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썰렁한 K리그 경기 모습. 축구 팬들의 외면으로 K리그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
#티켓값 만원이 아깝다?
남아공월드컵 이후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K리그 선수들이 한 골만 넣어줬다면 리그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나마 끌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일리 있는 얘기였다. K리거들이 땅을 친 반면, 어시스트와 득점 모두 해외파 몫이었다.
‘스타 부재’가 ‘조용한’ K리그 그라운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유명 선수들이 뛰고 있으나 폭발력은 2% 부족하다. 이동국(전북), 염기훈(수원) 정도가 나름 제 몫을 해도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팬들이 원하는 만큼 최고의 선수들을 공급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항시 흥미를 유도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 ‘스토리 부재’도 또 다른 아쉬움이다. 몇몇 젊은 선수들은 어느 정도 ‘떴다’ 싶으면 한껏 어깨에 힘을 주고, 대면 인터뷰는커녕 이미 합의돼 있는 믹스트 존 인터뷰조차 거절하는 일이 다반사다. 거의 비슷하고 천편일률적인 보도가 쏟아질 수밖에 없는 최악의 환경이다.
최소 2주에 한 번 이상 꾸준히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아다니는 K리그 팬 김세현 씨(30·회사원)는 “확 임팩트를 주는 선수가 없다. 여러 스포츠 매체들의 기사도 늘 똑같다 보니 재미가 없다. 우린 ‘선수 A가 해트트릭을 했다’보다는 ‘선수 A가 해트트릭을 하기까지 과정’과 ‘선수 A를 키워낸 사람들과 그의 진솔한 인터뷰’를 보고 싶어한다. 스타도, 이야깃거리도 없는데 1만 원에 달하는 티켓 가격을 쉽게 지불하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선수난 진짜 이유는?
K리그는 선수난에 시달린다. 선수 자체가 없다는 얘기가 아닌, ‘쓸 만한’ 이들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다. 유망주들은 일본이나 유럽 클럽 유스팀으로 떠나고 중견 선수들은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아시아 쿼터’ 제도를 시행했던 2009년을 기점으로 중동 무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탓이다.
막대한 연봉, 세금 감면 혜택 등 ‘오일 머니’로 무장한 중동 클럽들은 은퇴 후를 준비하는 선수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카타르 등 막대한 부는 축적했으나 이에 상응하는 ‘명예’를 구하지 못한 클럽들이 어느 정도 이름값을 지닌 한국 선수를 향해 러브콜을 보냈고, 현재 진행형이다. 약 7명의 스타급 선수들이 중동에서 뛰고 있거나, 뛰었던 경험이 있다.
심지어 유럽에서 유턴할 때도 K리그가 아닌, 중동 땅을 먼저 밟았고 유럽으로 나가기 위한 길목으로 중동을 택했다. 전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떠난 설기현(포항)이 사우디 알 힐랄로 6개월 단기 임대됐을 때의 경우고, 후자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말라가 진출을 전제 조건으로 카타르 리그 알 라얀으로 옮긴 조용형(전 제주)의 경우이다.
하지만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해외 축구 소식에 정통한 한 에이전트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가 아시아 클럽 선수권에서 확대 개편되고, ‘아시아의 빅 클럽’을 상징하는 일종의 명예처럼 인식되다보니 중동 클럽들은 이미 검증된 한국 선수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동이 유럽과 가깝다는 지역적 특성을 무시할 수도 없다. 중동 클럽 경기장에선 쓸 만한 선수들을 물색하는 유럽 클럽 스카우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기에 많은 팀들이 확실한 클럽 시스템을 갖춰 운영하고 있다. 실력과 행정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유망주들이 자주 시선을 주는 J리그도 비슷하다. 물론 처음은 아니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홍명보, 유상철, 황선홍 등 소위 스타급 선수들의 경우 은퇴 전 일본 무대를 거치는 게 당연한 수순으로 비칠 정도였다.
그러나 예전과 지금의 이유는 다르다. 10년 전에는 ‘돈’이 매력 포인트였다면, 2부 리그인 J2리그까지 염두에 둔 지금은 ‘성장 환경’이다. 연봉만 원화 기준으로 10억 원 넘게 받는 일부 선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1억 원대 남짓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광래호 1기에 발탁됐고, 작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8강 주역이었던 김보경(오이타), 조영철(니가타), 김민우(사간토스), 김영권(도쿄) 등 어린 선수들이 과감히 자신의 첫 기착지로 일본을 택했다.
수도권 모 고교 선수의 학부모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1억 원 가치는 정말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떠나려는 것은 외국 문화도 접하고, 보다 자유롭고 억압을 피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4일 열린 FC바르셀로나와 K리그 올스타의 친선경기에서 수비를 피하고 있는 리오넬 메시. 이종현 기자 |
K리그의 고민은 이 뿐만 아니다. 나름 흥행을 위해 시도하는 이벤트들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도 뼈아프다.
대표적인 예가 올스타전이다. 중부-남부 팀으로 나눠서 해봤고, J리그 올스타팀과 일종의 한·일전도 치렀다. 올해는 유럽 최고 클럽 FC바르셀로나(스페인)를 불러들였으나 주최 측의 허술한 계약과 돈벌이에 급급하고 성의 없는 경기로 일관했던 ‘오만한’ 클럽에 의해 재앙에 가까운 참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외부와 소통을 단절한 듯 구단들이 별 위기의식을 갖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1만 명도 넘기지 못한 썰렁한 관중석을 바라보며 “우리 팬들이 왜 경기장을 찾지 않을까”란 생각보다는 “역시 맨유가 아니면 관심이 없구나”란 생각을 먼저 한다는 것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