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이 7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경복궁 옆 송현동 49-1 부지.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대한항공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일대에 추진해 오던 ‘7성급 호텔’ 건립 프로젝트가 사실상 무산 위기에 놓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이진만)는 대한항공이 “학교 부근에 호텔을 세워도 학습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서울시 중부교육청을 상대로 낸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금지행위해제 신청거부 취소소송’에 대해 지난 9일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한항공이 학교와 학부모 측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쏟아 왔으나 이번 판결로 인해 그간의 노력이 허사가 된 셈이다. 대한항공이 ‘대한민국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며 야심차게 추진해왔던 7성급 호텔 프로젝트의 뒤안길을 따라가 봤다.
대한항공은 서울 경복궁 옆 옛 주한 미국대사관 부지인 종로구 송현동 49-1 일대 3만 6642㎡ 부지에 연면적 13만 7440㎡, 지상 4층·지하 4층 규모의 ‘7성급 한옥호텔’ 등을 건립,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호텔에는 한옥 영빈관, 갤러리, 공연장 등도 조성될 예정이었다. 대한항공 측은 사업비용으로 총 7000억 원 정도를 책정했다.
호텔 건립 계획은 서울을 세계적인 디자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방침과도 맞아 떨어져 사업은 일사천리로 추진되어 왔다. 지난 2008년 송현동 부지를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 원에 사들였고 2009년부터 최근까지 문화재 발굴조사 등을 벌여왔으나 특별한 문화재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에 제동이 걸린 것은 인근 세 학교의 학부모들이 반대하면서부터다. 송현동 부지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덕성여중 덕성여고 풍문여고와 맞닿아 있다. 현행 학교보호법상 호텔은 ‘유해시설’로 규정되어 있어 교육청의 심의를 통과해야만 건립이 가능하다.
대한항공은 호텔 건립안을 담은 ‘복합문화단지조성안’을 중부교육청에 제출했으나 중부교육청은 지난 3월 30일 ‘학교환경위생 정화위원회’를 열고 이를 부결시켰다. 학교보호법상 유해시설로 규정된 호텔이 학교와 근접해 건립될 경우 학생들의 학습과 위생 환경 등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중부교육청이 부결시킨 결정적인 이유는 인접 세 학교 학부모들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한항공 측은 학부모와 학교 측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물심양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낡은 학교 교문을 바꿔주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에 체육관 및 수영장까지 지어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호텔이 보이는 쪽에 키 큰 나무를 심어 호텔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견도 내놓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뿐만 아니라 설계도도 변경해서 학교와 마주한 쪽에 호텔 본관이 아닌 영빈관을 짓겠다고까지 했다. 학교 측에서는 솔깃할 법한 이런 제안들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일부 학교의 체육관 개량 및 기타 지원방안에 대해 협의했고 학교와 마주한 쪽은 영빈관과 문화시설을 짓는 계획을 명확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결국 대한항공은 ‘물량공세’에도 한계가 있다고 판단, 지난 4월 30일 서울시 중부교육청 교육장을 상대로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금지행위 등 해제신청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대한항공은 소장에서 “정화구역 내에서 어떤 시설을 설치 또는 건축할 수 있는지 여부는 그러한 시설이 과연 학생들에게 유해한 것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한항공이 지으려는 호텔은 학생들에게 결코 유해한 시설이 아님에도 인근 학교들은 학교보건법 입법취지와 무관한 여러 사유를 들며 호텔 건축을 반대하고, 중부교육청 역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부정적인 의견만 취합해 조성안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패소 판결을 내리며 중부교육청과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대한항공 모기업인 한진그룹은 대한항공 칼호텔네트워크 등을 통해 국내·외에서 5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장녀 조현아 전무는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로서 호텔 운영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조 전무는 호텔 사업을 향후 대한항공의 주력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미국 LA 윌셔그랜드호텔 재건축과 송현동 7성 호텔 건립을 추진해왔다. 윌셔그랜드호텔은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적극적인 협력 가운데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반면 오히려 수월하게 진행될 듯했던 송현동 호텔 건립이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난 것이다.
대한항공 측은 공식적으로 “현재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다른 한편에선 정공법으로는 상황을 바꾸기가 어렵다고 판단, 다른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송현동 부지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위치하고 주변에 경복궁 창덕궁 인사동 및 북촌 등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와 접하고 있어 관광 문화 및 예술 발전에 큰 기여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사업 인허가를 받기 위한 업무를 진행해 왔다”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복합문화시설로 지으려고 했던 것인데 정작 호텔로만 부각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