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묘한 타이밍’
구자철이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구자철 아버지 구광회 씨(51)는 아들의 축구 입문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자철이가 형과 충주 사과 마라톤 대회에 나갔을 때였다. 마침 축구부 아이들과 대회에 참가한 인근 중앙초등학교 감독이 자철이를 알아보고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그 일이 학교에 소문이 나서 담임선생님이 자철이가 중앙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며 반 친구들에게 작별인사까지 시켰다더라. 다른 학부모로부터 그 이야길 듣고 깜짝 놀라 물으니 ‘아빠. 저 축구하고 싶어요. 열심히 할게요’라며 주먹을 꼭 쥐고 말하더라. 내가 반대할까봐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던 거였다.”
▲ 로이터/뉴시스 |
진로를 고민할 때마다 행운도 따랐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입단을 제의했던 연세대학교에서 갑작스레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일본 진출을 시도해봤지만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자철이가 고등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참가하는 백록기 대회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고 했다. 굳은 의지가 느껴져 그 날로 제주도로 내려 보냈다.” 축구를 향한 열정은 그에게 귀중한 기회를 선물했다. 우연찮게 백록기 대회를 관전하던 당시 제주 유나이티드 정해성 감독의 눈에 띈 것. 구자철에게 매료된 정 감독은 정식으로 드래프트를 제안했고,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날개를 단 그는 대표팀에 승선해 마침내 날아올랐다.
# 추자도 스트라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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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씨는 “평일에 경기가 열리면 휴가를 내서라도 빠지지 않고 보러간다. 아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안게임 이란전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며 당시의 감동을 전한다. 아들 경기를 보기 위해 1년에 30일 되는 휴가를 모두 반납한 지 씨지만 축구장 밖에선 엄격한 아버지다. “동원이가 ‘자동차를 사고 싶다’고 얘기했지만 딱 잘라 거절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작은 것에도 자만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시안컵에서 수고한 아들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다는 부정을 드러낸다.
# 부상 이긴 한 편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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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래 어머니 황수향 씨(53)는 “번외지명 이야길 듣고 한동안 아들에게 연락을 못했다. 며칠이 지나서 겨우 전화를 걸었더니 울었는지 목소리가 잠겨있더라.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용기를 줬다”며 가슴 아팠던 드래프트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경남 FC 수석코치로 있던 윤덕여 코치는 “경남에 와서 독기를 품고 치료와 훈련을 병행했다. 어렸을 때부터 용래를 지켜봤기 때문에 곧 부활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면서 아시안컵에서 결실을 맺은 제자를 흐뭇해했다.
# ‘빛가람’ 뜻을 아시나요
▲ 로이터/뉴시스 |
가정 형편상 축구 선수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윤 씨는 아들만큼은 축구선수로 키우고 싶었단다. 마침 초등학교 3학년이던 윤빛가람이 축구하고 싶다는 얘길 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고. 이후부터 윤 씨의 혹독한 레슨이 시작됐다. “심하게 야단치며 엄격하게 가르쳤다. 그래서 지금도 아빠를 별로 안 좋아한다. 지난 번 K리그 시상식에서 신인왕을 차지했을 때 ‘아빠 사랑합니다’라는 이야길 듣고 그래도 아빠 맘을 알아주나보다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2007년엔 당돌한 발언으로 축구팬들의 뭇매를 맞았다. U-17월드컵을 앞두고 가진 포토 데이 행사 중 “K리그는 경기 속도가 느려서 서울-수원 같은 라이벌 전이 아니면 잘 안 보게 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된 것. 이후 발목 부상까지 겹쳐 2년 간 대학 무대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가 다시 일어선 건 조광래 감독의 경남FC에서였다. 빠른 패스 위주의 경남FC에서 윤빛가람은 차근차근 실력을 키워나갔고, 조광래의 ‘황태자’란 호칭답게 아시안컵 이란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떠올랐다.
4인방 모두 가고 싶은 구단으로 스페인 바로셀로나를 꼽는다. 스페인식 축구를 지향하는 조광래호에서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비결일지도 모른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무대를 빛낼 이들의 비상을 기대해본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