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구 프로구단 사상 첫 여성 감독인 GS칼텍스 조혜정 감독이 지난 8월 30일 GS칼텍스와 한국도로공사의 경기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은퇴 후 3년 만에 최연소 지도자로 우뚝 선 김상우 감독. 올해 2월, 박기원 감독의 사임으로 시즌 중 감독대행 자리에 올랐던 그는 2개월 만에 ‘대행’ 꼬리표를 떼고 LIG손해보험의 지휘봉을 잡았다. 나이 어린 감독을 향한 냉소적인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구단은 수많은 감독 후보들 중 김 감독을 자신 있게 선택했다.
감독이 되자마자 김 감독은 구단에 선수단 워크숍을 제안했다. LIG손해보험은 최근 2년간 전지훈련 한 번 가지질 못했다. 축 처져 있는 팀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고. 워크숍에선 술 먹는 문화부터 바꿨다. “선배한테 술 한 잔 따라드리고 ‘잘 먹겠습니다’하는 게 통상의 분위기인데, 고참 옆에 후배들 앉혀놓고 자기들끼리 구석에 앉아 따로 마시더라. ‘함께 어우러져라. 술도 전투적으로 마셔라’라고 주문했다.”
여름 전지훈련에선 혹독한 훈련을 통해 팀 단합을 다졌다. 밝아진 팀 분위기에 구단주도 팔을 걷어붙였다. 20년 된 낙후된 체육관 바닥을 갈아엎고 새 코트를 깔았다. 웨이트트레이닝 장비도 2억여 원을 들여 새로 장만했다. 10년 가까이 탔던 버스도 바꿨다. 덩달아 선수들도 코트 위에서 신바람 나는 배구를 선보이고 있다.
김 감독은 감독이 되기까지 값진 3년을 보냈다. LIG손해보험 코치 시절엔 짬을 내 대학원 과정을 마쳤고, KBS N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코트 전체를 읽는 거시적인 안목도 키웠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성균관대 무역대학원에서 수료만 하고 한신대로 편입해 1년을 다녔다. 그러나 9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실패해 군대에 가느라 교육대학원의 꿈을 접어야 했다. 김 감독은 “코치 시절, 박기원 감독님의 배려 덕분에 다시 시도할 용기가 생겼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LIG손해보험 사령탑이 된 지금,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지금 위치에서 최고가 되지 않으면 다음 길은 열리지 않는다. 코트 위에 내 모든 걸 쏟아 부어라.” 김 감독의 올 시즌 목표는 플레이오프 진출이다.
▲ 김상우 LIG 손해보험 감독(왼쪽)과 박희상 우리캐피탈 감독. |
힘든 시기에 팀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지만 박 감독은 선수들 속에서 희망을 본다. “우리 팀엔 장래성 있는 선수들이 많다. 아직 어려 경험은 부족하지만 잘 다듬으면 자신의 잠재력을 맘껏 발휘할 것이다.”
박 감독은 선수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시한다. 코트 위에선 호랑이 감독이지만 틈날 때마다 선수들의 상담사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요즘엔 독해지란 주문을 많이 한다고. “선수가 코트에 들어서면 ‘나쁜 놈’ 소릴 들을 정도로 독해져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그런 게 부족하다.” 박 감독은 1993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뛰어난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많은 ‘오빠 부대’를 양산하기도 했다. 배구에 대한 욕심도 남다르다. 때문에 주변에서 ‘눈높이를 낮춰라. 선수들이 버거워한다’며 조언을 한다고. 올 시즌 선수들에게 바라는 건 ‘열정’이다. 마지막 1초까지 후회 없는 경기를 하길 원한다고.
‘나는 작은 새’, 조혜정 감독이 여성 최초로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행여 누가되진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에 결정을 앞두고 일주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조 감독은 지난 4월 감독에 선임되자마자 2가지 큰 변화를 시도했다. 먼저 구단 측에 선수 전원의 대학 입학을 요청했다. GS칼텍스 배구단 정종수 사장은 ‘내 딸이라면 대학에 안 보내겠느냐’며 흔쾌히 승낙했고, 이 소식을 들은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덕분에 선수 모두가 이번 달부터 대학생이 된다.
조 감독은 이어 선수들에게 ‘다이어트 금지령’을 내렸다. “체중 조절하려고 선수들이 먹질 않더라. ‘맘껏 먹어라. 대신 연습을 통해 체중조절시키겠다”며 엄포를 놨다. 조 감독은 얼마 전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대수술을 받았다. 선수들과 단합을 위해 축구를 하다 다치고 만 것. 덕분에 병원에서 비디오 분석을 하는 등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단다.
이탈리아에서 코치 겸 선수로 활약하던 당시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이탈리아 어린이 배구 시합에 갔는데,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을 벤치에 앉혀놓고 경기를 하더라. 성적 압박 속에 경기하는 우리와 달리 정말 즐겁게 배구를 했다.” 한국에 돌아온 조 감독은 어린이배구교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국가로부터 지원도 받았다. 조 감독은 “눈에 띄는 아이가 있으면 엄마 키, 아빠 키 물어보며 ‘나만의 체크리스트’에 올린다”며 재치 있게 덧붙인다.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엄마’로서의 역할이었다. 조 감독의 두 딸은 프로골퍼다. 23세에 선수 생활을 접은 한이 있어서인지 자식들만큼은 비교적 선수 수명이 긴 골프를 시키고 싶었다고. 조 감독은 “선수 때가 가장 행복한 법이다. 지금도 난 코트 위에 설 때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며 두 눈을 반짝인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하자 조 감독은 활짝 웃으며 재미난 답변을 내놓는다. “남자 경기 끝났다고 우르르 몰려나가지 마세요. 화나면 비키니 입고 경기할 겁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