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이호진 전 회장 복귀 앞두고 설왕설래…태광 “사업상 필요한 투자, 지배구조 개편 염두 안둬”
이호진 전 회장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20여 개의 지역케이블TV 사업자를 인수해 티브로드를 탄생시켰고, 2006년 쌍용화재(현 흥국화재), 피데스증권중개(현 흥국증권), 예가람저축은행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이 전 회장의 부친인 고 이임용 태광그룹 회장도 동양합섬, 대한화섬, 흥국생명, 고려저축은행을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는 점을 고려하면 태광은 M&A에 적극적인 사풍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태광그룹은 이호진 전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기 전인 2012년만 해도 재계 순위 30위권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49위까지 떨어졌다. 순위 하락의 직접적인 이유는 티브로드 매각이지만 사업 확장에 적극적이지 않은 탓도 있었다. 9년여 만에 복귀하는 이 전 회장이 어느 사업을 확장하고 어느 사업을 포기할지 태광그룹 직원들은 물론 업계 전반적으로도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투자 놓고 나오는 다양한 추측
최근 태광산업이 LG화학과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태광산업이 2012년 이후 단 한 번도 시설 투자를 하지 않았고, 그동안 합작사를 설립한 전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태광산업이 시설 투자에 나선 것은 2012년 3월 1500톤(t) 규모의 탄소섬유공장을 증설한 이후 처음이다. 양사가 신규 설립하기로 한 TL케미칼은 아크릴로니트릴(AN) 생산기업으로 AN은 플라스틱과 접착제, 합성고무 등에 쓰인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LG화학은 초호황을 누리고 있는 NB라텍스, 고부가합성수지(ABS) 생산에 필요한 AN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며 “AN 생산은 라이선스 등의 영향으로 진입이 쉽지 않아 태광산업과 합작사를 설립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NB라텍스는 위생장갑 등에 쓰이고, ABS는 차량 및 가전용 플라스틱 등의 원료다. AN 생산량 1위 기업은 동서석유화학으로 연 56만t을 생산한다. 태광산업의 생산량은 연 29만t으로 업계 2위다.
윤재성 연구원은 태광산업 전략에 대해 “태광산업은 이번 합작사 설립으로 현재 대비 약 33%의 생산능력을 확충했다”며 “태광은 그동안 눈에 띄는 투자는 물론 배당금 지급이 없었기 때문에 재무 상태가 매우 튼튼하다. 이번 협력이 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광산업이 오랜만에 대규모 투자에 나서자 그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돌고 있다. 이호진 전 회장 복귀를 앞두고 기업 가치 띄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이와 반대로 오너 입김이 아직은 적어 신규 투자에 나설 수 있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태광그룹은 10년 넘게 정체됐기 때문에 다른 그룹들이 한창 추진한 지주사 전환이나 지배구조 개편 등을 전혀 하지 못했다”며 “이호진 전 회장이 주요 계열사 지분을 직접 보유한 구조이므로 중장기적으로는 태광산업을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태광의 자금 여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의 시설 투자는 오히려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초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급 평가에서 태광산업에 C등급을 부여했다. 이 중 지배구조 등급은 D등급을 받았다. 태광그룹은 2018년 티시스와 태광관광개발의 합병으로 복잡한 지배구조를 일부 개선하긴 했지만 이호진 전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고려저축은행(30.5%)과 흥국생명(56.8%), 흥국증권(68.75%)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등 지배구조가 여전히 복잡하다.
이호진 전 회장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꼽히는 이현준 씨 입장에서 보면 지배구조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이 씨는 티알엔 지분을 39.36% 보유하고 있고, 티알엔이 태광산업 지분 11.22%를 보유 중이다. 또 태광산업도 티알엔 지분 3.32%를 갖고 있어 서로 간의 지분을 정리해야만 한다. 추후 경영권을 승계할 때 티알엔 중심의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동시에 금융사 처리 문제를 고민해야 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금융 계열사의 미래는?
재계와 금융당국이 주목하는 것은 태광그룹과 이호진 전 회장이 금융회사를 어떻게 처리할지 여부다. 이 전 회장은 흥국생명과 흥국증권, 고려저축은행의 최대주주이고, 흥국생명을 통해 흥국손해보험도 지배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이 최대주주이면서 태광산업 등 계열사가 금융회사 지분을 일부 보유한 구조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지난해 말 이호진 전 회장에게 고려저축은행 지분율을 10% 밑으로 낮추라고 명령했고, 이 전 회장이 이에 불복해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계열사를 동원해 사익을 편취한 혐의와 차명주주로 지분율을 허위 기재한 혐의 등으로 이 전 회장을 검찰 고발했다. 유죄 판결이 확정될 경우 흥국생명과 흥국증권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내심 이호진 전 회장이 금융사를 포기하길 바라고 있다. 무엇보다 흥국생명의 자본 여력이 넉넉하지 못해서다. 보험업계는 2023년 1월부터 보험금인 보험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을 적용받는다. 흥국생명은 이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18년에는 대비 미흡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유의 2건, 개선사항 20건 등 무더기 제재를 받기도 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흥국생명과 같은 중소형 보험사는 모두 IFRS17 충격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흥국의 경우 대주주가 개인이기 때문에 특히 우려된다”며 “금융회사 대주주로 적합한 인물이냐는 논란이 있고, 소비자 피해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다 보니 이 전 회장이 결단을 내리길 기대하는 분위기는 분명히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투자를 해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태광그룹 측은 최근의 움직임과 지배구조 개편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LG화학과 합작사를 설립한 것도 최근 10년 동안 투자가 없어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터닝포인트를 갖고 사업상으로 필요해 최근 합작사를 설립한 것이고,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며 “이미 공정위의 요구대로 지배구조를 개편했고, 고려저축은행 관련해서는 교통정리를 해야 하지만 그룹 전체적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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