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창용(왼쪽)과 이승엽. |
# 연봉 6억 엔의 4번타자
이승엽은 2006년 지바롯데 마린스에서 요미우리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개막전부터 4번 타자로 출전했다. “요미우리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할 것”이란 우려에도 이승엽은 영양가 만점의 홈런들을 쏘아 올리며 붙박이 4번 타자가 됐다. 공교롭게 당시 이승엽은 요미우리 구단 사상 70대째 4번 타자라, 큰 화제가 됐다.
구단의 대우도 달라졌다. 메이저리그 진출설이 나돌자 요미우리는 이승엽에게 서둘러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총액 30억 엔(당시 약 240억 원)의 돈다발을 안겼다. 그러나 이승엽은 아쉽게도 4년 계약의 첫해였던 2007년에만 타율 2할7푼4리, 30홈런, 74타점을 기록했을 뿐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올 시즌 주로 2군에 머물며 재기를 노렸지만 결국 부활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일본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요미우리는 기존 선수들과 재계약하고,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려 분주히 뛰고 있다. 그러나 이승엽의 이름은 없다. <일요신문>이 접촉한 요미우리 관계자는 “이승엽은 재계약 대상자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현재 이승엽을 영입하겠다는 일본 구단은 아직 없다. 시즌 중반만 해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야쿠르트 스왈로스, 한신 타이거스 등이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나 요미우리와 함께 최고 인기구단인 한신이 적극적이었다.
당시 한신은 이승엽을 영입해 기존 외국인 타자 크레이그 브라젤의 1루 백업요원이나 포지션 경쟁자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 브라젤이 타율 2할9푼6리, 47홈런, 117타점을 기록하며 ‘이승엽 카드’는 더는 부상하지 못했다. 여기다 이승엽이 1군에 승격하고도 계속 부진하자 한신은 아예 관심을 접었다.
이승엽은 시즌 종료 뒤 “내년에도 일본에서 뛰고 싶다. 12개 구단 어디든 괜찮다.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 일본에서 몇 년 더 뛰며 훌륭한 성적을 남겨 내 존재를 어필하고 싶다”고 밝혔다.
만약 일본 잔류가 어렵다면 다음 카드는 국내 복귀다. 그러나 이 역시 만만치가 않다. 친정팀 삼성의 선동열 감독은 일찌감치 “이승엽이 돌아와도 우리 팀엔 자리가 없을 것”이라며 그의 국내 복귀를 원치 않는 듯한 발언을 했다.
마지막 카드는 국내 다른 구단 입단. 그러나 삼성이 이승엽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어 이조차 가능성이 낮다. 설령 삼성이 이승엽에 대한 권리를 다른 구단에 양도해도 그를 영입하려면 그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받았던 연봉의 최대 450%를 삼성에 보상금으로 줘야 한다. 2003년 이승엽의 연봉은 6억 3000만 원, 보상금만 최대 28억 3500만 원이다.
# 외국인 최저 연봉자
2007년 말 임창용은 쫓기듯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해 5승7패 3홀드 평균자책 4.90을 기록한 임창용은 ‘한물간 투수’로 통했다. 2005년 이후 그의 평균자책은 줄곧 4.50 이상이었다. 간통사건과 계약 번복 파동 등으로 이미지 역시 실추된 지 오래였다.
야구계의 무관심 속에 임창용은 그해 3년간 최대 500만 달러(45억 원)를 받는 조건에 야쿠르트에 입단했다. 그러나 말이 500만 달러지, 기본계약 2년과 옵션 1년 등 총 3년 계약에 2008년 연봉 30만 달러,2009년 50만 달러, 2010년째는 2년간 성적 여하에 따라 계약 여부가 결정되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다.
특히나 30만 달러는 외국인 선수 최저 연봉으로 야쿠르트가 임창용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임창용의 활약은 놀라웠다. 2008년 일본 진출 첫해에 33세이브를 올리며 단번에 야쿠르트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더니 2009년엔 28세이브를 기록하며 ‘1년 차 징크스’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올 시즌엔 35세이브를 올리며 리그 정상급 마무리투수로 발돋움했다. 야쿠르트와의 3년 계약이 끝난 임창용을 향해 일본 구단들이 백지수표를 내미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임창용의 에이전트 박유현 씨는 “소속팀 야쿠르트를 비롯해 요미우리, 한신 등 여러 구단이 임창용을 원하고 있다”며 “그러나 아직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라고 밝혔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모 에이전트는 임창용이 야쿠르트 잔류를 주저하는 이유를 “요미우리, 한신의 오퍼를 기다리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이 에이전트는 “일본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며 대대적인 전력 보강에 나선 요미우리는 기존 마무리 마크 크룬 대신 새로운 마무리 투수를 찾고 있다. 이승엽이 퇴단하며 6억 엔이 남는 통에 팀 재정도 여유롭다. 한신 역시 걸출한 마무리 후지카와 규지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면서 당장 마무리를 구해야 할 형편이다. 후지카와의 연봉이 4억 엔임을 고려하면 한신도 여윳돈이 남는다. 임창용이 굳이 야쿠르트와 서둘러 계약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메이저리그 구단도 임창용 영입전에 뛰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10월 중순 미 메이저리그 모 구단 스카우트는 임창용 측과 접촉해 계약 조건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 임창용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전트와 함께 미국으로 갔다. 겉으론 “1주일간 메이저리그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고 했지만, 속으론 “메이저리그행을 타진하기 위해서 갔다”는 게 정설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