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중국 상하이 한국문화원에서 벌어진 제12회 농심배 한-중-일 삼국지, 3차전 13국에서 한국팀 2장(4번 주자)으로 등장한 최철한 9단이 중국의 마지막 타자 콩지에 9단(29)에게 백을 들고 176수 만에 불계승,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4연승으로 이번 대회의 대미를 장식하며, 뒤에 남아 몸을 풀고 있던 한국팀 주장 이창호 9단에게 통산 열 번째 우승컵을 안겨 주었다.
최 9단은 콩지에와의 대국 전까지, 지난해 12월 4일 부산에서 열린 2차전 최종국(제10국)에서 일본의 다카오 신지 9단(35)에게 이겼고, 해가 바뀌어 지난 1월 18일 3차전 첫 판(11국)에서 중국의 저우루이양 5단(20), 19일에는 일본의 마지막 생존자 유키 사토시 9단(39)을 격파, 3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최철한은 세상이 알아주는 싸움꾼. 힘과 날렵함을 겸비한 데다 전원 공격 스타일이며 지독하고 끈질기다. 이번 농심배 시리즈도 그랬다.
다카오에게는 흑을 들고 1집반을 이겼는데, 계가 바둑이 된 것은 다카오가 그래도 최철한의 공격을 선방하면서 타개를 잘했기 때문이었다. 저우루이양과의 대국에서는 백을 들었는데도 초반부터 거세게 밀어붙였다. 저우루이양도 만만치 않게 받아쳤으나 대신 조금씩 밀리며 포인트에서 뒤졌고 그게 누적되자, 중반 넘어서면서부터는, 대마가 잡힌 것은 없었지만, 집으로 쫓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일본의 최종 주자 유키는 데뷔 초년 시절 ‘관서(관서기원)의 샛별’이라는 별명으로 촉망받던 준재였지만 메이저 기전 우승 같은 것은 못해보고 조용히 내려갔다. 요즘 다시 좀 힘을 내고 있다는 소문이고 그래서 이번에 주장의 중책을 맡은 모양이다.
최철한과 유키의 대국에서는 흑을 든 최철한이 초장에 약간 오버 페이스하는 바람에 유키가 일단 기선은 잡았지만 이후 적극적으로 나가지를 않아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었는데, 중반 막바지에 이르러 유키 백 대마의 연결 고리에 빈틈이 보이자 최철한은 지체 없이 찔러 들어갔고 머릿속에 그려 놓고 있던 일련의 수순대로 백 대마를 잡아 버렸다. 집요한 노림, 순간의 허점, 번개 같은 안다리후리기로 빚어진 작품이었다.
최철한-콩지에의 일전은 예측불허였다. 두 사람 간 역대 전적은 1승4패로 최철한의 열세. 더구나 근래 콩지에는 중국 제일인자로 공인받는 위치여서 예상은 4 대 6 혹은 4.5 대 5.5로 최철한의 열세였다. 다만 최철한이 뭔가 흐름을 탄 모습이고, 요즘 한국 바둑이 특히 단체전에서는 기량을 120% 발휘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플러스 알파로 보아 ‘에잇, 위험부담이 있는 5 대 5’로 기대했던 것.
그런데 정작 최철한은 태연자약, 여유만만이었다. 행동은 느긋했고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어깨에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여유와 편안함의 근거가 궁금했다. 뒤에 이창호 9단 한 사람이 더 남아 있지만, 요즘 같아서는 이창호가 콩지에를 100%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 것. 3연승이면 내 할 일은 다했다는 생각에 홀가분해진 탓이었을까.
아무튼 뭐랄까, 승부에 임하는 자세가 한층 성숙해졌다는 느낌이었다. 승부를 경솔히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연연하지도 않는다는 것. 즐기겠다는 것, 최철한의 모습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콩지에와의 일전에서는 최철한이 백을 들었다. 콩지에는 우하변 일대에 무량대가를 건설했다. 삭감하러 들어갔지만, 여의치 않았다. 백의 좌상변 일대에서 커다란 바꿔치기가 이루어졌다. 거기서도 백이 득을 본 게 별로 없었다. 종착역이 눈에 보이는 시점에서 검토실과 해설장의 진단은 “미세하지만 흑이 앞서 있다”는 것, “미세하지만 역전의 가능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순간 최철한의 아찔한 강수, 기막힌 묘수가 작렬했다. 그게 통하면 역전. 콩지에가 당황했다. 행보가 흐트러졌다. 최철한은 백진 속으로 어지럽게 들어온 흑 일단을 일호의 차착 없이 단숨에 섬멸했다. 대역전이었다. 며칠 전 여동생 후배 문도원이 몇 번인가 반복해 보여 주었던 그것처럼.
농심배는 제한시간 각 1시간에 60초 초읽기 1회. 우승상금 2억 원, 한 사람 당 4000만 원. 연승 상금은 3연승부터 지급하는데, 3연승이면 1000만 원이며 이후 1승 추가마다 1000만 원씩이 더 붙는다. 따라서 최철한은 6000만 원을 받는다. 우승 결정국 역전의 장면을 소개한다.
<장면 2> 흑1을 보고 검토실과 해설장이 “전달 실수일 것”이라면서 비명을 질렀다. “백2로 끊기면 어쩌려고? 콩지에 9단이 큰 승부에서 초읽기에 몰리면 가끔 이런 행동을 하더니, 이번에도…?”
흑3, 5, 7로 살 길을 찾는 모습이나 검토실과 해설장은 “사는 수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최철한의 역전극에 흥분한다.
<장면 3> 백4의 치중이 떨어지는 순간 검토실과 해설장은 “끝!”을 외친다.
<장면 4> 흑1에는 백2가 있다. 흑5, 마지막 안간힘. 백8을 보고 콩지에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돌을 거두었다. 더 둘 수가 없어진 것. 계속 둔다면?
<참고도> 흑1로 단수쳐봤자 백2로 키우고 4로 따내 그만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
1월 21일 서울 동대문구 바둑협회가 70여 명의 발기인으로 창립식을 갖고 초대 회장에 여성 아마 강자 고형옥 6단(51)을 선임했다. 동대문구 바둑협회는 사단법인 대한바둑협회 산하 서울시 바둑협회의 지부협회로 등록된다. 2005년에 출범한 대한바둑협회는 대한체육회 가맹단체로 국내 아마추어 바둑계를 이끌면서 바둑 체육화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고 회장은 1980년대부터 여성 아마 바둑계 정상권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물. 고 회장은 ‘여전한 현역’으로 각급 학교, 문화센터의 바둑강좌에 출강하는 한편 바둑대회에도 꾸준히 참가, 지난해에도 부산시장배, 문경새재배 같은 굵직한 전국대회 여성 단체전에서 소속 팀 우승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연말에 대한바둑협회가 주최한 ‘2010 아마바둑인의 밤’ 행사에서는 여류 시니어 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고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바둑으로 행복했다”며 “그 행복을 회원들에게 전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