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아마 대항전 7번째 경기에서 아마 팀 조병탁 7단(왼쪽)이 프로 팀 서능욱 9단을 선에 덤 5집 받는 치수로 이겼다. |
지난 7월 21일 이민진 5단과 김희수 7단의 대국으로 막을 올려 8월 26일 현재 제7국까지 마쳐 놓고 있는 대항전의 전황은 표과 같다.
양측 선수들은 선발전 같은 것을 거친 것이 아니라, ‘동양생명’에서 초청한 것이고, 대국 순서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결의 무대는 어쨌든 치수고치기라는 살벌한 마당이다. 대국장소가 전국 각지인 것이 이채롭다. 아마 팀 대표선수들이 현재 살고 있거나 연고가 있는 도시들이다. 모두들 그 지역 아마바둑계의 간판이자 터줏대감이다. 스카이바둑 스튜디오는 서울 합정동. 대국은 스카이바둑이 방영한다.
양측의 낯익은 얼굴들이 반갑다. 프로 팀의 주축은 왕년의 도전5강이다. 장수영 백성호 김수장 강훈 서능욱, 예전에는 타이틀 홀더 우선, 입단 순으로 거명을 했지만, 여기선 나이 순인데, 1980년대 조훈현-서봉수의 전횡에 끈질기게 저항하면서 무채색이 될 뻔한 우리 프로 바둑에 색깔을 입혀 주었던 역전의 용사들이다. 끝내 조-서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한국 바둑의 도약과 중흥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 그게 벌써 30년 전. 20대 홍안에서 중견을 넘어 이제는 원로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때도 양 팀은 각 10명이었는데, <월간 바둑>이 애독자-바둑팬의 인기투표를 통해 선정한 프로 10명과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한 ‘아마10걸전’의 1~10위 입상자가 각 순위끼리 맞붙는 치수고치기였다. 당시는 조훈현 9단의 천하였으나 조 9단이 인기투표에서도 언제나 1등을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득의의 유격전법으로 종종 조 9단의 주요 타이틀을 한두 개씩 빼앗고, 조 9단 철옹성의 일각을 허물곤 했던 서봉수 9단이 인기 1등에 오른 적도 많았다.
이번에 출전한 아마 대표들 중에서 임동균 김철중 강영일 선수 등은 30년 전 프로-아마대항전의 멤버다. 아마 강자들 사이에서 맏형 노릇을 하고 임동균 선수는 요즘 바둑TV의 진행자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인사. 김철중 선수는 부산 바둑계 중심인물의 한 사람. 강영일 선수는 분당 지킴이. 한국기원 분당지원장이다. 아마추어 시니어만 참가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독특한 기전, 우승상금 500만 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분당기우장배’가 그곳에서 만들어졌다. 프로와 아마가 함께 늙어가면서 모처럼 다시 만나 옛 추억과 영화를 반추하는 것. ‘그때는 우리도 한가락 했지?’
이번 프로-아마대항전은 이를테면 바둑의 7080이다. 과연 결과는? 7080의 중년 팬들이 빛바랜 사진첩 속의 호기심을 끄집어내고 있다.
개막전부터 전반부까지는 프로가 3승1무승부로 기세를 올렸다. 아마는 흑을 들고, 거꾸로 백에게 덤을 5집 받는 치수로 밀리고 거기서 다시 2점으로 올라갔을 뿐 아니라 2점에다가 또 덤 5집을 받기에 이르러 급기야 3점 위기에까지 몰렸다. 아마 정상들로선 3점은 치욕의 치수. 대회가 좀 이상해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었는데, 아마 팀의 다섯 번째 주자, 대전의 간판이며 고양시 바둑선수단원인 김동근 선수가 2점에 덤을 5집 받는 조건에서 싸워 마지노선을 지켰고, 뒤이어 박강수 선수가 2점으로 김수장 9단을 물리쳐 반격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7번 타자는 조병탁 선수. 80년대 대학바둑의 다관왕이자 아마 정상으로 맹위를 떨쳤는데, 졸업하고 얼마 후부터 갑자기, 꽤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다시 돌연 등장해 서능욱 9단에게 선에 덤 5집 받는 치수로 이겼다. 정선 → 선 덤 5집 → 2점 → 2점 → 2점 덤 5집 → 2점 → 선 덤 5집의 흐름에서 이제 아마가 출발점이었던 정선을 회복한 것.
세 판이 남았다. 바둑팬들은 월드컵 16강 진출 경우의 수를 따지듯 세 판의 승부 여하에 따른 최종 결론의 경우를 흥미진진하게 상정하고 있다. 서봉수 - 임동균의 정선 대국은 일단 서 9단 유리. 그러면 강훈-심우섭은 다시 선에 덤 5집. 거기가 분수령이다. 강 9단이 이기면 또 2점. 그건 재미없다. 반면에 심우섭 선수가 이기면 최종국 장수영-조민수는 도로 선. 그게 하이라이트. 장 9단이 이기면 선 덤 5집으로 낙착. 그건 밋밋하다. 조민수 선수가 이기면? 프로-아마 대항전은 ‘호선!’이 되는 것. 흑이 6집반이 아니라 3집의 덤을 내는 변형 호선이긴 하지만 말이다. 과연 드라마의 결론은 2점이냐, 선에 덤 5집이냐, 호선이냐.
젊은이들의 승부만 값진 게 아니다. 7080 추억의 재회도 충분히 재미있는 거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맹렬한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가고 있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