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정무 인천 유나이티드 신임 감독이 8월 26일 인천 승기연습구장에서 첫 훈련을 하며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인천 유나이티드 |
여전히 허 감독의 휴대폰 번호는 월드컵 때 쓰던 그대로 ‘2010’으로 끝난다. 컬러링 역시 그가 지인들과 함께 노래방을 찾을 때 즐겨 부르는 유명 팝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로 변함이 없다.
영웅의 향후 행선지를 놓고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지만 월드컵에서 최고 성적을 거둔 뒤 야인으로 돌아갔던 허 감독은 사실 오래 전부터 K리그 사령탑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월드컵 이후 허 감독의 주가는 말 그대로 ‘폭등’ 했다. 일단 K리그 감독을 맡고 싶다는 의중이 확실히 정리되자 구체적인 이유까지 거론되며 ‘감독대행’ 체제로 있거나 기대 이하의 성적 속에 사령탑들의 임기가 거의 종료되는 몇몇 구단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심지어 허 감독의 인천행이 유력하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된 뒤 허 감독에 내심 관심을 드러냈던 모 구단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주위 눈치를 보다가 가장 좋은 카드를 놓쳐버렸다”며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솔직히 인천행은 다소 의외였다. 축구계에서도 “인연이 깊은 포항이라면 몰라도 인천으로 갈 줄은 예상치 못했다”고 깜짝 놀라는 분위기였다.
인천도 페트코비치 전 감독을 보좌했던 김봉길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으며 운용되고 있기에 후보군 중 하나로 거론되긴 했지만 환경은 건실한 대기업을 등에 업은 타 구단들에 비해 열악한 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허 감독의 승부사 기질은 인천행을 결심한 뒤에도 똑같았다. 최근 인천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분석이다. 최악의 상황일수록, 최악의 국면일수록 뭔가 보여주고 싶고,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여기에 구단 및 인천시의 적극적인 의지와 강력한 비전이 첨가됐다. 허 감독은 올 초 이미 측근들에게 대표팀을 떠나겠다는 의중을 전했고, 기회가 되면 현장에 복귀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인천으로부터는 지난 7월 초 비공식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 시장이 “그가 아니면 안 된다”며 허 감독을 새 사령탑 후보로 직접 점찍었다는 후문도 있다. 축구계에 따르면 송 시장과 허 감독은 같은 전남 출신(고흥, 진도)이자 연세대 선후배 관계로 가끔씩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인천 구단에게도 허 감독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축구는 정치와 구분돼야 한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룰이 있다고 해도 한국 축구에 있어 시민구단이란 태생적으로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런 연유로 안상수 전 인천시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안종복 인천 구단 사장의 거취 문제가 말 많은 축구계에 오르내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안 사장은 인천시가 추진해온 ‘축구 특별 프로젝트’ 초창기부터 참여해오고 있어 일단 잔류하게 될 전망이다. 더욱이 허 감독의 현장 컴백을 자신들 쪽으로 끌어옴에 따라 인천 구단은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 셈이다.
허 감독의 인천행 보도가 나온 뒤 인천 선수단의 분위기는 비교적 평온했지만 ‘폭풍전야’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렸다.
이와 관련된 첫 보도가 터졌던 8월 18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부산과 인천의 2010시즌 FA컵 8강전을 앞두고 만난 인천의 한 선수는 “정말 (허정무 감독이) 오시느냐”며 되물었고, 심지어 부산 선수들도 인천의 친한 동료에게 “넌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물어 보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김봉길 감독대행이나 박이천 부단장은 “선수들이 동요하지는 않는다. 축구계가 워낙 말이 많은 동네가 아니냐”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으나 허 감독의 스타일을 직간접적으로 들어 알고 있기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허 감독은 대표팀 시절에서 볼 수 있듯, 호불호가 명확하다. 좋아하는 스타일과 싫어하는 스타일이 확실하다. 일부 선수들의 경우, 팀 기여도와 별개로 벌써부터 허 감독의 방출 리스트에 올랐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나돈다.
그러나 선수단 개편은 내년 초에나 본격화될 전망이다. 어차피 마지막 보강 기회인 여름 선수이적시장도 7월 28일로 종료돼 방출이 아니면 선수들을 정리할 수 있는 폭이 좁다.
대신 신인 발굴 작업은 수시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허 감독은 대표팀을 맡고 있을 때도 “재정이 약한 시민구단들의 진정한 역할은 우승이나 최고의 스타를 뽑는 게 아닌, 선수를 최고의 스타가 되도록 돕고, 가능성이 풍부한 어린 선수들을 선발해 미래를 키워주는 것”이라고 나름의 지론을 종종 설명해왔다.
그는 인천행을 확정한 뒤 기자에게 “우린 당장 우승을 바라볼 전력은 아니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최소 이에 근접할 수는 있다. 우릴 상대가 ‘껄끄러운 팀’ ‘짜증나는 팀’으로 평가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늘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아온 K리그에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또 다른 의미이기도 했다.
풍족함보다는 부족한 게 더욱 많아 보이는 인천에서 리그 타이틀을 차지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허 감독이 2007년 12월 처음 대표팀에 부임했을 때에도 ‘16강은 이번에도 어렵겠다’란 분위기가 팽배했다는 점을 돌이켜본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