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신 스님은 불교계 바둑의 최고수일 뿐만 아니라 앨범도 여러 장 낸 싱어송라이터다. |
의학박사 권준수 교수의 논문 발표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번에는 스님 한 분이 ‘바둑을 잘 두기 위한’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해서 화제다. 충남 서산의 서광사(瑞光寺) 주지 도신(道信) 스님이다.
지난해 충남도청으로부터 이른바 ‘템플스테이’ 지정 사찰로 선정되었고, 1년여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다가, 바둑을 좋아하고 바둑계에 지인이 많은 도신 스님이 기어이(?) 바둑과 참선을 접목한 것.
프로그램 명칭은 ‘각수삼매(覺手三昧)-명상 바둑여행’이다. 각수-수를 깨닫는 것, 깨달음을 통해 얻어지는 한 수. 명상 바둑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도신 스님이 서광사가 지정사찰로 선정되기 훨씬 전부터 구상하던 것인데 실험해 보고, 갈고 다듬는 데 몇 년이 걸렸다.
프로그램은 1박2일, 2박3일, 3박4일, 4박5일, 5박6일, 다섯 종류가 있다. 형편에 따라 일정을 선택해 며칠 동안 사찰에 머물며 참선명상, 요가행법, 기공체조 등을 수련하는 한편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정석 포석 사활 등 바둑의 실전 부문을 공부한다.
-어떤 동기에서 시작했는지.
▲바둑계 분들이나 프로기사 분들과는 교우의 범위가 넓고 연조도 제법 됩니다. 김인, 조훈현 국수님을 비롯해 고재희 유건재 양상국 사범님 같은 원로 분들, 지금 한국기원 사무총장 하시는 한상열 사범님, 기사회장 하시는 최규병 사범님, 호쾌한 전투 바둑으로 아마추어 팬들을 늘 즐겁게 해 주시는 김동엽, 정대상, 김성룡 사범님, 그리고 은퇴하신 김좌기 김희중 사범님 등 일일이 꼽자면 한이 없습니다. 특히 돌아가신 전영선 사범님과는 아주 각별하게 지냈습니다. 위의 사범님들도 다 전 사범님을 통해서 알게 된 분들이지요. 전 사범님이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제가 건강을 돌봐 드리느라 한 10년 같이 지냈습니다. 추억이 많지요. 전 사범님이 생전에, 제게 불교의 참선이나 명상 수련법을 잘 응용해서 프로기사나 연구생들에게 가르쳐 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건 아무래도 스님 몫인 것 같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전 사범님이 2002년 2월에 돌아가셨으니 이제 10년이 다 돼가는데, 그동안 전 사범님 말씀이 늘 마음에 빚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전 사범님 기보집을 내려고 했어요. 그것도 지금 준비 중입니다만, 생각해 보니 그것보다도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자꾸 떠오르더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우선 정신건강을 위해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듣고 좌선하는 것)과 위빠사나 선(무아의 깨달음, 통찰, 직관)을 응용해 집중력 향상의 길을 잡아 줄 것이며 육체 건강을 위해서는 요가행법과 단전호흡, 기체조수련을 합니다.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면에서 불교의 참선수행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둑은 생각 읽기 게임입니다. 자신과 상대의 생각을 정확히 읽어내지 못하면 대처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처능력을 어떻게 배양하느냐 하는 데에서부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는데, 이 일련의 과정이 선 수행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각수삼매, 이름이 멋집니다.
▲삼매란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집중력의 절정이지요. 집중의 절정에서는 나도 없고 상대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렵군요. 그런데 정말 효과가 있나요.
▲있습니다. 명상 수련을 하고 나면 승률이 확실히 좋아지더군요. 저부터도 그렇고 주변 바둑 두는 분들도 한번 시켜 보면 전부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한번 해 보세요…^^
도신 스님의 기력은 불교계 바둑 최고수로 알려져 있다. 타이젬 6~7단이니 짱짱하다. 바둑 말고 다른 재주도 많다. 그림 그리고 기타 치며 작곡하고, 보컬 그룹과 콘서트를 열고 직접 노래도 부른다. 앨범도 여러 번 냈다. 10년 전쯤에는 ‘바둑 노래’도 선보였다. 그래서 별명이 ‘노래하는 스님’이다. 도신 스님 방에는 도신 스님이 사사한, ‘걸레 스님’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중광 스님이 도신 스님에게 그려 준, ‘도신이가 노래한대요’라는 그림이 걸려 있다. 도신 스님이 이번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읊어 준 시 한 편을 들어본다.
‘ … 인연이 있는 분들은 멀리 있어도 얻어갈 것이고/인연이 없는 분들은 가까이 있어도 얻어가지 못할 것이다/얻어 가느냐, 못 얻어 가느냐는 오로지 각자의 몫이다/다만 한 가지 희망은/우리들이 찾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진정한 자신을 만날 때까지/자신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기까지/검은 돌은 까마귀 되어 하늘로 솟고/흰 돌은 백로 되어 바다로 거꾸러진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