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서 삼성화재배 결승을 끝내고 허영호는 바로 귀국해 토요일인 11일에는 한국리그, 충북 건국우유 대 영남일보 대국에 나가 강유택에게 이겼다. 바둑이 끝난 것은 밤 11시. 한국리그는 바둑TV가 황금시간대에 생중계할 수 있게끔 주로 늦은 저녁 시간에 열린다. 허영호는 현재 건국우유 팀 소속이다. 그리고 허영호는 또 이튿날 제8회 춘란배에 참전하려고 상하이, 상하이에서 다시 대회장소인 푸젠성 푸저우시 우칭위엔 기념관으로 날아갔다. 강행군이다.
허영호의 강행군을 보고 선배 김성룡 9단이 “감동을 받았다”는 글을 올렸다. “한국리그는 5 대 5로 대결하는데 각 팀은 여섯 명이어서 한 사람 여유가 있다. 세계대회는 프로기사 개인에게는 정말 중요한 무대다. 더구나 결승 같은 건 일생일대의 기회이니, 한국리그에 한 판 빠진다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데도 팀을 위해 강행군하는 허영호 후배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바둑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인간적으로도 부쩍 성숙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번 춘란배 8강전에는 한국 이세돌 허영호 두 명, 중국 구리 콩지에 씨에허 왕시 구링이 다섯 명, 일본 조치훈 한 명이 들어가 있다. 중국의 강세 속에서 이창호가 빠진 한국의 한 축을 허영호가 맡고 있다. 일본 대표로 살아남은 조치훈도 눈에 띈다.
이세돌-왕시 허영호-콩지에 조치훈-씨에허 구리-구링이의 8강전에서 최근 국내외에서 연패에 허덕이며 “최악의 컨디션”임을 고백했던 이세돌은 씨에허와의 대국에서도 초반 작전 차질로 수세에 몰렸으나 중반 이후 폭풍 같은 흔들기로 전세를 뒤집어 연패의 터널에서 벗어나며 전열을 재정비하는 데 성공했다. 이세돌의 역전 드라마가 팬들을 열광시키긴 했지만 8강전 관심의 초점은 세계 타이틀로만 따지자면 세계 1등인 콩지에와 마주앉은 허영호였다.
허영호는 국내 예선 결승에서 박영훈을 제치고 춘란배에 들어와 본선 1회전에서, 1990년대 한국 킬러로 불렸던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를 제압했고, 16강전에서 중국의 창하오를 꺾으면서 다크호스로 지목되었다. 본선 1회전에서 기대주 강동윤이 노장 조치훈의 완력에 무너졌고 16강전에서 이창호와 최철한이 무너진 상황인 데다 춘란배는 7회를 이어 오는 동안 매회 창하오를 이긴 사람이 우승한다는 묘한 주술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허영호는 콩지에를 상대로 전혀 백을 들고 전혀 굴함 없는 경기를 펼쳤다. 중반 어느 시점부터 검토실은 허영호의 필승지세를 단언했다. 중반 말미에 어려운 변화가 생겨 잠시 혼미한 국면이 되었으나 피차 초읽기에 몰린 상황에서 콩지에가 날린 승부수를 그대로 맞받아친 것이 결승타가 되었다. 허영호의 불계승. 삼성화재배 패배의 후유증과 강행군의 피로 누적으로 잘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말끔히 불식하기에 족한 명국이었고, 작은 이변이었다.
8강전의 이변은 정작 따로 있었다. 중국 신예 구링이 5단(19)이 대선배 구리를 격파한 것. 장발에 콧수염, 어떤 바둑 누리꾼이 “포스 짱”이라고 헹가래를 쳤던 조치훈, 올드 팬들의 가슴을 적셨던 일본의 유일한 생존자 조치훈은 ‘침착의 대명사’, ‘중국의 이창호’로 불리는 씨에허에게 불계패했다. 춘란배는 제한시간이 각자 3시간에 60초 초읽기 3회의 장고 바둑이어서 조치훈에게 어울리는 대회였고, 실제 조치훈은 초반부터 장고를 거듭하는 모습으로 추억의 앨범을 리바이벌해 주었으나 젊음의 벽을 넘는 데는 실패했다.
16일의 4강전은 이세돌-구링이, 허영호-씨에허. 왕시를 기분 좋게 이겨 페이스를 회복한 이세돌은 구링이를 가볍게 보냈다. 일찍 끝났다. 그러나 허영호는 씨에허에게 졌다. 씨에허는 만만치 않았다. 초반에 허영호가 점수를 좀 잃었는데, 이후 무시무시하게 쳐들어갔으나 약간의 차이를 끝내 만회하지 못했다. 끝까지, 턱밑까지 추격했던 허영호도 대단했고, 초반 선취점을 끝까지 지켜낸 씨에허도 대단했다.
아쉽다. 씨에허를 이겼다면 결승. 세계대회 연속 결승 진출이었다. 상대가 이세돌이니만큼 쉽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국내 대회도 그렇거니와 세계대회 결승 진출은 그 자체로 새로운 도약의 기회, 크게 한번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제 허영호는 국내용 기사가 아니다. 세계무대 고정 출연의 입지를 굳혔다. 1986년생이니 나이도 이제 스물네 살. 잘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던 건데, 2001년 15세 입단이다. 너무 일찍 기대를 했던 탓에 허영호는 박정환이나 김지석 같은 신예가 아니라 중고참 정도는 되는 걸로 알았고, 기재는 뛰어나나 그런 기재가 빛을 못 보고 흘러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우리 바둑계에서 허영호도 그렇게 흘러가나 보다 했던 건데, 그게 아니라는 걸 새삼 실감시키고 있다.
주변에서는 “허영호가 개안을 한 것 같다”고 말들을 한다. 박정환과 김지석, 두 후배들에게 밀리는 것처럼 보였던 허영호가 최근 몇 달 사이에는 두 후배에게 다시금 자극이 되고 있다.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 잡아 줄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반갑다. 인물 또한 꽃미남 계열이고 성품도 좋으니까. 요즘은 어느 분야나 남자나 여자나 인물, 성품도 좋아야 스타가 된다.
이광구 바둑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