 “이번 감독은 2014브라질월드컵이 아닌 2년짜리 땜빵용”이란 뒷말들이 무성했던 것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의 후임자에 대해 몇몇 후보들이 벌써부터 거론된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얘기이지만 사실 조 감독의 진짜 포부는 ‘대표팀 감독’이었다. 유력 후보군에 지목됐을 때 뚜렷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프로팀을 이끌 때에도 사석에서 지인들에게 자신의 (대표팀 감독이 된다는 가정 하에) 꿈과 목표, 비전을 설명하곤 했었다. 일단 지도자로서 자신의 1차 목표는 이룬 셈이다.
조 감독과 가까운 한 축구인은 “프로 시절부터 성적도 좋았고, 완성되지 못한 미숙한 선수들을 최상의 기량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도 최고 역량을 발휘해왔다. 이번 감독이 ‘보장받지 못한’ 자리라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자신감도 그에 못잖게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K리그
어쩌면 나이지리아전은 K리그의 진정한 위치를 살필 수 있는 기회도 된다. 남아공월드컵이 끝난 뒤 프로축구연맹 직원들은 한결같이 “K리그 선수들이 한 골 정도만 넣어줬어도 훨씬 분위기가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 섞인 한마디를 던졌다. 2골씩 넣은 이청용(볼턴)과 이정수(알 사드)는 물론, 박주영(AS모나코)과 박지성(맨유) 등 골 맛을 본 이들은 모두가 해외파라는 공동의 테두리에 속했다.
물론 조 감독은 개인적으로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첫 데뷔 무대를 승리로 이끌고픈 욕심이 있다. 그러나 결과는 부수적인 사안일 뿐이다.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직후 해외파 총동원령을 선포했지만 컨디션 조절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 감독이 무리하게 유럽파들을 기용할 리가 없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이다. 뿐만 아니라 조 감독은 K리그의 중요성을 너무도 잘 안다. 23명을 최종 엔트리라고 하면 최소 절반 이상은 항상 K리거들이란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경남을 이끌었을 때 현장의 취재 기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자국 리그가 약한 팀들은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론을 조 감독은 자주 펼쳐왔었다.
카타르에서 열릴 2011 아시안컵이 시즌 일정 관계로 해외파 소집이 불투명한 내년 1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파의 비중은 아무래도 커질 수밖에 없다. 나이지리아전을 포함해 매달 치러질 A매치(9월 이란, 10월 일본) 등에서 K리거들의 집중 점검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은 당연하다.
▲ 남아공월드컵 나이지라아전에서의 박지성. |
또 하나의 화두는 세대교체다. 조 감독은 지난달 말, 전북에서 원정 경기를 치르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특정 포지션에 되도록 많은 선수들이 몰려있어야 한다. 그래야 긍정적인 경쟁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고 향후 비전을 설명했다.
이번 월드컵 성공 비결로 조 감독이 꼽은 것도 ‘완벽한 베스트 11’과 ‘실력적으로 여기에 뒤떨어지지 않는 리저브 멤버군’이었다. “확실한 조커들과 후보들이 있어야 선발 멤버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언제든 자신의 위치를 내줄 수 있다는 심적인 압박이 작용하면 긍정적인 긴장이 나타나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
조 감독은 뉴 페이스들의 발굴에는 일가견이 있다. 그는 최고의 선수들이 몰린 곳이라면 최상의 조직력을 만들어냈고, 환경이 열악하면 또 그 나름대로 최선의 선수들을 발굴했다.
K리그가 내놓은 히트상품 중 하나는 ‘조광래 유치원’이었다. 어디에서도 알아주지 않는 선수들이 조 감독과 함께 있으면 120% 실력을 발휘했고,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언급된 얘기였다.
서울 시절에도 조 감독은 이청용, 박주영 등을 발굴했다. 대표팀 사령탑 첫 번째 미션으로 ‘포스트 쌍용(이청용-기성용) 발굴’을 꼽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들의 최종 선발 및 출전 여부 등을 떠나 지난해 이집트에서 열린 U-20 남자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이룬 홍명보호 멤버들을 대거 대표팀 엔트리 소집 대상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다음은 조광래 감독의 선수 선발에 대한 원칙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월드컵이 끝나면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1차 점검 시기로 ‘아시안컵’을 꼽을 수 있고, 2차 점검 시기로는 ‘아시아 3차 예선’을 들 수 있다. 아시아 최종 예선은 본선 체제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브라질월드컵까지 대표팀이 꼭 해야 할 숙제가 있다면 현재의 해외파들을 대체할 수 있는 멤버들을 가급적 많이 뽑는 일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