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서운 겨울이 다가왔지만, 군산새벽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
누구나 새벽을 여는 시간은 다른 법이다. 하지만 여기,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군산 도깨비시장 사람들이다.
겨울이 가까워진 탓에 바람이 참 맵다. 그럴수록 이불에서 빠져나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5분만 더”를 외치다가 늦어서야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는 각자의 생의 공간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그 고충을 알기에 군산 도깨비시장 상인들이 더욱 위대해 보인다.
도깨비시장은 군산시 대명동 군산화물역 앞에서 열린다. 옛날 군산역이었던 곳이다. 1912년 개통된 이 역은 2008년 1월 1일 군산~장항 철도 개통으로 군산역이 이설되었고, 이후 화물역으로 바뀌었으나 그 기능마저도 상실되면서 반 년 뒤 폐역되었다. 현재의 역사는 1960년에 지은 것이다. 비록 역은 과거의 기억으로 사라졌지만, 그 앞 광장만은 여전히 활기 넘친다. 그 이유는 도깨비시장 때문이다.
군산역 이설 후 도깨비시장은 그 규모가 오히려 더 커졌다. 이전에는 광장에서만 열렸는데, 이후에는 그 앞 도로까지도 좌판이 펼쳐졌다.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무척 다양하다. 복잡해 보이는 가운데서도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있다. 생선, 농산물, 공산품을 파는 상인들이 각각의 구역에 자리 잡고 있다. 갓 잡아온 광어며 우럭·도다리·숭어 따위가 어물전에서 펄떡 뛰고, 파동을 지나 ‘몸값’이 뚝 떨어진 배추가 트럭과 손수레에 가득 실려 있다. 김장을 앞두고 배추를 사러 온 사람들로 시장이 붐빈다. 완주 등지에서 올라온 따끈따끈한 곶감이며 순천 대봉시도 요즘 인기다. 벌교 꼬막도 뺄 수 없다. 아주 제철이다. 물건 값을 흥정하느라 이곳저곳에서 왁자지껄. 그 모습만 보더라도 기운이 펄펄 나는 활기 넘치는 풍경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도깨비시장이 군산종합시장 바로 옆에서 열린다는 사실이다. 군산종합시장은 군산항 개항(1899년) 이후 생긴 유서 깊은 상설장터다. 도깨비시장이 언제부터 규모를 갖추고 활성화되기 시작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지금껏 이어오고 있는 데는 종합시장의 ‘아량’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버젓이 옆에서 불법이랄 수 있는 장을 벌임에도 이해해준 까닭이다. 대신 도깨비시장은 새벽에만 장사를 하는 것으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다. 아침 8시가 지나면 도깨비시장은 파한다. 화물역사 정면에는 ‘8시 이후 집중 단속’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8시가 가까워지면 도깨비시장 상인들이나 물건을 사러온 사람들이나 바빠진다. 어서 사고팔아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8시가 되면 군산시에서 단속반원들이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다니며 어서 좌판을 치우라고 불호령이 내린다.
정말 신기하게도 8시가 넘으면 광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주름 자글자글한 손으로 밭에서 따온 채소를 팔던 할머니도, 하루에도 세 곳의 장터를 돌아다닌다는 어물전 아저씨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다. 다만, 도깨비시장 근처 할머니해장국집만 ‘바글바글’이다. 2500원에 뜨끈한 우거지해장국을 퍼주는 할머니 마음이 푸근하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군산IC→706번 지방도→21번 국도→째보산창삼거리에서 좌회전→수협금암동지점 사거리에서 좌회전→군산화물역 새벽시장 ▲문의 : 관광진흥과 063-450-4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