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3년 이승엽의 신기록 홈런볼을 잡기 위해 잠자리채로 예행연습을 하는 관중들. 사진제공=삼성라이온즈 |
이대호의 9경기 연속 홈런볼을 줍게 된 행운의 주인공 임 아무개 씨.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다고 말한다. 지난 8월 14일 자리가 없어 전광판 뒤쪽에 앉아있던 임 씨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주위로 몰려든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 인사를 건넬 때야 비로소 자신이 홈런볼 주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고. 임 씨는 “원래 야구장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파울볼 한 번 주운 적 없었다.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설명한다.
경기 후 롯데 구단 관계자가 에어컨을 증정하겠다며 기증을 권유했지만 홈런볼을 소장하고 싶었던 임 씨는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야구팬들의 관심이 그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세계신기록 홈런볼이 얼마에 거래될지 궁금했기 때문. 지난 1998년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가 기록한 70호 홈런볼은 300만 달러(약 35억 원)에 낙찰돼 역대 최고 가격으로 거래됐다. 국내에선 이승엽의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볼이 1억 2000만 원에 팔린 바 있다. 에이스테크놀로지 구관영 사장(63)이 구매 의사를 밝혀 거래가 성사된 것. 이대호의 신기록 홈런볼은 그 금액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임 씨는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주위에서 경매하라고 권유하지만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실제로 한 케이블 방송으로부터 경매 제의를 받기도 했는데 부담스러워 제의를 거절했단다. 홈런볼은 지금 임 씨의 집 장롱 속에 고이 보관돼 있다. “은행 금고에 보관하란 조언도 많았지만 아내가 집에 소장하길 원했다. 아크릴 케이스를 사다가 공을 집어 넣고 가보처럼 고이 모셔두고 있다.” 임 씨는 사실 KIA 팬이다. 양현종을 제일 좋아한다고.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이대호가 부쩍 더 좋아졌단다. “그 이후론 회사일 때문에 야구장에 가보질 못했다. 그러나 TV중계로 플라이 볼만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홈런볼은 아시안게임까지 지켜본 후 경매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다.”
▲ 이승엽의 56호 홈런볼. |
장 씨는 “경기 전에 동료와 ‘오늘 이승엽 홈런볼은 누가 잡게 될까’ 얘기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게 내가 될 지는 꿈에도 몰랐다”며 미소를 보였다. 여 씨는 “모든 야구팬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며 기증한 연유를 밝혔다. 대신 두 사람은 구단으로부터 이승엽 친필 사인이 새겨진 골든볼(순금 24K 560돈)을 선물 받았다. 여 씨는 “순금으로 된 공을 소장하고 있기 부담스러워 금은방에 처분했다. 그때 시세로 5000만 원 정도 받은 것 같다. 이후 금은방 주인이 금을 녹였는지 다른 이에게 팔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장 씨도 “지인의 소개로 팔았다. 한 장 정도 받았다. 그 이후 행방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장 씨가 팔았던 골든볼은 2009년 앙드레김 주얼리 패션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숭례문 복원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패션쇼에 이승엽의 56호 골든볼 경매가 열린 것. 골든볼의 주인은 경매 금액으로 1억 원을 제시하고 낙찰가에서 1억 원을 뺀 나머지 금액을 기부하겠단 뜻을 밝혔다. 그러나 너무 높은 금액을 제시한 탓에 경매는 유찰됐고 골든볼은 원래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당시 행사 관계자는 “주인이 개인적으로 소장한다고 들었다”며 이후 소식을 전했다.
이승엽의 55호 홈런볼 또한 경매에 나왔다가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바 있다. 당시 광주구장에서 잠자리채로 홈런볼을 획득한 대학생 박 아무개 씨는 현대홈쇼핑에서 경매를 진행했다. 1억 2500만 원에 팔렸지만 낙찰인이 대금을 완납하지 않아 결국 거래가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박 씨를 가르치던 한 교수는 “친구들과 야구장에 갔다가 줍게 됐다며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대학이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56호 홈런이 곧 나올 것 같다며 빨리 팔아야겠다고 했는데 유찰된 이후 소식은 듣지 못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구단에 자발적 기증
홈런볼을 선뜻 구단에 기증한 팬도 많았다. 이대호의 7경기째 홈런볼을 기증한 관중은 롯데 전지훈련지인 사이판 여행권을 받았고, 8경기째 홈런볼을 기증한 팬은 에어컨을 선물로 받았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사직구장 첫 장외홈런 역시 이대호가 쏘아 올렸는데 이 공을 주운 행인이 구단에 기증했다. 소정의 선물과 함께 해당 팬과 이대호 선수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고 전했다. 박경완의 300홈런볼 역시 공을 주운 팬이 자발적으로 기증했고, 현재 SK 구단에서 보관하고 있다.
2009년 한화 연경흠이 사직구장에서 기록한 프로야구 통산 2만호 홈런볼은 행방이 묘연하다. KBO 관계자는 “처음에 공을 잡으려 한 사람이 잡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어느 커플이 최종적으로 공을 주웠다. 결국 분쟁이 생겨 경찰서에까지 다녀왔던 걸로 안다. 세 명이 합의 하에 수익금을 나눠 갖기로 했지만 인증절차를 거치지 않아 경매에 올리지 못했다고 들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