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의 손흥민이 지난 30일 FC쾰른과의 원정 경기에서 역전골을 터트린 뒤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에서야나 나올 법한, 그야말로 환상적인 골이었다. 손흥민은 지난달 30일 쾰른전에서 골키퍼의 키를 넘긴 공을 그대로 골문을 향해 밀어 넣는 그림 같은 골을 완성했다.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손흥민’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기가 막힌 왼발 슛이었다.
쾰른전 그림 같은 왼발슛
독일에 머물고 있는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부상으로 3개월 쉬게 되면서 나도 흥민이도 초조했던 게 사실이다. 정규시즌 골이 빨리 나와 주길 바랐는데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다. 흥민이의 몸 상태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손 씨는 ‘이제 시작이다’란 말로 아들에게 혹시 생겨날지 모를 자만을 경계했다. 새벽 늦게까지 채팅에 빠져 휴식 시간을 뺏길까 염려된 손 씨는 아들의 노트북을 압수하기도 했다. “덕분에 나도 흥민이도 데뷔골에 대한 한국의 반응이 어떤지 잘 모르고 있다.”
손흥민 돌풍의 비밀엔 부친 손 씨의 열의와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손 씨는 현재 아들의 숙소에서 2~3분 거리에 위치한 호텔에 머물며 손흥민의 개인 훈련과 컨디션 유지를 돕고 있다. 팀 훈련이 끝나면 함께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운동장에 나가 슈팅 훈련을 한다. “아직 시즌 중이기 때문에 체중을 이용한 근력 운동과 줄넘기를 중점적으로 시키고 있다. 정신적으로 흐트러지는 게 보이면 호되게 꾸중한다.”
손 씨는 아들이 팀 훈련을 할 시간엔 함부르크 1군 훈련 프로그램을 보면서 보완할 부분을 찾는다. 그의 열성적인 뒷바라지에 함부르크 구단 관계자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 구단 관계자와 독일 매스컴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먼저 인사를 걸어올 정도다. 개인 몸 관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난 25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왔다고. 아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 본인 몸을 이용한 체력 훈련 연구를 병행하게 됐단다.
손 씨의 혹독한 개인 레슨은 손흥민이 축구공을 처음 접한 때부터 시작됐다. 손 씨는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불의의 사고로 24세란 젊은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그는 현대(현 울산)와 일화(현 성남) 유니폼을 입고 K리그 통산 37경기서 7골을 터뜨렸고, 대표팀에 입성해 태극마크도 달았다. 손 씨는 “나는 테크닉이 굉장히 부족한 선수였다. 내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아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손 씨는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을 돌며 유소년 프로그램을 공부했다. 떠오르는 전술이 있으면 끊임없이 메모하며 프로그램을 짰다. 이렇게 쌓인 손때 묻은 메모장은 그의 보물 1호다. 연구가 끝나자 철저한 기본기 레슨이 시작됐다. 볼 컨트롤, 드리블, 패스, 헤딩, 슈팅 순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한 단계를 완벽히 익히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절대 넘어가지 않았단다. “기본기가 완성될 때까지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다. 기본기가 탄탄하면 실전 경기서 충분히 통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 씨의 예상은 적중했고, 손흥민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독일 무대에서 펄펄 날아다녔다.
▲ 손흥민은 함부르크와 4년 재계약을 맺었다. 사진캡처=함부르크 홈페이지 |
사실 손흥민의 독일 진출은 손 씨의 애잔한 추억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는 월요일 밤 10시만 되면 TV가 있는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분데리스가 중계를 보기 위해서였다. 경기를 보고 나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고. 그렇게 독일 진출을 꿈꾸던 손 씨는 마침내 아들을 통해 한을 풀었다. “함부르크에 오기 전부터 독일어 공부를 철저히 시켰다. 덕분에 흥민이는 일찍부터 언어, 문화 차이를 극복했다. 사실 흥민이에게 은퇴할 때까지 독일에서 뛰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흥민이는 독일뿐 아니라 영국, 스페인 등 다양한 리그 무대를 경험하고 싶어하더라. 흥민이는 아직 어리다. 때문에 함부르크 구단에선 5년 재계약을 원했지만 2014년까지만 계약을 연장했다.”
손흥민 역시 부단한 노력으로 더 높은 곳을 향한 날갯짓을 계속하고 있다.
함부르크를 넘어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손흥민 돌풍’. 이는 손웅정-손흥민 부자의 축구를 향한 열정과 노력이 빚어낸 최고의 작품이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손웅정의 아이들’ 눈독
손흥민이 속한 함부르크 구단이 손웅정 감독이 지도하는 춘천호반 FC 선수들을 눈독들이고 있다. 손 감독은 아들을 가르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춘천에서 총 9명의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고 있다.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 훈련에서 아이들은 공을 몸에서 떨어뜨려선 안 된다. ‘공과 함께 호흡하라’는 게 바로 손 감독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기본기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다. 팀 인원이 11명에 못 미쳐 5인 축구 대회에 자주 나간다고.
얼마 전엔 영국, 스페인 티켓이 걸린 5인조 축구대회에서 우승해 손 감독이 독일에 들어와 있는 동안 아이들이 영국 여행을 하고 돌아갔다. 손 감독은 3주 전 함부르크 구단 스카우트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구단 관계자들은 손 감독이 짠 프로그램과 그가 지도하는 아이들의 실력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구단에서 지도자 생활을 계속하면서 내가 지도하는 아이들을 계속 함부르크에 보내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하더라. 또한 방학 땐 아이들을 함부르크 유소년 팀에서 훈련받게 해주겠단 확답도 받았다.”
뿐만 아니다. 그가 지도하고 있는 중1, 중3 학생 두 명은 이미 함부르크 유소년 관계자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두 선수는 함부르크 유소년 팀에 거의 발탁된 상태다. 내년 2월에 한 번 더 테스트를 받은 뒤 정식으로 계약을 하게 된다. 고1 학생 1명도 현재 테스트를 받기 위해 함부르크에 들어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