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성적 얘기로 화제를 돌리면 상황은 백팔십도 바뀐다. 잠시 부진했던 성남은 신 감독 부임 후 화려하게 탈바꿈했다. 2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성남을 이끌어온 박규남 단장은 “이제 여한이 없다”고 한다. 신 감독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굳이 한 가지 아쉬움을 꼽는다면 올해 K리그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 챔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한 아이러니뿐이다.
올 시즌 퍼포먼스도 놀라웠다. 아시아 클럽 최강이란 타이틀과 함께 찾아온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 클럽월드컵 출전 기회. 인테르 밀란(이탈리아)과 대회 4강에서 후회 없는 한 판 승부를 치러냈다. 비록 0-3으로 졌지만 세계 최강을 상대로 한 성남의 퍼포먼스는 갈채를 받기에 충분했다. 또한 지난 19일 열린 인터나시오날(브라질)과의 2010국제축구연맹 클럽월드컵 3·4위전에선 2-4로 패해 4위에 머물렀지만 신 감독은 “큰 무대에서 값진 경험을 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신 감독은 2010남아공월드컵 당시 허정무호의 키워드였던 ‘소통 축구’를 성남에 접목했다.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지시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게 선수단 다수 의견에 따라 막내부터 최고참까지 고루 자신의 의사를 제시하게끔 했다.
아시아 챔스리그나 클럽월드컵 등 큰 무대에서 빅매치를 앞두고서는 철저히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주력했다. “네 애인하고는 잘 만나고 있느냐?” “편찮으셨다는데 어머니 몸은 어떠시냐?” 등등 주로 가벼운 개인사를 주고받으며 평정심을 찾아나갔다.
격의 없는 행동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인해 얼핏 보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신 감독의 남다른 지도법은 눈길을 끌 만하다. 무엇보다 K리그 때부터 줄곧 활용해왔던 비디오 분석 미팅이 놀라웠다. 항상 대화를 나눈다. 일단 비디오 영상을 보여준 뒤 각자 소감을 묻는다.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알 와다와 클럽월드컵 6강전이 끝난 뒤 인테르 밀란전을 앞두고 관련 영상을 무려 4경기나 편집해서 보여줬다고 한다.
늘 그래왔듯이 이어진 질의응답. 처음에는 쭈뼛쭈뼛 입을 선뜻 떼지 못하던 멤버들은 이제 꽤 익숙해졌고 자유롭게 토론을 했다. 물론 이 자리에서 신 감독은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지 않았다. 어차피 벤치의 의사와 실전 상황은 분명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술에서도 한 번 실패를 맛보면 결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감독의 지시만 제대로 따라도 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우리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게 선수들의 공통된 반응.
국내 선수들의 고유 권한처럼 비쳐졌던 주장 완장을 호주 출신 수비수 사샤에게 맡긴 것도 사뭇 흥미로웠다. 고참급의 잇따른 팀 이탈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지만 커뮤니케이션에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현역 시절 ‘그라운드의 여우’란 닉네임으로 통하며 탁월한 감각을 자랑해온 신 감독의 장점이 적중한 대목이다.
그렇다고 신 감독이 매사 자신만만했던 건 아니다. 거칠고 누구도 이해못할 고독한 승부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지도자인 만큼 나름 숨기고픈 부분도 있었다. 당연히 징크스도 있었다. 계속 얽매일까봐 기피해왔건만 승리할 때 신었던 양말과 속옷, 벨트, 양복은 물론이고 넥타이까지 절로 챙기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스스로 쓴웃음을 짓는다고 했다.
“선수 때는 그런 걸(징크스) 잘 믿지 않았는데, 감독이 되고 나니 어쩔 수 없더라.”
이러한 코멘트에서 축구 감독이기 전에 평범한 남자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