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선동열 감독의 퇴진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송삼봉 단장은 “전적으로 선 감독이 결정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세간에선 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돌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2011년을 이틀 앞두고 전격적으로 단행된 삼성의 감독 교체를 두고 야구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허리디스크 수술로 병원에 입원 중인 SK 김성근 감독은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삼성 선수단이 느끼는 충격은 더하다. 모 코치는 “감독 교체 발표 하루 전날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며 “이틀 전까지 선 감독으로부터 ‘내년 시즌 어떻게 할지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하면서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배영수 역시 “선 감독님이 사퇴하시리라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12월 19일 결혼식을 올린 배영수는 “결혼식장에 선 감독이 찾아오셔서 축하해주셨다”며 “‘FA 계약도 했으니 팀을 위해 열심히 던져 달라’는 덕담을 들려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삼성이 밝힌 선 감독 하차는 ‘용퇴’ 즉, 스스로 물러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삼성 송삼봉 단장은 “(사퇴는) 전적으로 선 감독이 결정한 일이다. 김응용 사장과 김재하 단장이 동반 퇴진하며 선 감독 자신도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한 것 같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론 일리가 있다. 삼성그룹은 12월 3일 정기 인사개편을 단행하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시도했다. 야구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야구단의 터줏대감이던 김 사장과 김 단장이 전격 사퇴하며 김인 삼성SDS 사장이 부임하고, 송 부단장이 단장으로 승격했다.
하지만, 선 감독은 임기가 4년이나 남아 있었다. 계약기간의 절반은 고사하고, 단 1년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런 선 감독이 자진 사퇴를 결정할 리는 없다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다. 야구계는 선 감독 사퇴 배경을 두 가지로 꼽고 있다.
첫 번째는 삼성전자 이학수 고문 라인이 정리되며 선 감독도 정리 대상에 올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11월 19일 삼성은 긴급 브리핑을 열고 “이 고문을 삼성전자 고문에서 삼성물산 건설부문 고문으로 임명한다”며 “문책성 인사라고 보면 된다”고 발표했다. 당시 재계에선 “한때 그룹 내 2인자 역할을 해온 이 고문이 2선으로 물러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대놓고 ‘문책성 인사’라고 표현한 것도 파격적인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재계에선 이를 이 고문 라인을 확실히 정리하겠다는 삼성 신경영진의 메시지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고문 라인 정리 불똥이 선 감독에게까지 튄 것일까. 야구단과 밀접한 관계의 삼성그룹 인사는 “그동안 야구단은 이 고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곳”이라며 “김 사장, 김 단장 모두 이 고문의 후원으로 오랫동안 야구단에 몸담았던 이들이고, 선 감독은 이 고문으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 고문과 김 사장은 부산상고(현 개성고) 동문이다. 또 이 고문과 김 단장은 제일모직 시절 한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이로, 이 고문은 고졸 출신 사원이던 김 단장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해 이후로도 직간접적인 후원을 했다. 이 고문과 선 감독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고려대 동문이다. 야구계에선 ‘선 감독의 5년 재계약도 이 고문의 후원 없인 불가능했다’라고 알려졌다. 그러니까 이 고문 라인 정리 때 김 사장과 김 단장이 포함됐듯이 선 감독도 범(凡) 이 고문 라인으로 분류돼 뒤늦게 정리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삼성그룹 최고위층이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무기력하게 4연패 한 야구단을 보고 크게 질책했다는 후문이다. 선 감독이 누누이 “우리의 목표는 2012년 한국시리즈 우승”이라고 강조했지만, 삼성 최고위층에선 “기회가 왔을 때 1등을 하려고 노력해야지 먼 훗날을 기약하는 야구단이 어디 있느냐”며 역정을 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삼성야구단의 한 관계자는 “그런 내용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국시리즈 준우승 뒤 그룹 고위 인사들이 선수단을 찾아와 ‘수고했다’고 격려한데다 그룹 내에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삼성의 전격적인 감독 교체를 두고 야구계는 “마음에 안 들면 순식간에 감독을 교체하는 과거 삼성의 구태가 재연됐다”며 ‘삼성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야구인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삼성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번 선 감독 교체 건은 조급하게 결정된 감이 있다”며 ‘삼성답지 않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