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구단 창단 추진 의사를 밝힌 미국인 실업가 케네스 영(왼쪽)과 그의 대리인 조동윤 씨가 영이 소유하고 있는 미 트리플A구단 ‘노폭 타이즈’ 구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TSMGI 제공 |
영 미국서 유명한 구단주
지난 8월 3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한 통의 창단 의향서가 도착했다. KBO의 한 관계자는 “창단 의향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도 그럴 게 창단 의향서를 보낸 이가 생면부지의 미국인 사업가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메이저리그 및 NBA, NHL, NFL 구단과 구장에 식음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오베이션스의 대표’라고 밝힌 미국인 사업가의 이름은 케네스 영이었다. 영은 창단 의향서에 “경기도 안산시에 돔구장이 건설되는 것을 조건으로 안산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KBO는 바로 영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확인 결과, 영은 사업가인 동시에 미국 버지니아주 노폭시 소재 트리플A 야구팀 ‘노폭 타이즈’를 비롯해 4개의 마이너리그 프로야구단을 소유한 구단주로 판명 났다. 신분은 확실한 셈이었다.
하지만, 정작 풀어야 할 숙제는 다음이었다. ‘어째서 미국인 사업가가 한국에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겠다고 나섰느냐’는 것이었다. KBO는 창단 의향서에 명시된 ‘안산 돔구장’에서 힌트를 찾았다.
KBO의 핵심관계자는 “일반 구장보다 돔구장을 활용하면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며 일부 시각이라는 전제를 달고서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식으로 수천억 원에 달하는 안산 돔구장을 ‘새 구단 창단’이란 미명 아래 그대로 넘겨받으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케네스 영 측은 11월 16일 미국 버지니아에서 워싱턴 특파원을 상대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영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상메시지를 통해 “안산에 돔구장이 건설되면 야구팬들뿐만 아니라 전체 지역사회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조만간 KBO에 창단 신청서를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조 씨 “소문 대꾸할 가치 없어”
한국의 모 프로야구단 단장은 케네스 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영을 “미국야구계에서 유명한 구단주”라고 칭하고서 “아시아 야구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의 창단 의사와 관련해 미덥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영보단 영의 대리인으로 알려진 조동윤(미국명 더글러스 조) 씨가 불신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영의 창단 의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조 씨가 창단을 주도하는 게 미심쩍다는 뜻이었다.
한 야구인은 “조 씨는 과거 메이저리그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인물”이라며 “MLB 사무국에 정식 등록된 에이전트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자격 에이전트가 새 구단 창단을 주도한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반문하고서 “조 씨의 그간 행적을 미뤄볼 때 영을 내세워 히어로즈 식의 구단을 창단해 안산 돔구장을 힘 안 들이고 접수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씨는 야구계에선 유명한 인물이다. 과거 구대성과 돈 문제로 다투며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내막은 이렇다. 2005년 조 씨는 구대성의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뉴욕 메츠행을 주선했다. ‘빅리그 진출’이란 오랜 꿈을 달성한 구대성으로선 조 씨처럼 고마운 이도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구대성의 장인은 조 씨를 ‘횡령범’이라며 맹비난했다.
구대성 측은 “조 씨가 현지 생활을 위해 거액의 돈을 송금하도록 요구했고, 일본에서 사용하던 차량 두 대를 처분한 돈 1억 1250만 원을 현지 한국계 은행으로 송금했지만 조 씨가 이를 몰래 인출해 유용했다”고 주장하고선 “수차례 반환하겠다고 공증까지 했지만 최근 연락이 끊겼다”며 법정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뜻을 나타냈었다. 당시 조 씨는 “오해가 있을 뿐 횡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조 씨를 둘러싼 좋지 않은 소문은 이뿐이 아니다. 국외파 출신의 모 선수는 미국생활을 정리한 뒤 지인들에게 “조 씨 때문에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유인즉슨, 조 씨의 요구로 미국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는데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고, 이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이었다.
조 씨의 에이전트 능력을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많다. 2008년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린 김동주(두산)는 조 씨를 에이전트로 선임해 해외진출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메이저리그팀들과 일본프로야구팀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나타낸다”는 조 씨의 말과는 다르게 김동주를 원하는 구단이 나오지 않았던 까닭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모 에이전트는 “조 씨는 2002년 진필중(은퇴)의 에이전트를 맡았을 때도 메이저리그 진출이 시간문제인 것처럼 말했지만, 공수표만 남발하고 실패했다”며 “여기(미국)서도 그리 평판이 좋은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새 구단 창단 문제로 한국에 체류 중인 조 씨와 연락이 닿았다. 조 씨는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 대해 “일일이 대꾸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구대성과의 문제는 나도 할 말은 많지만, 아직 입을 열 시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미국을 갈 수 없다는 모 선수에 대해선 “나도 그 선수와 같은 피해자”라며 억울해했다. 조 씨는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 때문에 나나 그 선수가 함께 피해를 봤다”며 “그 선수와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등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주 건과 관련해서도 “무리하게 외국 진출을 시도했다면 성사가 됐겠지만, 선수 입장을 고려해 신중하게 진행하다가 불발이 됐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조 씨는 “나는 MLB 사무국과 MLBPA(선수노조)에 등록된 공인 에이전트다. 소문처럼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면 지금껏 에이전트를 할 수 있었겠느냐”며 세간의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강조했다.
▲ 안산 돔구장 조감도. |
조 씨는 자신을 “케네스 영의 단순한 대리인이 아닌 새 구단 창단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라고 소개했다. 총책임자의 자격으로 11월 25일 오전 안산시 관계자와 접촉해 안산 돔을 홈구장으로 쓰는 새 구단 창단 의사를 전달했다고 했다. 덧붙여 조만간 KBO 관계자와도 만나 창단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조 씨는 이미 KBO에 창단 신청서를 팩스로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안산시가 돔 공사를 재개하고, KBO가 창단 절차를 밟아 8개 구단의 동의를 얻어내면 새 구단 창단은 현실이 된다.
조 씨는 “KBO와 8개 구단의 요청이 있을 시 모든 우려를 불식할 자료와 대안을 내놓겠다”며 “필요하면 케네스 영이 방한해 KBO의 심층인터뷰에 응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안산 돔이다. 6·2 지방선거로 당선된 현 안산시장은 전임시장이 추진하던 돔구장 건설을 “수익성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면 중단했다. 만약 돔구장 건설이 백지화되면 새 구단 창단은 난항을 겪는다. 안산시의 한 관계자는 “현 시장의 입장은 대기업이 제의를 해오지 않는 이상, 돔구장 건설을 재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라면서 “KBO 측에 다시 문의를 하겠지만 미국 구단주의 야구단 창단과 돔구장 건설은 큰 연계성이 없는 걸로 짐작된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조 씨는 이에 대해 “지금껏 안산 돔을 전제로 창단을 추진했다. 그러나 돔구장이 백지화되면 창단을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야구계는 새 구단이 프로야구의 축복이 될지, 투기자본 유입에 따른 재앙이 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