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시즌 예상 성적을 묻자 허재 감독은 “우리 팀만 빼고 다 우승할 것 같다”며 엄살을 부렸다.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흔히 시즌 앞두고 10개 팀의 순위를 예상해보곤 한다. 가장 흔한 질문이 어디가 우승팀일지, 어느 팀들이 6강플레이오프에 들 것인지를 묻는 내용인데,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하다.
▲이건 엄살이 아니라 어느 해보다 변수가 많을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저 팀은 우승할 거야 라고 생각하면 거의 들어맞았다. 지금은 어느 팀이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전력 평준화가 이뤄졌다. 지난해 하위팀 전자랜드가 문태종 선수를 보강하고 SK가 FA 김효범 선수를 영입하면서 업그레이드된 전력을 갖췄다. 우리 팀만 빼놓고 모두 탄탄한 실력을 갖춘 것 같고, 모두 우승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너무 엄살이 심하다(웃음). KCC는 해마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인데.
▲주위에서 괜히 바람 잡는 거다. 자기 팀이 더 좋아졌다는 걸 알면서 만만한 KCC를 걸고 넘어지는 것이다. 선수 때는 우승하는 게 쉬워 보였는데 감독을 하다 보니 우승이 너무 어렵고 힘들더라. 정말 하늘에서 별을 따는 심정이다. (우승)욕심은 나고 팀은 2% 부족하고…, 한 해도 쉬운 시즌이 없었다.
―감독되고 첫 해에는 정말 정신없었을 것 같다. 평지풍파가 많았음에도 잘 버텨왔다는 시각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감독 부임 후 첫 시즌에는 이상민 추승균이 실제 감독이나 마찬가지였다. 워낙 노련한 선수들이다보니까 내가 부족한 면을 채워줬다. 두 번째 시즌에는 계속 지다보니 정신없이 흘러갔고 세 번째는 바둥바둥대다가 준우승까지 올라갔다. 하승진을 뽑아서 서장훈과 뭔가를 좀 해보려 했더니 자꾸 삐거덕거려 결국 장훈이를 전자랜드로 보낸 후 우승을 일궜다. 지난 시즌에는 1, 2위를 다투는 상황에서 하승진이 다치는 바람에 선수들이 우왕좌왕했는데 결국 준우승으로 끝났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상민과 서장훈을 내보내는 과정에서 말들이 많았다. 특히 이상민은 KCC의 간판 스타였기 때문에 더더욱 후폭풍이 거셌다. 당시 그 일들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 같다.
▲이상민과 서장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이상민은 말 못할 사정이 있었고 장훈이는 서로 합의 하에 전자랜드로 간 것이다. 하승진과 서장훈 모두 경기 출전 시간에 대해 욕심을 내고 있고, 두 선수가 원하는 만큼 출전시키긴 어렵고, 결국 장훈이가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이다. 많이 뛸 수 있는 팀으로 옮기고 싶다고. 상민이를 삼성으로 트레이드시킬 때 팬들의 비난도 질타도 많이 받았다. 당시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덤덤하게 마무리 지으려 노력했다.
―감독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다. 성적이 안 좋거나, 선수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플레이를 할 때, 직접 코트로 들어가 뛰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나.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받은 것 같다(웃음).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선수들이 못하면 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감독의 몫이 아닌가. 50밖에 안 되는 선수를 80으로 끌어올리려다보면 화도 내고 욕도 하지만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다. 감독되기 전부터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얘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한테 아들이 있다면 명문대 출신 선생에게 맡기겠느냐 아니면 지방대 출신 선생에게 맡기겠느냐고. 유명한 농구 선수 출신이라고 해서 좋은 지도자가 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오히려 더 욕도 많이 얻어 먹고 더 많은 비난도 받고 더 심하게 질타도 받는다. 유명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 리터칭=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충분히 그런 상상을 할 수는 있지만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 누구보다 내가 그걸 허용 못한다. 아니 성적을 못 내는데 구단주와 선후배 관계라고 해서 그 자리에 눌러 앉아 있다는 게 말이 되나. 내가 롱런을 하든 잘리든 신경을 안 썼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은근히 비열하다. 겉으론 안 그런 척하면서 속으로 간 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그만두고 싶은 적이 있었나.
▲생각은 해봤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거 아닌가(웃음). 어떤 선배가 이런 얘길 해주셨다. 감독이 그만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나가더라도 팀을 만들고 가란 내용이었다. 아마추어 같은 경우엔 돈 많이 주고 선수를 스카우트할 수 있지만 프로는 ‘뺑뺑이’라 맘에 드는 선수를 뽑기가 어렵다. 있는 반찬 가지고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야 한다. 신이 아닌 이상 어느 누가 감독을 맡는다고 해도 1~2년 안에 팀을 정상에 올려놓기란 어려운 법이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이라 스타플레이어들을 다루는 노하우가 있을 법도 한데 실제로 어떤가.
▲예를 들면 (하)승진이가 개성이 있고 특이한 부분이 많다. 승진이가 화 나 있을 때 내가 그 자리에서 야단을 치면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화가 나도 당장 뭐라고 하지 않고 다음날 따로 불러서 말한다. 그럼 무릎 꿇고 빌 정도로 멀쩡하게 인정한다. 굉장히 소심한 성격의 선수가 있다면 야단보다는 농담도 걸고 관심을 표하는 등 따뜻하게 안아주면 훈련하는 자세부터 달라진다. 내가 아무리 욕을 해도 ‘넌 욕해라 난 내 스타일대로 가련다’하는 선수들도 있다. 12명 선수들의 성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들 성격에 맞는 지도법이 필요하다.
―흔히들 ‘요즘 애들’이라고 하는데 허재 감독도 ‘요즘 애들’에 대해 실감한 적이 있나.
▲아직 우리 팀에선 그런 걸 느끼지 못했다. 얼마 전 17세 이하 여자축구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우승 후 최덕주 감독님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걸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여자 선수들이 감독님이 옆에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개성이 넘치는 선수들이었고, 또 그런 선수들을 아우르는 최 감독님의 리더십이 존경스러웠다. 난 아직 그 정도는 안 되는 것 같다.
―시즌 들어가면 감독들의 머리 싸움도 볼만하다. 어느 감독과 상대할 때 가장 머리가 아픈가.
▲난 아직 멀었다. 10년은 지나야 철이 들 것 같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술 먹는 건 내가 제일인데 농구 수는 제일 부족하다. 감독들끼리 저녁부터 다음날 12시까지 술 마시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내가 이길 자신이 있는데…(웃음). 그래서 술 안 마시는 (전)창진이 형이 제일 두렵다. 하하.
―이전에 삼성 선동열 감독과 선수 시절, 술로 ‘맞장’을 떴다는 소문이 있다. 사실인가.
▲동열이 형도 잘 마셨고 나도 잘 마셨다. 서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보니 그 자리가 꽤 오래 간 것으로 기억난다. 이상하게 술자리에서도 붙으면 끝장을 보고 싶어진다. 한마디로 미련한 성격이다. 농구가 아닌 다른 종목 선수들과 술을 마시면 마치 그 종목 대표 선수 자격으로 술을 마시는 것 같아 지는 게 싫었다.
―선수 때의 경험상 지금 소속팀에서 술을 마시는 선수들이 있다면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론 어떤지 궁금하다.
▲난 아무리 술을 세게 마셨다고 해도 다음날 훈련이나 경기에 지장을 준 적이 없다. (강)동희가 나랑 일대일로 붙어 술을 마시고 다음날 똑같이 경기에 나갔는데 난 펄펄 날고 동희는 기절 직전인 적도 있었다. 지금 선수들한테 술에 대해선 일절 말을 하지 않는다. 프로라면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선수들 얼굴 보면 다 나와 있다. 술을 마신 사람, 안 마신 사람, 늦게까지 마신 사람, 일찍 털고 일어난 사람…. 술에 관한 한 내가 귀신 아닌가(웃음).
―얼마 전 큰아들 허웅(용산고 2)이 18세 이하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것을 두고 특혜 논란이 불거지며 시끄러웠었다.
▲정말 힘들었다. 그 기사를 쓴 기자한테 심하게 항의도 했다. 나중에 사과를 받았지만,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농구를 열심히 해보려는 선수한테 아버지 후광 때문에 대표팀에 뽑혔다는 질타를 받게 했다.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 권한이다. 내가 그 감독한테 우리 아들 뽑아달라고 한 적도 없고, 아들을 위해 로비를 벌인 적도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난 허재가 아니다. 누구보다 아들이 상처를 크게 받았다. 나를 욕하고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건 참을 수 있는데 아무 죄 없는 아들이 나로 인해 곤경에 처한 것 같아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허재 감독도 아들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아버지였다. 큰아들이 아버지 이름 덕에 대표팀에 뽑혔다는 오해를 받는 상황에서 그는 감독이 아닌 아버지로서 언론에 정면 대응했다. 아들이 상처받고 위축되는 게 싫었고, 사실이 아닌 게 사실처럼 기사화되는 부분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KCC 숙소 부근의 한 닭볶음탕 집으로 자리를 옮겨 오랜만에 허 감독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감히’ 허 감독과 대작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면서 계속 잔을 비우게 됐다. 오랜만에 MP3 녹음기의 존재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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