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8월에 열린 유럽 콩그레스 시상식에서 유럽 강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일리야 쉭신 7단(1등), 아르촘 카차노프스키 7단(2등), 카탈린 타라누 프로5단, 코넬 부르조 6단(루마니아·7등), 크리스티안 팝 7단(루미니아·8등). |
스베타와 동갑에 동향 출신이며 천 8단의 주선으로 스베타와 함께 한국에 와서 같은 날 추천입단한 사람이 ‘샤샤’라고 부르는 알렉산드르 디너쉬타인 3단. 샤샤 3단은 입단 후 러시아로 돌아가 각종 대회에서 성적을 올려 유럽 최강 멤버로 자리를 굳히는 한편 인터넷 지도 등으로 열심히 바둑 보급을 하면서 성과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베타 집안은 바둑가족이다. 스베타의 아버지가 애기가로 카잔 바둑협회 임원이었다. 카잔은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약 800㎞ 떨어진 도시. 러시아 제3의 도시쯤 된다. 스베타를 바둑의 길로 인도한 것은 물론 아버지였으며 스베타의 성공을 보고 남동생 일리야가 뒤를 따르고 있다.
일리야는 지난해 봄, 4월에 한국에 건너와 11월까지 천 8단의 집에 반년쯤 기거하며 공부를 하다가 돌아갔는데, “올 때는 한국기원 연구생 10급 정도의 실력이었는데, 여기 있다가 돌아갈 즈음에는 한국기원 연구생 7급 정도까지 올라갔었다. 지금은 한 5급쯤 되어 있을 것이다. 승부 근성이 강한 데다가 바둑에 대한 열정이 있어 러시아-유럽 최강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천 8단의 얘기다.
54회 콩그레스에는 582명이 참가했다. 전에 한번 얘기했듯 2003년부터는 한국에서 20~40명씩 대거 출전했고 그중에는 연구생 출신 강자들도 많아 우승을 독점해 왔다. 출발은 콩그레스에 참여해 같이 즐기는 사절단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해마다 콩그레스를 평정하는 원정단이었던 것. 특히 지난해 경우는 1등부터 5등까지 싹쓸이를 해버렸다.
올해는 한국에서 김중협 7단(21)과 연구생 출신으로 명지대 바둑학과에 다니고 있는 김채림 강낭경, 두 여학생 7단, 그리고 옛날에 의사 바둑대회에서 이름을 날렸던 산부인과 의사 경광수 박사(71) 등, 4명만이 참가했다.
한국 참가자가 대폭 줄어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유럽 현지 바둑인들이 한국 바둑 실력에 감탄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년 콩스레스를 초토화하는 한국 바둑에 대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소 불편을 느끼게 된 것도 사실이다. 상금이 바뀐 것도 재미있다. 2~3년 전부터는 우승자가 유럽인이냐, 비유럽인이냐에 따라 상금 액수가 달라진 것. 올해 우승한 일리야는 2000유로를 받았지만, 지난해는 1등부터 5등까지의 상금을 전부 합한 것이 1000유로였다.
이번 대회는 준우승도 러시아의 아르촘 카차노프스키 6단. 예쁘장하게 생긴 꽃17세 청소년이다. 3등이 우리 김채림, 4등이 김중협, 네덜란드 바둑인들이 “한국에서 온 미녀기사”로 열렬히 반기고 있는 강경낭이 5등을 차지했다. 프로기사 카탈린과 샤샤는 각각 6등과 9등에 머물렀다. 프로의 체면을 좀 구긴 셈이다. 1980~90년대 유럽 바둑을 주름잡았던 네덜란드의 롭 반 짜이스트의 이름이 보인다. 반갑다. 14위에 올라 있다. 지금은 쉰이 넘었을 텐데,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는지, 그 나이에도 여전히 잘 둔다고 해야 할는지.
어쨌든 유럽 바둑 동네에선 러시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둑 실력이나 행사 규모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물론 그 에너지원은 한국 바둑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샤샤 스베타 일리야에다가 이번 대회 준우승자 아르촘까지 모두가 천풍조 8단의 제자인 것. 아르촘도 2008년에 한국에 와서 천 8단 집에 석 달을 머물다 돌아갔다. 학교, 군대 문제 등이 해결되면 내년쯤에 다시 한국에 올 계획이다.
핀란드가 콩그레스를 유치한 것도 러시아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핀란드에서도 한국 바둑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한국 바둑의 해외보급도 이제는 좀 방향을 달리할 때가 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에서 해외로 나가는 우리 프로-아마기사들에게 공식적인 경제적 지원을 시작한 것은 정말 잘 된 일이다. 프로기사의 경우 1년에 2000만 원을 지원 받게 되었으니 그런 정도면 생활 대책에 급급하지 않을 수 있다. 여유를 갖고 계획을 세워 활동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보급의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는 주로 현지의 강자들을 상대하고 있는데, 제대로 보급을 하려면 잘 두는 사람들보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을 찾아나서야 한다. 역시 학교로 가는 것이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유치원서부터 초중고 대학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것이다. 잘 두는 사람들을 더 잘 두게 하는 것보다 새로운 바둑 인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잘 두는 사람들은 이미 인터넷으로 한국 고수들의 기보를 감상하고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