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먼저 대만전에 선발투수로 나온 린이하오 선수를 상대로 제가 홈런 2방을 터트린 데 대해 칭찬을 많이 해주시던데, 신기한 건 대만전을 앞두고 어느 투수보다 린이하오 선수의 경기를 가장 많이 반복해서 봤다는 사실입니다. 한국팀 전력분석원께서 선수들에게 대만 선수들의 경기가 담긴 CD를 나눠줬어요. 경기 앞두고 시간 날 때마다 그 CD를 자주 보게 됐는데요, CD에 들어가 있는 선수들 중 제일 먼저 나오는 선수가 린이하오 선수였어요. 제가 선택해서 다른 선수를 볼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전 린이하오 선수의 경기를 계속 지켜봤던 거죠. 모두의 예상을 깨고 린이하오 선수가 선발로 나온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전 은근히 자신감이 있었고 타석에 들어섰을 때 눈에 익숙한 투수가 익숙한 구질의 공을 던지는 걸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대만전에서 윤석민 선수가 라인업에 포함되지 않아 공 한 개 던져보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간 ‘사건’도 있었어요. 저 또한 외야수에 서 있다가 교체돼 나온 석민이가 그냥 들어가는 걸 보고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었죠. 그 이닝이 끝난 후에 더그아웃에 들어가서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는데요,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엄청난 실수였습니다. 그나마 경기를 이겨서 다행이지, 만약 그 이닝 이후 마운드가 흔들렸다면 한국팀에 큰 타격이 됐을 것이고, 석민이 문제는 예상보다 더 크게 이슈화됐을지도 몰라요. 한순간의 해프닝이라고 치부하기엔 엄청난 실수였지만 그래도 준결승, 결승전이 아닌 예선 첫 경기에서 벌어진 일이라 아주 심한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선수촌 생활이 궁금하시다고요?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선수촌에서는 식사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게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나이 먹도록 지금처럼 잠을 많이 자본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너무 할 일이 없다보니까 식사하고 들어오면 누워서 자는 게 일입니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10시간 이상은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식당 밥이 맛난 건 결코 아닙니다. 미국에서 10년 넘게 생활하다보면 웬만한 동·서양 음식은 잘 참고 먹는 편인데 이곳 음식 중 일부는 삼키기 힘들 정도로 희한한 맛을 냅니다.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워낙 햄버거를 많이 먹어서 메이저리그에 올라간 이후론 햄버거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한마디로 물렸던 거죠. 하지만 여기 와서 그 햄버거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어요. 식당 밥이 어떠했을 거라는 게 상상이 가시죠?
제 룸메이트가 누구인지는 다 아시죠? (봉)중근이 형, 저, 그리고 (류)현진이, (송)은범이랑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요, 현진이랑 은범이가 자꾸 제 빨래를 챙기겠다고 해서 난처할 때가 있어요. 미국에선 선후배의 위계질서가 없잖아요. 어느새 저도 그 문화에 적응해 있다가 너무 착하고 깍듯한 후배들의 도움을 받다보니 익숙지 않은 거죠. 동생들이 직접 빨래하는 건 아니지만 빨래를 챙겨서 맡기고 찾아와서 제대로 개켜 내 침대 맡에 올려놓는 걸 볼 때 정말 고마움이 물밀 듯했습니다. 아마 (정)근우가 제 빨래를 맡겠다고 했으면 얼른 내줬을 텐데 말이죠^^.
이제 홍콩전을 위해 점심 식사하고 경기장을 향해 출발할 예정입니다. 어제 대만전 낙승에 도취하지 말고 새로운 마음으로, 매 경기 최선을 다하자고 선수들한테 부탁하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좋은 팀워크를 다지며 열심히 하다보면 세상의 모든 신들께서 우리한테 뭔가 ‘큰 선물’을 주시지 않을까요?^^
광저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