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호 9단이 초상부동산배와 후지쓰배 국내 대표 선발전 1회전에서 연이어 패배하는 수모를 겪었다. |
1월31일 이 9단은 중국이 주최하는 제1회 초상부동산배 한-중 대항 단체전 국내 선발전 1회전에서 강유택 3단에게 백으로 반집패, 탈락했다. 초상부동산배는 중국의 유명 부동산 기업인 ‘초상지산공사(招商地産公司)’의 후원으로 창설된 기전. 기전 명칭을 굳이 우리 식으로 풀어 ‘초상부동산배’라고 할 것이 아니라 원래 이름 그대로 ‘초상지산공사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한국과 중국에서 6명씩 출전해 5 대 5 단체전으로 두 번을 겨루는 방식으로 주전 5명에 후보 1명인 엔트리와 단체전이라는 점은 지난번 아시안게임과 같다. 중국이 아시안게임에서 패배한 것이 분해 똑같은 방식으로 한번 설욕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우승 상금은 6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억 100만 원이며 준우승 상금은 40만 위안, 약 6750만 원이다. 6명이 나누어 갖는 것이니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다. 대회는 3월 3일부터 8일까지 중국 선전에서 열린다. 제한시간은 각 2시간 45분에 1분 초읽기 5회. 2시간, 3시간도 아니고, 2시간 30분도 아니고 2시간 45분? 재미있다.
중국에서는 콩지에 9단, 구리 9단의 쌍두마차에 류싱 7단, 저우루이양 5단, 장웨이지에 5단
1월 31일에 비보를 전한 이창호 9단은 2월 7일 또다시 믿기 어려운 ‘패전보’를 남겼다. 제24히 후지쓰배 대표 선발전에서, 이번에도 1회전에서 원성진 9단에게 불계패, 탈락한 것.
후지쓰배는 올해부터 대회 진행방식이 크게 바뀐다. 예전에는 본선에서 결승까지 시차를 두고 2~3번에 나누어 두던 것이 올해는 4월 한 달 동안에 다 끝낸다는 것이며 제한시간도 3시간에 1분 10회에서 2시간에 1분 5회로 줄였고, 대국 시작을 오전 10시에서 11시로 늦추는 대신 점심시간 없이 끝까지 둔다는 것. 승부의 긴박감과 관심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 삼성화재배나 BC카드배보다 더 빨리, 아예 초고속의 속도전으로 가겠다는 얘기다.
또 종전에 본선 1회전이 24강전이던 것을 32강전으로 바꾸었다. 자국의 엔트리를 늘리기 위한 방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올해는 일본 선수가 13명으로 늘어났고 한국과 중국은 6명, 그리고 대만 유럽 북미 남미에서 1명씩이 출전한다. 여기에 지난 대회 우승-준우승-3위로 시드를 받은 3명을 합해 32명.
후지쓰배의 우승 상금은 1500만 엔, 약 2억 원이다. 개인전인 후지쓰배는 2억 원, 단체전인 초상부동산배는 1억 원, 비교가 되긴 한다.
어쨌거나 이창호는 지금까지 후지쓰배에서는 고정 멤버나 다름없었다. 1989년 제2회 때 불과 열세 살 나이로 처음 출전한 이후 지난 23회 대회까지, 1993년 제6회를 빼고, 스물한 번 나가 9회와 11회 때 우승했고 20-21-22회 3년 연속 준우승했다. 1993년 시즌은 이창호가 1년에 113국이라는 살인적인 대국 스케줄을 강행군으로 소화하며 연간 최다대국 신기록을 세운 해였다. 1년에 113국이면 주말과 법정 공휴일, 여름 휴가철을 빼면 대충 이틀에 한 판 꼴, 대국 일정이 겹쳐 후지쓰배에는 나갈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창호의 연거푸 1회전 탈락은, 2008년부터 한국기원의 국제대회 대표 선발 방식이 바뀐 것에서도 기인하는 바가 있다. 예전에는 국제대회 대표선수는 타이틀 보유자 우선이고, 다음은 랭킹 순이었다. 이에 대해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자 요즘은 엔트리의 절반은 상위 랭킹 순으로 할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그 숫자의 4배수 기사에게 선발전 참가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
예컨대 이번 후지쓰배의 경우 일본이 할당한 한국 엔트리는 6명이지만, 지난해 우승자로 시드를 받은 이세돌이 있어 우리는 모두 7명이 참가한다. 여기서 6의 절반인 3은 그 시점의 랭킹 1-2-3위에게 주는 것인데, 국내 랭킹 1위 이세돌이 자동 출전이니 랭킹 2-3-4위인 박정환 9단, 최철한 9단, 허영호 8단에게 돌아가는 것. 나머지 3장을 놓고 3의 4배수인 12명, 즉 랭킹 5위부터 16위까지가 선발전을 치른 결과 한 장은 김지석 7단, 또 한 장은 초상부동산배 선발전에서 이창호를 격침시킨 강유택 3단이 가져갔으며, 남은 한 장은 이창호를 탈락시킨 원성진 9단과 조한승 9단을 제치고 올라온 이영구 8단 대국의 승자에게 돌아간다.
초상부동산배 엔트리도 위에서 말했듯 6명인데, 여기서는 또 랭킹 1위인 이세돌 9단이 불참하겠다고 해서, 후지쓰배와 마찬가지로 2-3-4위가 자동, 나머지는 랭킹 5~16위의 12명이 선발전을 벌여 박영훈 9단, 강동윤 9단, 윤준상 8단이 뽑혔다.
이창호 9단이 자동 티켓을 받지 못하고 선발전에 나가고 있는 것은 현재 랭킹이 4위권 밖, 7위인 탓이다. 박정환은 지난해 10월 아시안게임 2관왕의 혁혁한 성적으로 갈채를 한몸에 받으며 훌쩍 9단으로 승단한 데다 이후 성적도 계속 좋아 지금은 당당 랭킹 2위에 올라있고, 허영호는 지난해 12월 갑자기 괴력을 발휘해 제15회 삼성화재배 준우승에, 제8회 춘란배 4강이라는 월척을 낚아 랭킹 4위로 약진하면서 자동 선발권을 받았는데, 20년 동안이나 세계 바둑계를 지배했던 영원한 제왕 이창호는 예선전을 두었고, 탈락했다.
최근 이창호 9단은 예전처럼 무적이 아니고 어떤 변곡점을 돌아선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예선 1회전 탈락은, 조금은 충격이다. 바둑팬들의 해설이 분분하다. 과학적인 랭킹제도나 공평한 기회 제공 같은 것도 좋지만 이창호만은, 그 업적과 공로로 랭킹을 초월한 존재이므로, 아직까지는 랭킹과 상관없이 예우를 해야 한다는 소리가 있다. 일리가 있다.
이것 때문에 한국기원이 얼마 전부터 새롭게 적용하고 있는 랭킹 제도와 그걸 고안한, 지난번에 소개했던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배태일 박사가 인터넷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요즘 이창호가 좀 뜸하고, 박정환이 아무리 잘 나간다 해도 어떻게 박정환은 2등인데, 이창호가 7등이냐는 것. 이론이나 무슨 점수 계산 같은 걸 떠나 랭킹이란 무엇보다 팬들의 체감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팬들의 체감, 원성과 배태일 박사의 랭킹 시스템은 핀트가 좀 어긋난 것이긴 하다.
그런가 하면 승부는 과거를 묻지 않는 것, 현재로만 말하는 것, 예우보다는 기회의 확대로써 숨은 인재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우선이며, 그렇게 장강의 물결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